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가루 사진작가 이갑재 ‘바람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1998년부터 10회 개인전 열어

피사체를 육안(肉眼)으로 보지 않고 제3의 눈으로 보다
찰나의 자연에서 무극(無極)의 하모니 포착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2.08 16:05 의견 0

조향사가 온갖 것에서 향기를 채집하듯, 시인이 언어를 조형하듯, 작곡가가 흩어진 음을 이어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이갑재는 찰나의 자연에서 무극(無極)의 하모니를 포착한다.

사진작가 이갑재


브르마드야 드리스띠(Bhrumadhya Drishti, 제3의 눈)

Bhru눈썹, madhya중심, drishti응시하다(gaze)―육안이 아니라 내면의 시선이다. 나는 피사체를 육안(肉眼)으로 보지 않고 제3의 눈으로 보려 하였다. 나는 지난 30년간 송화가루의 정수 즉 질료를 사진에 담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나무의 흔들림, 흩날리는 송화가루, 물의 흐름과 스치는 바람과 따사로운 햇빛 등 모든 요소가 시시각각 변모(metamorphosis)한다.

우주의 요소들이 결합해서 순간적으로 나의 피사체가 되어 구성되기 위해 태양과 바람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지나는지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다. 온 세상 만물의 이면(以面)에 에너지는 빛이나 파장의 형태로 출렁인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나는 창조주의 우주와 하나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충만하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미세한 물질인 송화가루가 흩어지며 머무는 지독히 짧은 순간, 바람은 색채가 없다. 나와 피사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합일일 뿐이다. 나무에 닿는 바람을 만나 일제히 흩날리는 송화가루는 찰나에 포착되고 우주까지 연결되며 무극으로 나아간다. 흑백의 농담이 전개되면서 간결한 담담(淡淡)함은 이미지의 극대화라는 역설을 만들어내었다.


자연의 몸짓을 교감하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작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나는 시간에 따른 그림자의 이동 방향까지 빛을 안고 찍는다. 빛이 정면이나 측면이 아닌 뒤쪽이나 뒤쪽 사선에서 들어오게 촬영한다. 우연히 만나서 담긴 현장에서 나는 모든 색을 지워버린다. 그토록 간절하게 갈구하던 시간과 공간과 순간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간다. 욕망도 한 겹씩 벗겨져 사라져버린다.


재야의 선생들이 나를 키웠다

30대의 끝자락에서 주부인 나는 홀연히 사진을 접했다. 대전여성아카데미에서 1993년 사진부를 수료하였고 이어서 흑백사진연구회에서 5년간 공부하면서 재야의 선생들을 많이 만났다. 조임환 대가와 백제예전 정주하 교수의 조언과 격려는 초보자인 나를 지탱해주었다. 어디에도 소속이 없는 나는 경계를 가로지르는(cross over) 자였다.


검증이 필요했다

필름 현상과 인화를 직접 하였고 ‘바람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1998년에 대전시민회관에서 사진 80점을 걸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테마를 가지고 한 전시회는 처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인사동 ‘통큰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매일 관람객 150~200명이 몰려왔다. 홍익대학교 교수 두 분이 매일 전시장에 오셔서 앉아 있더라. 그분들이 “무척 좋다. 세계적인 작품이 몇 점 있는데 살렸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까지 10번의 개인전은 대중의 평가를 받는 작업이자 소통이었다.


영정사진 3,000장 이상을 찍어드렸다

대전MBC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94년부터 6년간 작업을 하였다.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3,000장 이상 촬영해서 드렸다. 또한 구봉산 기슭에 있던 성애양로원에 3년 정도 방문하여 영정사진을 찍어드렸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귀한 사진을 얻었다고 흐느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으로 족하였다. 암실에서 인화작업을 하다 보면 소름이 쭉 끼칠 때가 있는데 얼마 후 작고하셨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듣고는 나중에 컬러 작업으로 바꾸었다.


오리지널러티(Originality, 독창성)가 있으니 나는 행운아다

송화가루를 피사체로 만나게 된 계기는 초짜의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소재를 찾아 이것저것 다양한 장르를 찾다가 어느 날 대청호에서 흩날리는 송화가루가 떨어져 신비한 문양을 만들어낸 것을 보았다. 한없이 미분화되어 흩날리는 송화가루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송화가루를 매일 찍어서 집에 돌아와 현상해보면 내가 나타내려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흔하지 않은 방식인데, 일반 사진기를 개조해 적외선 사진을 찍게 되었다. 적외선 파장이 빛을 많이 빨아들이는 렌즈를 사용하면 빛이 닿은 부분의 결과물이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였다. 2013년에 MIT 연구원으로 있는 아들이 조립해서 보내준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행운이다

2001년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수술하여 완치된 일이 있었다. 그 후 화학약품이 동원되는 인화작업실을 없앴다. 나머지 삶은 보너스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5년 전에는 교직에 있던 남편과 영원한 작별을 하였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공허함으로 양촌의 텃밭에서 흙에 몰두하였다. 1년 후 코피가 나서 병원에 갔더니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사람을 상대로 풀었다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을 테지만 그냥 자연에서 풀었다. 3년이 지나 작품을 다시 하게 되었다.

무극의 세계

사진의 재현성은 몹시 극사실적이어서 기능성만 인정되었다가 90년대 중반부터 점차 예술성이 부각되었다. 그러한 시대의 조류에 같이 흘러왔던 것 같다. 사진은 언어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장르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독창성을 갖기란 쉽지 않은데 나는 만났으니 오랜 시간 독보적으로 작업할 것이다. 보리밭과 호밀밭에서 바람이 오는 길을 찾는 연습을 했다. 내가 바람길에서 언뜻 들여다 본 것은 신성의 통로이며 빛으로 이어진 움직임(무드라)의 세계였다. 관객들이 나의 사진을 보면서 내러티브(이야기)를 느끼고 상상하고 무언가 건드려지기를 바란다. 부디 무념의 위로를 받기를 겸손하게 기도드린다.

2021년 가을 쯤 전시 예정이다

대청호와 관련 있는 대형 작품으로 생태와 환경으로 접근하여 작업 중이며 80% 정도 진척이 있다. 언제나 고정관념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존재에 천착하며 사진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68세가 되었다.

나의 감성이 온몸의 세포가 살아있듯이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도록 열려있으니, ‘소풍 끝내고 돌아오라’는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나는 온통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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