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썰매 타는 암소 무』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이해완 시인 승인 2021.01.07 15:39 의견 0

새해, 1월의 그림책으로 『썰매 타는 암소 무』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준비했습니다. 『썰매 타는 암소 무』는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의 즐거움을,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겁니다.


『썰매 타는 암소 무』

글 : 비스란더

그림 : 누르드크비스트

옮긴이 : 조윤정

출판사 : 사계절

이 책을 펼치자, 문득 어릴 적 친구들과 골목에서 오징어 놀이를 하며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곱은 손으로 땅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와 편을 갈라 함께 놀았다. 그래서 골목은 늘 시끌벅적 살아있었다.

그런데 한참 놀다 보면 꼭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날도 상대편을 향해 서로 금을 밟았네 안 밟았네 옥신각신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였다. 한 아이가 머리를 만지며 하늘을 보더니 “야, 눈 온다!” 하고 외쳤다. 그 한 마디에 소란스럽던 골목이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희끗희끗 내리던 눈이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졌다. 우리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와와 소리쳤다. 눈 온다는 소리에 놀이는 유야무야 끝나버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연장통에서 장도리와 못과 톱을 꺼냈다. 썰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 돼지막 위에는 하꼬짝이 많았다. 지금도 어시장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생선을 담는 나무 상자를 하꼬짝이라고 불렀다.

못이 박힌 하꼬짝을 장도리로 탁탁 쳐서 해체하고 톱으로 자르고 각목을 댄 뒤 뚝딱뚝딱 못을 박고 잘 달릴 수 있게 철사를 각목 바닥에 고정한 다음 부엌 연탄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나일론 끈으로 손잡이를 만들면 끝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자마자 썰매를 들고 뒷산 언덕으로 갔다. 벌써 많은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다. 비탈길이 높고 거리가 상당한데도 올라갈 때 힘들다기 보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은 손수 만든 썰매를 탄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덕 위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치고 썰매가 뒤집혀 다른 아이들과 뒤엉키기 일쑤지만 신나기만 했다. 그날 함께 까르르 웃던 친구들이 그립다.

『썰매 타는 암소 무』는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암소 무와 수다쟁이 깜돌이가 펼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암소 무’가 등장하는 그림책은 『썰매 타는 암소 무』 외에도 『집 짓는 암소 무』 『그네 타는 암소 무』 『청소하는 암소 무』 등 총 4권이 나와 있는데, 출판사에서 이 책을 펴낸 이유로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아이들이 흔히 느끼는 엉뚱하지만 기발한 호기심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암소 무와 깜돌이와의 우정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친구는 자신에게 아쉬울 때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우정을 주고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셋째, 암소 무의 꿈꾸는 듯하면서도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과 깜돌이의 새침한 듯하면서도 살가운 표정이 잘 드러난 이 책의 그림은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암소 무는 외양간 창가에 서서 농부네 아이들이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마냥 즐겁게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친구인 까마귀 깜돌이를 설득해 썰매를 타게 된다. 그리고 썰매 타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된다.

나는 이 책을 겨울날 눈이 올 때는 꼭 챙겨두었다가 어린이집에 가지고 가서 읽어주는데, 읽어줄 때마다 아이들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마도 암소 무와 깜돌이가 눈밭에서 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놀면서 성장한다. 놀면서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누며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현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상상력을 가지며 그것을 실행해 보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글, 그림 : 이세 히데코

옮김: 김정화

출판사: 청어람미디어

우리 조상들은 冊賤者 父賤者(책천자 부천자)라 하여 책을 천하게 하면 부모를 천하게 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조선이란 사회가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는 것을 지상 최고의 목표로 삼다 보니 당연히 책은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비들은 책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일 년에 한두 차례 볕 좋고 바람 좋은 날 책들을 꺼내 쇄서를 했다. 쇄서란 마루나 음지에 책을 내어놓고 말려 습기를 제거해 충해를 막는 것을 말한다.

‘책만 보는 바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덕무나 그의 벗인 박제가 등의 글을 읽다 보면 간혹 이런 쇄서 풍경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써늘해지곤 한다. 박제가나 이덕무는 서자 출신이라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책을 보아도 과거조차 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의 책을 빌려 한 자 한 자 손수 베껴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날씨 좋은 날 볕에 내놓고 쪼그려 앉아 한 장 한 장 햇볕과 바람을 쐬어주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니 어찌 안타깝고 애잔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개혁 군주로 불리는 정조를 만나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서 책만 봐야 하는 검서관 벼슬을 하게 되었으니 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선비들이 쇄서를 통해 책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프랑스는 를리외르라는 장인들을 통해 책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에서 평생 외길을 걸어온 장인 를리외르들의 생활을 청색계통의 수채화로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설명을 빌리면 를리에르는 필사본, 낱장의 그림, 이미 인쇄된 책 등을 분해하여 보수한 후 다시 꿰매고 책 내용에 걸맞게 표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직업이다.

섬세한 작업을 하기 위해 나무옹이 같은 손이 되도록 일을 한 를리외르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 이세 히데코는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를 빌려 오랫동안 취재한 뒤에 그렸다고 한다.

소피아가 아끼는 식물도감이 망가져 안타까워할 때 노점상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하고 말한다.

꼬마 숙녀 소피아는 ‘를리외르가 뭐지? 책 의사선생님 같은 사람인가?’하고 망가진 책을 들고 찾아 나선다.

아저씨는 소피의 책을 낱낱이 뜯어내며 “‘를리외르’라는 말에는 ‘다시 묶는다’라는 뜻도 있단다.”라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표지도 새 걸로 바꾸어 금박으로 소피의 이름까지 새겨준다.

60가지도 넘는 공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히고, 마지막으로 책등 가죽에 금박으로 제목을 넣어, 책에 새 생명을 부여해주는 장인, 를리외르의 삶이 잘 녹아 있는 이 멋진 책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달려갈 일이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동화창작 강의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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