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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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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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 위선환
나는 더디고 햇살은 빨랐으므로 몇 해째나 가을은 나보다 먼저 저물었다
땅거미를 덮으며 어둠이 쌓이고 사람들은 돌아가 불을 켜서 내걸 무렵 나는 늦게 닿아서 두리번거리다 깜깜해졌던,
그렇게 깜깜해진 여러 해 뒤이므로
저문 길에 잠깐 젖던 가는 빗발과 젖은 흙을 베고 눕던 지푸라기 몇 낱과 가지 끝에서 빛나던 고추색 놀빛과 들녘 끝으로 끌려가던 물소리까지, 그것들은 지금쯤 어디 모여 있겠는가
그것들 아니고 무엇이 하늘의 푸른빛을 차고 깊게 했겠는가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길이 참 조용하다
사람의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더디게 오래 걸어서 이제야 닿는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하듯이,
―
갇혀버린 코로나의 세계. 혼자만의 영역에서 뒹굴다 문득 그의 시가 떠오른다.
그는 맑고 깨끗하고 그리움에 사무친 시인이다.
나직나직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청아한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은 흔하거나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자연과 동물들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것들을 모사한다거나 베끼는 것이 아닌 한 마디로 꿰뚫고 있는 것이다.
즉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 위선환 1941, 전남 장흥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 <두근거리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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