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작가의 여행이야기] 그대, 아루나찰라로 초대합니다. -2-

이연자 작가 승인 2020.09.11 14:13 의견 0

나마스테(Namaste, नमस्ते), 내 안의 신(god)이 당신 안의 신(神)에게 경배합니다.

그 자리는 빛과 사랑, 진리와 평화, 지혜가 깃든 온 우주입니다. 아름다움이여.

 

6. 라마나스라맘(Sri Ramanasramam) 아쉬람* 정문에 내리다.

* 아쉬람 : 인도의 전통적인 암자 시설

드디어 내가 왔다. 월요일 새벽 6시 50분에 집을 떠나 수요일 오후 4시 5분에 아쉬람 정문에 도착했다. 오피스에서 수속을 마치고 일꾼 엘루말라이(Elumalai)의 뒤를 따라 게스트룸 K16으로 간다. 일인용 철제침대와 사각 책상과 의자, 스툴 1개가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벽에 라마나 마하르쉬 액자가 걸려있다. 짐을 놓고 회당으로 간다. 이곳 경내는 모두 맨발로 생활한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무언가 읽고 있거나, 슈라인(shrine) 룸을 오른쪽으로 뱅뱅 돌고 있다. 약간 놀라서 지켜본다. 본다. 지켜본다. 본다.

 

식당입구에 선 줄

 


식사시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시멘트 바닥에 바나나 잎이 놓여있다. 사람들이 그 앞에 조르륵 앉는다. 스테인리스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바나나 잎에 부어서 닦는다. 잘게 썬 당근 등이 섞여 있는 밥을 산더미처럼 준다. 난 4분의 1만 받는다. 달(소스)을 붓는다. 사람들은 손으로 짓이겨서 먹는다. 나는 살짝 흉내만 내면서 따로따로 먹는다. 시큼한 커드를 한 컵씩 준다. 식사 후 바나나 잎을 반으로 접고 떠난다. 그 바나나 잎은 소여물로 쓰인단다. 메인디쉬는 부스스한 쌀밥에 달을 부어주고, 사이드디쉬로 커리나 로티, 뿌리, 이들리(시큼한 술떡 맛) 혹은 바나나 등을 돌아가면서 곁들이고, 음료로는 커드나 달달한 커피, 티, 따끈하고 달콤한 우유 등이 제공된다. 이렇게 세끼 제공되고 하룻밤 재워주는데 대충 150루피란다. 나는 9박 10일 동안 체재비로써 후원금(donation)을 냈다. 감사할 뿐이다.

 

9시 반 쯤 숙소로 돌아온다. 눅눅하고 습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데, 순간 라마나 마하르쉬의 얼굴이 세 번 크게 맴돌면서 내 얼굴로 쏟아진다. 순간 오싹하였다. 왜 내가 무서워하지? 아, 창피한 마음이 든다. 머무는 동안 불을 끄지 못한다. 밤새 시끄럽다. 왜 인도는 24시간 시끄러울까? 부산하다. 4시 반에 완전히 눈을 뜬다. 나는 2주 동안 세 번 정도 씻었다. 게스트룸은 몹시 눅눅하고 어두웠고, 찬물만 나오는 공동욕실은 추워서 쓰지 못했다. 하루 2번 물티슈 1장으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닦고 물에 헹궈서 몸을 닦으면 간이 목욕이 끝난다. 마지막 날, 그동안 쓰고 모아둔 바닥의 물티슈를 발을 이용해 바닥을 한번 깨끗이 닦아준다. 청소 끝. 사막에서도 살 수 있는 이 적응력!!

 

7. 아름다운 그녀 수냐(sunya, 텅 비어있음. 힌디어)

12월 15일. 이튿날 아침 회당에 잠시 앉아 있다가, 아쉬람 바깥으로 나갔다. 주황색 옷을 걸친 수많은 사두들이 도열하고 있다. 이 곳 저 곳을 천천히 걸어 우체국 도로를 끝까지 걸어갔다. 골목 맨 끝에 핑크하우스라는 제법 큰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외국인에게 수냐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들과 함께 살다가 떠난 여인에 대해서 대답했다.

 

라마나스라맘 입구


대회당으로 돌아와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대회당 안의 슈라인을 오른쪽으로 돌았다. 2번째를 시작하려는데 오체투지를 하며 막 일어서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한국인임을 알아보았다. 반가웠다. 강의 마무리 때문에 여행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에이, 가서 설명을 들어보지 뭐!’ 했었고, 도대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줄곧 정신세계에 대한 책을 즐겨 읽긴 했었으나 전공에 매달리느라고 무늬만 남게 된 때문이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게 펼쳐질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2시에 만난 그는 내게 어떻게 여기를 오게 되었는가 묻는다. 하긴 며칠 생활하고 나서 나도 누군가를 만난다면, ‘대체 당신은 어떻게 여기를 오게 되었소?’ 하고 묻고 말 것이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동행 길에 나는 마하르쉬 책을 4권 정도 읽었다고 했더니(그는 속으로 ‘겨우 네 권을 읽고?’라고 했었다나) 제목을 묻기에, 나는 “무심, 나는 진아다(No Mind, I am the Self)”라는 대답을 하였다. 나는 이 대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가 가는 목적지가 바로 내가 대답한 책의 주인공인 락슈와미 하우스였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잠시 있다가 되돌아오면서 그에게 무심코 “수냐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는 크게 웃으며 수냐는 4시쯤 회당으로 올 것이라고 대답한다. 정말로 그 시간에 수냐를 만난다. 우리 셋은 아쉬람 바깥 쪽 제일 괜찮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그의 집에서 차를 마신다. 그의 집 베란다에서는 아루나찰라 산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루나찰라 산 꼭대기에서 버터기름으로 지핀 횃불이 성스럽게 보인다. 수냐는 즐거웠는지, 노래를 두 곡 부른다. 나는 그날 밤 수냐 집에서 같이 자고, 내일 새벽에 나나가루(Nanagaru)의 침묵 삿상(silence satsang)을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아침에 수냐를 찾으러 다닐 때 들러본 여러 게스트하우스들은 몹시 낡아서 마음이 울적했었다. 그녀가 이런 형편없는 곳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런데 수냐가 머무는 곳은 몹시 아름다웠고 장기거주로 집세도 저렴하게 내고 있단다. 우리는 인도산 양주를 각각 2잔씩 마셨다. 세간살이랄 것도 없는 단출한 살림과, 라마나 마하르쉬와 아루나찰라 사진들뿐이었다.

 

내가 미국에 들어가던 해에 슈나는 아루나찰라로 들어왔고, 지금 만 4년째에 접어든다고 했다. 그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그녀는 아름답다. 얼마 전에 그녀는 산에서 독뱀에 물려서 죽을 뻔했지만, 살아났단다. 낮에 얼핏 회당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이의 색이 이상해보였는데, 아마 뱀의 독 때문이었나 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었는데, ‘박XX를 만나러 아루나찰라에 온 사람이 있다니….’하고 중얼거린다.

 

사마디홀


수냐, 그대는 존재 자체로서 아름답구나. 그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온몸으로 숙명을 사는구나. 때때로 역동적이다가, 수그러지다가, 외치다가, 흥분하다가, 빵긋 미소지다가, 입가를 일그러뜨리다가 하는 그녀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이 척박한 곳에서 혼자 4년을 살아낸 근기가 보통은 아닐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대는 온몸으로 소통을 그리워하는구나.

 

나는 금방 그대를 눈치 채게 된다. 햇볕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쏘아보며 몇 시간이고 명상하기에, 그녀의 얼굴색은 정의하기 곤란하다. 까맣지도, 누렇지도, 시커멓지도 않으면서 다 합해놓은 색깔인데,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한국인 같지도 않고 인도인 같지도 않고, 스리랑카인 같지도 않은, 어떤 범주에 넣어도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그녀. 그녀는 이곳에 머물면서, 아루나찰라를 한밤중에 오른돌이 하고, 산에 오르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수행자로서 생활한다.

 

나는 그대를 정의한다. 광기. 그래서 그녀는 아름답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그녀는 변방에서 맨몸으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벗겨지며, 가끔씩 휘몰아치는 자괴감과 연민에 처절하게 깨지기에, 솔직하게 상처와 아픔과 반응을 드러내기에, 그녀는 상처 입은 한 마리 야수 같다.

야수의 아름다움. 야수의 고독. 고독하기에 아름답지 않은가. 그녀가 여름에는 기온이 50도 가까이 올라가는 척박한 신의 땅 아루나찰라에서 온몸으로 살고 있다.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그대 오롯이 한 존재로서 아름다우니, 내가 경의를 표한다. 나는 그대를 위해 며칠간 간절히 기도한다.

 

8. 나나가루(Sri. Nannagaru)의 침묵 삿상(silence satsang)에 참석하다

새벽에 수냐는 일어나서 향을 피운다. 짜이를 한 잔 마시고 옆 골목에 나나가루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로 침묵 삿상에 참석하러 집을 나선다. 내가 이곳에 온 때가 10일 간 열리는 성대한 디팜(deepam) 축제기간이다. 이때 히말라야 등지에서 고매한 성자들이 내려와서 삿상을 여는데, 그중 한 분인 나나가루의 삿상에 나는 네 번 참석하게 된다.

 

외국인들과, 많은 인도인들이 옹기종기 옥상에 모여 앉는다. 나나가루가 들어오신다. 눈을 들어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서 침묵 삿상을 한다. 사십여 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나가루가 퇴장하면, 사람들은 차례로 마당으로 내려와 제공되는 뜨거운 짜이를 한 잔씩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의자에 앉아서 아루나찰라 산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며칠 후 월요일 삿상을 끝으로 갑자기 작별식도 없이 그답게 떠나가신다고 한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 나나가루의 마지막 삿상에 참석하기로 한다. 침묵 중에 지위가 높은 듯한 사두가 걸어오더니, 허브 향 가득한 연초록 리스를 나나가루에게 걸어드린다. 그리고 하얀 숄을 어깨에 둘러드린다. 마지막 삿상에 어울리는 세리머니로 참석자들의 감격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디팜축제


나나가루는 잠시 후 허브 리스를 벗어서 앞자리에 앉은 서양여자에게 준다. 허브향이 가득히 퍼진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퇴장한다. 중간쯤에 서서 누군가가 사과 2개를 바치면 잠시 받아들고 있다가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머지 하나는 돌려준다. 그런 의식을 몇 번 하는 중에. 숄이 스르르 그의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누군가가 그것을 집어서 다시 드린다. 나나가루는 잠깐 멈칫하는 것 같았다. 돌아선다. 주춤하더니, 세 걸음을 걸어오신다. 물끄러미 본다. 나를 향해 그 숄을 내민다. ‘Keep it yours!’ 나는 고요히 받는다.

 

고백해야할 게 있다. 그분이 돌아서기 전 주춤할 때 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웬만하면, 절 주시죵~~~.” 알아들으신 걸까? 그곳의 모든 참석자들은 마음을 비우고 있을 때, 난 일념을 세워, 웬만하면 내게 달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나나가루가 퇴장하고, 참석자들 모두는 도리어 나까지도 거룩하게 보는 눈빛이었다.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받았는지 그들의 따뜻한 눈빛에 몽땅 전달되어 온다. 이런 이런….

 

이연자

자서전전문 ‘추억의 뜰’ 수석작가

영문학박사

아동문학번역전문가(11권)

Setonhall univ.에서 다수의 연극제작

자기계발서 집필(8권)

어르신생애사 신문 연재

관세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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