장동혁 미래통합당 대전시당 위원장 ‘청년과 여성조직 강화’

정다은 기자 승인 2020.08.07 14:23 의견 0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중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대안도 제시

 


“청년과 여성조직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신임 미래통합당 대전시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장동혁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청년과 여성’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지난 선거 참패의 원인도 내부적으로는 반성이 부족했고, 외부적으로는 청년과 여성에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때문이다. 장동건 뺨치는 외모에 유난히 반짝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눈빛은 다가오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는 당을 꼭 승리로 이끌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장동혁 신임 미래통합당 대전시당 위원장으로부터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 ‘흙수저’가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다.

1969년 충남 보령의 작은 마을(웅천, 한내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은 무척 가난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릴 때에는 가난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면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성장한 것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추진력과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친구들처럼 대전이나 공주, 천안으로 유학을 가지 못하고, 그나마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청고등학교’ 진학하였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깝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버스를 타려면 20분을 걸어야 하고, 버스를 타고도 30분을 더 가야했기 때문에 3학년 1년 동안은 교실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어머니가 도시락 세 개를 들고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 행정고시에 도전하다.

어릴 적 꿈은 법조인이었으나 법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바람에 방향을 선회하여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여전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시험공부를 끝내야만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대학교 4학년 때 행정고시 교육직렬에 합격하여 충청남도교육청,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교육부 등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교육행정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공군에 입대하여 공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잠시 묻어두었던 어질 적 꿈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했습니다. 이미 딸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죠. 행정고시를 시작한 때로부터 정확하게 10년 후에 사법시험에 도전했고, 행정고시를 합격한 때로부터 10년 후에 사법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인생을 돌아보니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모두 경험하다.

판사로 근무하던 중에 국회 파견 판사(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문관)로 2년간 근무했습니다. 특이한 이력이지만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많이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경험들이 제가 앞으로 정치를 하는 데 있어 큰 밑거름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대전시당위원장으로서의 각오를 말씀해 주십시오.

미래통합당이 어려운 시기이자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점에 시당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선 청년조직과 여성조직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여성조직강화특별위원장과 청년조직강화특별위원장 자리를 새롭게 마련할 계획입니다. 중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대안도 제시할 것입니다. 이제 대전지역은 미래통합당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상태가 되다보니 대전시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에 있어 시당위원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대전 시정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겠습니다. 세종과 충청남·북 시도당위원장님들과도 힘을 합쳐 행정수도 이전 등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중요 정책에 있어 충청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국회 파견 판사 시절부터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결심을 굳힌 이유는 작년 ‘조국 사태’에서부터 시작된 문재인 정권의 위선과 독선, 무능과 부패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힘든 일이고, 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덧붙여 내가 몸담았던 사법부마저 정치화되는 것을 보면서 사법부의 정치화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정치를 시작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원장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절차와 방식에 있어 화가 납니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탈원전이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가 그보다 덜 중요한가요? 청와대와 여당은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결국 가고 싶은 방향과 목표가 있을 때는 ‘입 다물고 따라와!’로 일관하는 것이 문재인 정권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일단 행정수도 이전에는 찬성합니다. 다만, 국회 일부만 이전하거나 국회만 이전하는 것에는 반대입니다. 행정수도 이전의 정책 목표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청와대도 반드시 함께 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무르는 것에도 반대입니다. 세종 지역은 물론 세종 주변의 대전, 충청남·북도가 상생하며 균형발전 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청와대와 국회라는 하드웨어를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 관광, 교육 등 인프라 구축과 자생적인 성장 동력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지역균형발전, 인구분산, 집값 안정 등 행정수도 이전으로 달성하려는 정책 효과들은 전혀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일각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대전시민들이 여당이 좋아서가아니라 야당이 싫어서 여당을 선택했다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미래통합당이 부족했습니다. 중도층의 민심을 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도 부족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방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확산되면서 여당에게는 호재로, 야당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통합당이 재난지원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한 것도 패배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위기의 상황에서 ‘정권심판’보다는 ‘여당지지’가 우세했던 선거였다고 평가합니다.

 

◆ 법조인 장동혁은 어떤 사람인가요?

따뜻한 가슴으로 재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거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 저는 숲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사건 당사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타당한 결론을 내려고 노력했고, 행정공무원으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신 있게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기획·공보판사를 두 번이나 했고, 국회에 2년간 파견되어 근무하는 등 재판 이외의 업무도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 판사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태안기름유출사건’입니다. 당사자도 많고, 결론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기억 남는 사건은, 아무래도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사건’입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 되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애착이 갔던 사건들은, 소년보호사건입니다.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많이 느끼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부동산 관련 법률,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위원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부동산 관련 법률들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법들이고, 공수처법은 검찰제도의 틀을 바꾸는 법률인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집값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것입니다. 깊은 고민 없이 그때그때 임시처방식으로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면 결국 부동산정책도 성공하기 어렵거니와 그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커서 그 후유증이 오래 가게 될 것입니다.

공수처법도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수처법을 만들고자 했던 근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이미 여당은 특정인을 표적으로 삼아 공수처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으신가요?

딱히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여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외국의 정치인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국내에는 존경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거냐고 뭐라 하시더라고요(웃음).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편에 서서, 소신 있게 일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정치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훗날 제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너무 바빠 여가 시간은 많지 않겠지만, 자투리 시간 활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말씀대로 변호사 업무와 정치인을 동시에 하려니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행정공무원이나 법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솔직히 정치인으로서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쁜 중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약력

○ 1982. 2. 대창초등학교 졸업(충남 보령)

○ 1985. 2. 웅천중학교 졸업(충남 보령)

○ 1988. 2. 대천고등학교 졸업(충남 보령)

○ 1988. 3.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 입학

○ 1993. 2. 서울대학교 졸업(문학사)

○ 1995. 6. 공군 소위 임관(학사장교 - 공군사관후보생 94기 명예위원장)

○ 1995. 6. ~ 1998. 6. 공군사관학교 교수(군사학처)

○ 1998. 6. 공군 중위 전역

○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교육 직렬)

○ 1993. 4. ~ 1999. 8.: 교육행정사무관(충남교육청, 교육부 등 근무)

○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 2004. 2. ~ 2019. 2.: 판사(대전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근무)

○ 2019. 2. ~ 2020. 1.: 지방법원 부장판사(광주지방법원)

※ 2014. 8. ~ 2015. 8.: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연수

※ 2016. 2. ~ 2018. 2.: 국회 파견(법제사법위원회 자문관)

○ 현재

- 법무법인 윈(WIN) 대표변호사

- 미래통합당 대전시당위원장

- 미래통합당 유성구갑 당협위원장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