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교사

시사저널 청풍 승인 2021.02.09 16:13 의견 0

장주영 교사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96학번 졸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수학교육전공

현재 세 아이 엄마 육아 휴직 중이나

올해 3월 대전공업고등학교에 복직 예정

장주영 교사


5년 전 우리 대전 J고등학교 1학년 9반 학생들은 월성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하는 여행지에서 ‘5년 후의 나의 모습’을 적어 타임캡슐에 담은 뒤 학교에 돌아와 교정 어딘가에 묻어둔 일이 있다. 5년 후 오늘 모여서 캡슐을 열어보자고…….


그 해 2014년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 때문에 모든 여행이 중지되던 때였다. 6년 전 나는 대전 J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었다. 제주도 수학여행 일정을 목전에 두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던 1학년 학생들은 두 가지 이유로 크게 우울했다. 첫째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어 놓은 너무나 큰 사고에 대한 충격이고, 다른 하나는 일생에 한 번 뿐인 ‘수학여행’이라는 청소년기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억압당하는 괴리감에 대한 우울이었다. 여행은 취소되고 1년 내내 학교는 단체 활동을 할 때마다 떼죽음 트라우마와 요란한 사전 안전교육에 시달려야만 했다.

1학년 9반 담임인 나는 셋째 아기를 임신하여 2월 초에 출산 예정인 불편한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 여학생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돌출 행동을 하였다.

당시 원자력 발전소 측은 방사능 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홍보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월성 발전소를 견학하며 경주 문화와 바다까지 볼 수 있는 1박 2일 무료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서둘러 신청하였고, 아이들과 학부모님의 동의로 1학년 과정이 모두 끝난 2015년 2월 첫 주에 만삭인 나와 학생들은 1학년 9반만을 위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월성원자력발전소’하면 올해 경제성 평가에 대한 조작 의혹으로 불거져 유명해진 곳이지만,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었던 곳이며 행복하고 순수한 우리들의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퇴직하신 원자력 박사님과 직원이 여행 가이드로서 전세버스에 올라타 전 일정을 동행하며 원자력 공부도 시켜주었고 거대한 규모의 시설을 둘러볼 때마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마중 나와 진지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거기에 안압지 야경, 맛난 물회, 비수기였던 덕에 더 아늑했던 호텔 시설과 조식 등이 더해져 수준이 더 높은 여행이 가능했다. 또 호텔에서 세 시간 동안 특별히 내어준 연회장에서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지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일정의 마무리에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적으며 차분히 끝을 맺었다.

우린 그 편지를 타임캡슐에 담아 밀봉하였고, 까마득하게 먼 미래였던 2020년에 다시 만나 열어보기로 약속하면서 안전하고 감동적인 최고의 수학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까마득히 먼 미래였던 2020년, 수학여행으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타임캡슐을 열기로 약속한 시간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세상을 지배하고, 마스크가 없으면 집 앞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1학년 9반 타임캡슐 개봉 날짜가 다가왔는데도 모임은 취소되고 무기한 연기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코로나19 예방 차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5년 전 캡슐에 담겨있는 내가 5년 후의 내 모습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지만, 5인 이상 모이면 안 된다는 방침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과거에 생각했던 대로 꿈을 아직 다 이루지 못했거나 생각대로 못 살고 있다면, 오늘에 와서 나의 희망은 어찌 변화시켜야 할까?

오행에서는 해(亥, 돼지), 자(子, 쥐), 축(丑, 소)을 겨울이라고 풀이 한다. 신축년은 흰 소의 해라고 덕담이 오고 가지만, 과거 소의 해에는 힘든 경제 위기가 많은 해였다.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9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도 모두 소의 해였다. 2021년 신축년은 팬데믹(세계보건기구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등급),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경제 빙하기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동토(冬土)의 시간, ‘나’도 ‘나’이지만 이제 사회초년생이 됐을 J고등학교 1학년 9반 아이들은 어찌 지낼까?

경제적으로 너무 힘이 들면, 상서로운 흰 소지만 광우병에 걸려 미치고 팔짝 뛰는 것처럼 우리도 관용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안하무인 냉정의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장사도 힘들다. 만남도 두렵다. 생명을 위협하는 분위기 속에 겁 없이 행동했다간 포상을 노린 이웃 코파라치(코로나 파파라치)에 의해 신고당하는 감시 독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많은 부(富)가 사람으로부터 오는데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어두운 시대 긴 터널에 갇혀 좌절할까 겁난다.

학생들과의 대화


보고 싶은 우리 반 아이들! 5년 전 단체 안전교육에 덧붙여 강조한 이야기, ‘스스로 깨어있으라.’ 어떤 상황이든 큰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하여 잘 버티기를 바란다. 기억해다오. 열어보지 못한 타임캡슐 속에 우리들의 희망이 들어있다. 열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포기하지 않고 더 잘 해보겠다는 의지로, 더 크게 성공하기 전까지 만남을 유보시키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위기의 현실, 어두운 터널의 긴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여기고, 희망을 가슴에 품은 행복 확진자로 자가진단 해보자.

학생들과의 대화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에는 평소보다 2~3배 쉼과 여유를 의미하는 ‘페르마타’라는 음악 용어와 같은 의미가 있다. 또 월계수 왕관이라는 뜻도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 설렘의 대상일 수도 있다. 타임캡슐은 우리 교정에 더 묻어 두자. 그리고 언젠가 꼭 만나자. 기다림과 설레는 마음을 한 편에 간직하여 오늘을 사는 데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어 곧 행복이 되기를 새해 아침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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