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처님 오신날] 천태종 종회의장 & 삼룡사 주지 무원스님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마음 하나 잘 쓰는 것이 법을 담는 일이다”를 삶의 지표로 삼아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가 천태종의 3대 지표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5.07 14:52 의견 0
무원스님

예부터 3대(代)가 선을 쌓는 가문에선 훗날 스님이 탄생한다고 했다. 강릉출생인 무원스님은 태백산맥 중심지인 강원의 영험한 기운을 갖고 불교에 귀의하고자 1979년 구인사에서 대충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해 오늘날 제17대 천태종 종회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천태종의 서울포교 제1호 사찰 삼룡사 주지로 취임했다. 엄격한 불가의 규율뿐만 아니라 ‘보시행’ 속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올바른 마음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다문화센터, 영통사복원추진단장, KCRP 부산, 대전, 충남, 세종 상임대표 회장, URI세계한국종교인연대 공동상임대표 등을 두루 거쳐 남북관계 개선과 올곧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불교계 거장의 지혜와 미래를 시사저널 청풍이 조명해봤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슬로건은 부처님의 8만 4000여 법문을 함축한 것으로 부처님의 인과의 법칙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착한 행(行)을 실천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행해야 하느니라. 선행(善行)을 이어가면 복덕(福德)이 쌓여서 언제 어디서나 행복이 찾아드느니라. 아무리 부자라고 남을 위해 베풀 줄 모르면 부유해도 가난하며,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할 수 있다”고 설파하셨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을 베풀다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들도 행복해진다(자리이타自利利他). 각자의 삶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과 이웃을 위한 자비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 수행으로 모두가 공평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요즈음 신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또 찾아오는 정치인에게는?

우문현답이라 정치인이 아닌데 무슨 답이 있으랴? 신도들이 요새 자식 결혼 걱정, 직장걱정하고 그렇다. 건강관리도 잘하라고 당부 드린다. 연로하신 신도님들에게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śvara. 모든 것을 내려다보시는 지배자)을 많이 부르시라고 말씀드린다. 관세음보살을 많이 부르면 인연봉덕으로 내 마음의 부처를 만난다. 내 마음의 부처를 만나면 내 마음을 관(觀)하고 소리를 들을(音) 수 있다. 그래서 관과 음을 잘 바라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내 마음의 자성의 소리(불성의 소리, 심성의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내 마음의 심성의 소리를 들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하지 말 것인가 하는 지혜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의 꽃을 피우면 꽃향기 따라서 벌 나비가 날아오듯 돈과 사랑 명예의 복덕이 구축함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몸만 건강한 것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이 코로나시기에 강조한다. 몸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까지 건강하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삼룡사 주지 진산식에서 어린 신도로부터 취임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는 무원스님

생활밀착형 쉬운 화두로 다가간다

비전은 내 마음자리 잘 지키는 것으로 코로나19 시대여서 신도가 250여 명 정도 참석하고 있다. 비대면 유튜브 강연을 했으나 신도들이 거기에 중독되면 게을러질 것 같아서 부처님 보고 싶으면 개별참배를 하라고 말했다. 집합금지 정책에 불자들은 철저히 따라야 한다. 불교에 다섯 가지 법사 수행 중에 사경 수행이 있는데, 경전, 무량의경, 법화경, 관보염보살행법경, 부모은중경을 사경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어서 집으로 보내주니 처음에는 당혹해서 우왕좌왕했던 3000여 명 신도들도 굉장히 좋아해서 우울증도 불안증도 가라앉더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들었다. 소욕지족으로 시절 운을 따라서 족함을 알고 마음을 좋은 말로 삼고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니 코로나도 이겨낼 것이다.

삼룡사는 동네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데 처음에 와보니 주민들이 무심코 내다 버린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한 차를 실어서 정리하고 꽃밭을 만들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환경미화를 했다. 대전에 광수사도 처음에는 어수선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전지하고 다듬고 해서 현재는 아름다운 공원사찰이 되었다. 삼룡사는 천태종의 서울포교 제1호 사찰임에도 다소 등한시된 형편인데, 내가 와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시내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갈 것이다.

출가를 하시게 된 동기는

나는 생로병사의 마음, 내 마음이 어디 있는가 찾고 싶었다. 불자이셨던 부모님이 열반하시고 어린 나이에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공부하고 싶어 1979년 19살에 절에 들어갔다. 은사스님이 내가 출가할 때 당부하신 “마음 하나 잘 쓰는 것이 법을 담는 일이다.”라는 말씀은 내 일생에 수행자로서의 삶의 지표가 되었다.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수행을 하는 수행자로서 시절 인연에 따라 부여받은 임무를 다하고 있다. 지금은 중생과 더불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고 좋은 일을 만들어가는 주인공 역할을 서로 함께하자고 법회를 통해 호소를 하고 있다. 나도 좋아지고 신도님들도 좋아졌다. 바로 부처님의 인과법칙에 의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이것이 해탈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항상 즐겁다.

불교의 사회복지와 대중문화운동에 힘을 다하시고 계신데

복지의 관점은 복지관 운영이 아니며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건물 이런 것 말고 공동체문화로 가야한다. 공동체문화 정책으로 국민들의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사회 복지부터 전반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특히 핵가족시대에 남과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니 행복지수를 넓혀야 한다. 사회풍토 조성을 하려면 사회복지사들이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시대에서 벗어나 고급화되어 영성이 있는 쪽으로 개발해야 한다.

성별, 연령, 인종에 관계없이 베풂을 펼치는 한국다문화센터 무원스님


불성이 영성이다. 부디 언어를 따지지 말기 바란다. 사람마다 신령스럽고 영혼을 맑게 하는 마인드가 있다. 더 깊이 들어가야 불성이다. 내 마음 속 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마음을 잘 닦아서 각자의 인생명작을 만들어야 한다. 진짜 답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사람마다 힘든 것이 다 있으며 나만 혼자 힘든 것은 아니니 혼자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 밤 9시 반부터 30분 정도는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는 명상을 진해하는 프로그램을 5일 동안 진행한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인데도 대략 50명 정도가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다. 가정도 집이 있듯이 이 육체도 몸집이 있다. 몸집의 주인은 마음이다. 마음이 중심이 돼서 살아가야 한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과 수행을 해야 하는데 마음을 제쳐둔 채 그렇지 못하니까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생명 살리기가 실천불교

세계적으로 장기화되고 있는 저성장과 취업난과 함께 결혼과 출산이라는 보편적인 트랙에 진입하지 못한 채 주거 분야에서 극단적인 양극화까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기말적이고 우울한 시대전망에 청년들의 좌절과 위기의식이 극대화된 것에 종교지도자로서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청년들이 건강하게 사회에 편입되고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견고한 패러다임을 깨어버릴 기회는 오히려 지금이다. 기득권 혹은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역지사지하는 마음과 자비심으로 세대 간 서로 보듬어주기를 강력히 바란다.

불확실한 시대에 희망보다 불안한 부표로서 표류하고 있는 청년들이 안타깝다. 철학과 사유하는 삶은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도록 내몰렸지만, 주체적 인간으로 홀로 서기는커녕 정규직과 화폐의 노예로 전락한 상황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여러 시도를 해보라고 내몰리지만 획일적인 학교 커리큘럼에 묶여서 청소년기부터 명문대학 합격에 매달리고, 대학에서는 취업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주체적 삶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과 평판에 휘둘리는 삶이 되어버렸다.

분수에 맞춰서 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 따라서 욕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진리인 면이 있다. 청년의 특성상 극단적인 개인주의라든지 가족 이기주의라든지 혹은 허무주의라든지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평적 연대를 위해 의식을 확대하기 바란다.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경제논리에서 탈피하기 바란다.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그려가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남의 잣대가 아닌 내 자신의 내면이 기뻐하는 것을 시도하기를 바란다. 여러 가지 시도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시각장애 색소포니스트 이예슬이 무원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울러 대학불교학생회도 2000년대 들어서 200여 곳에서 6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운 통계보고서도 있다. 한때 독재정권의 시기에 정치적으로 암울하였던 시절에 청년들은 깨어있는 절을 드나들며 시대의 아픔을 교감하고 위로를 받았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과거에 어느 정도 정치개혁을 열망하던 청년들에게 소통과 위로의 공간, 든든하게 믿고 언제든지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했었다. 구태의연하고 관념적이며 다소 올드한 이미지로 각인된 불교계가 쇄신될 수 있도록 청년들이 가까운 절에 자주 방문할 수 있게 빗장을 활짝 열어놓겠다.

이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할머니들이 현금으로 주는 ‘서까래 시주’에 기대서는 안 된다. 법인을 만들어 돈의 쓰임새를 투명하게 공개해 젊은 신도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모든 종교는 젊어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주지에 의한, 할머니들의 시주에 기댄 사찰운영을 반대하며 공정성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 탓이나 환경 탓 사회적인 문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내 말은 건전한 사회발전을 위한 비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적인 착각이나 생각 패턴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비판이나 해대는 게으른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차라리 감사하다는 진언을 읊조리자.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먼저 내뱉고 마음밭을 긍정씨앗으로 가득 뿌려보면 어떨까 싶다. 허황된 욕심을 내지 말고 순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분수에 맞는, 순리에 맞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즉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이고 고정된 관점을 자신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대신에 상황의 맥락을 유연한 태도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려는 것이 바로 청년의 특권이 되어야 한다.

환경문제의 접근―불교적 ‘생명 살리기’로 지구도 포용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5월은 아름답고 좋은 계절이다. 자연과 공생해야 하며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복원과 보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교리가 인간과 자연의 연기적 관계를 진작 설파했기 때문이다. 우리 삼룡사에서도 실천하고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신도교육이 진행 중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원칙으로 돌아와 근면하고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것이다. 진선미에서 부족함이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조금 여백을 두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정치인들이 지키는 것도 공약이지만 아무리 좋은 공약도 시절 인연이 맞지 않으면 화가 돌아온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성실하게 일을 해야 지혜가 나오고 삶의 노하우가 나와서 새로운 삶의 발전과 비전이 나올 수 있다. 인정도 사정도 다 내려놓고 내가 책임질 수 있도록 마음보는 연습을 ‘생활’ 속에서 계속하라. 감정에 휘둘려서 혼탁해진 마음을 바라보라.

이제껏 살고 보니 내 힘으로만 살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보자.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피어난 매화나무가 저 혼자 자라지는 않았을 게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주는 햇살에 움이 트고 싹이 돋고 내리는 빗방울에 살이 찌며 마디가 굵어지고 꽃을 피우고 가지는 하늘 높이 뻗어 오른다. 공평한 부처님의 손길이 빠짐없이 구석구석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푼 까닭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보이는 손길과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두루두루 연결되어서 살만한 것이다. 억겁을 통한 인연으로 만난 귀한 관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들이다.

다문화·다종교 시대를 맞아 서로 소통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내가 다문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오래 전이다. 인천 황룡사 주지로 근무할 때, 명절에 고국에 못가고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이 차례상을 차리고 경배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찰참배를 하고 절하는 모습이 각 나라마다 다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도와주고 싶었다. 다문화노동자들이 어려운 점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껏 돕는 데까지 도왔다. 후에 서울의 명락사 주지를 하면서 이주여성들을 위해 포교를 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2013년도에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를 각계각층의 인사를 만나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센터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레인보우 어린이합창단을 만들어서 다문화 돕기 캠페인을 많이 했다.

성별, 연령, 인종에 관계없이 베풂을 펼치는 한국다문화센터 무원스님

심층적으로 접근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버림받은 다문화 모자가정이 눈에 들어왔다. 다문화모자 이주여성들의 애로사항을 듣다 보니 국적도 취득하지 못하는 등 실제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만등불사를 종교인으로서 힘닿는 데까지 노력했다. 신도들이 ‘다문화’를 처음 들으니 ‘다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식들이 외국에 살 때 문화가 다르면 다문화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서로 천대를 받지 않고 천대하지 않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다문화 등을 달라’고 설득해 등 1만 개를 채웠다. 2009년에 봉천동에 고시촌 20칸을 구입하여 명락빌리지를 만들었다. 쉼터에서 공동생활을 하다가 좁은 공간이라도 모자가 같이 있는 곳이 생기자 극락이라고 표현했다.

모자가정의 아이들을 어른이 돕는다고 하니 신도들이 분별심을 내려놓고 부담을 갖지 않더라. 나는 한 걸음 더 나가서 핵가족시대에 사람이 그리운데 한 달에 한 번 손자 손녀를 보듯이 만나서 짜장면 한 그릇 사서 같이 먹으면 되니 부담 갖지 말고 자매결연을 하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자매결연을 맺다보니 노인들도 외로움을 달래고 아이는 존중을 받으니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누구라도 우리가 지켜야 한다.

내가 종교인이고 스님이라 개인플레이를 할 수 없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부산 삼광사에서는 베트남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서 베트남빌리지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경험해보니 그 다음은 쉬웠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서로 만나 마음을 내놓고 서로가 한 형제라는 것을 확인할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희망키움넷 사단법인을 만들어 다문화청소년 관련 사업도 많이 했다. 15개 사찰을 창건하고 주지로 소임을 다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갖다 보니 어느덧 전문 분야가 되었다. 허허허허.

처음 다문화운동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이제는 ‘다문화’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나는 이제 ‘다문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세계인’이라고 쓰자고 제안했다. 서로 공존하는 시대이다. 우리도 나도 너도 세계인으로 살면서 ‘서로가 함께 동행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탈북자를 새터민 이라고 했지만 싫다고 해서 그대로 탈북민이라고 사용하게 되었다. 세계인이라는 표현은 서로 기가 사는 일이다, 불교계에서 다문화를 선도했던 나의 제안으로 용어를 바꾸어 쓰기로 했다. 정각회 이원욱불자회장이 차담하면서 서로 교감을 했다. 서울에 올라왔으니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현재 삼룡사를 재건축 중인데 세계인의 사찰로 거듭 날 것이다.

“지금은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고 인류 모두가 공동운명체임을 자각해야 할 때다. 국적·인종이 달라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세계일화(世界一花) 차원에서 중생은 모두 하나”라며 “이곳 삼룡사가 위치한 중랑구에 다문화 가정이 많은 만큼 다문화인들과 함께 공생·공존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 http://www.beopbo.com

“국적·인종이 달라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세계일화(世界一花) 차원에서는 모두가 한 중생이니 편을 가르거나 나누면 안 된다”고 다문화를 보는 불교의 관점을 강조했다. - http://www.jbnews.com

같은 맥락으로 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중심으로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민족종교가 원만하게 교류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종교다원주의에 가장 많이 열려있는 편이고 불자라면 더욱 성숙한 태도로 서로 융화하며 평화를 구축하고 평등한 세계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개성 영통사 복원 불사과정에 대해서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가 천태종의 3대 지표이다. 나는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에 자연스레 연이 닿았다. 1995년과 1996년 개성 지역에 대규모 홍수 피해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영통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북측에서 일본 와세다대학에 발굴 조사를 신청하여 드러난 흔적들이 결국 영통사 사적지로 증명이 되었다. 영통사는 대각국사가 입산, 출가, 열반한 성지이다. 대각국사의 부도탑과 비가 출토되었다. 일본 천태종 종무청장이 우리 대한불교 천태종에 지원을 받아 복원 불사가 원만하게 잘 되겠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천태종-조불련, 개성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법회 봉행

북한은 수백억 규모의 현금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2003년 베이징에서 세 차례 열린 영통사 복원추진위원회의 회의에 의해서 대한민국 실정법에 맞추어 현물 지원을 하게 되었다. 당시 기와 46만 장 지원을 합의하였다. 나는 남북이 물자교환으로 문화적·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에 감동했다. 북한에서는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와달라고 수송 루트를 제안했지만 당시 추진단장이었던 나는 단호하게 “가까운 육로를 놔두고 왜 돌아서 배로 가느냐? 기왓장이 다 깨질 것이다.”하고 설득했다. 그래서 북측에서도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북이 38선으로 분단된 후 경의선 육로로 물자가 들어가는 용단을 내렸다. 서로 오고 가는 인연이 원만한 결과를 이루게 하였다.

나는 단장으로서 비무장지대를 거쳐서 2박 3일간 체류하며 운송행렬을 이끌었다. 북측 경계 구역에 도착했는데 당시에 건물이 하나도 없고 컨테이너조차도 없었다. 허허벌판에 허름한 나무 책상을 놓고 세관, 통관, 인민군들이 나와 여러 검사를 하였다. 2003년 1월 27일, 역사적인 첫 기와 수송을 시작으로 총 6차례에 걸쳐서 46만 장의 기와 지원이 이루어졌다. 기와는 안산에 있는 기와 공장에서 만들었으며 역사 유물로 남을 거라는 추측으로 천태종 종조 사찰을 복원했다는 점과 모든 문화를 아울러 나타내는 『천태종』세 글자를 기와에 찍었다. 천태종 신도님들의 기와시주에 감사함과 통일불사에 참여했다는 증표로 후손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천태종-조불련, 개성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법회 봉행

기와 불사가 끝나면서 단청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북한에서는 단청 재료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담당하면서 고려시대의 향기가 나는 고려시대의 문장을 재현하였다. 북측에서도 상징성이 분명한 것으로 불상을 자신들이 만들겠다고 주장하였고 나도 그 의견을 존중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석고 불상을 모시게 되었다.

산길을 돌아 개천 위에 시멘트로 살짝 괴어놓은 옹색한 다리 위를 18톤 트럭과 14톤 트럭이 각각 기와 5천 장을 싣고 일렬로 지나갈 때마다 지켜보는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 한 번은 트럭이 도리산을 돌다가 전복되었는데 쏟아진 기와 5천 장을 모두가 힘을 합쳐서 트럭에 다 실어서 감쪽같이 무마시켰다.

영통사 절 바로 아래 영통사 복원 작업하는 사람들 600명이 반지하에서 생활을 하기에 내가 초코파이 600박스를 가져가서 한 사람에게 한 박스씩 나누어 주었는데, 보위국이 다 빼앗아 자기들이 가져가고는 일꾼들에게는 달랑 초코파이 한 개씩만 나누어주었다. 그 후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 가지 물자를 최대한 많이 박스에 담아 가지고 가서 북측 경계 구역에 보거나 말거나 내려놓고 왔다. 그런 정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그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다.

나중에 성지순례를 오려면 길을 만들어야 했다. 북측에서 중장비를 지원해서 길을 만들기로 했는데 통일부에서도 안 된다고 하여 여러 설득 과정을 거쳤다. 통일부와 국방부, 미군 단체협의회에서 관광도로 닦는 사업만 하는 용도로 중고 중장비를 사서 지원해주었다. 영통사 복원식을 할 때 남북통일의 시초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만남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문화통일이라고 생각했다.

2005년 10월에 역사적인 영통사 낙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남북한 문화 교류사업에 부처님 오신 날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하였다. 공동으로 촛불을 밝히고 학술세미나도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북측과 사업을 하려면 물질 거래를 하는데 사업 마케팅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며 과장되게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천태종은 애국불교 차원으로 성지순례 시범 사업으로 2007년 5월 29일 출발하게 되었는데 남북이 오고 가는 순례 문화를 통일의 역사적 의미로 함의하기 위해서 7월 7석에 맞춰서 갔다. 7월 백중 때 6·25 때 희생된 희생자 영가 모두를 천도하는 천도제를 지냈다. 북측에는 막걸리가 없기 때문에 내가 포천 막걸리를 가져가 영통사 기와 불사를 터를 다지며 막걸리를 올려서 그쪽 사람들이 막걸리 맛을 보았다.

개성 영통사 성지순례를 일주에 1번 혹은 2번씩 하면서 영통사 입장료를 300달러에서 50달러까지 낮추었다. 나중에 개성 관광사업이 현대측과 이루어지면서 현정은 회장과 5시간 동안 담판을 지었다. 영통사 복원 불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은 통일의 염원 덕분으로 믿는다. 우리 한반도 한민족의 DNA를 성취하기 위해서 통일은 계속 가야 된다고 믿는다. 국토통일도 중요하지만 문화통일, 경제통일 등 낮은 통일부터, 작은 통일부터 풀어가야 된다.

문화통일을 하고 경제통일을 할 때, 진정한 국토통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염원하였다. 남북통일과 서로가 평화통일을 정착시킬 때 문화통일도 있지만 정이 통하는 정통과 정이 공감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남북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는 일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기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소원> (무원 저. 2018년) 참조요약

지난 3월 14일 삼룡사 주지 진산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무원스님

‘대중불교는 산중이나 승단 안에만 갇혀 있는 불교가 아니라 사회적 대중화로 나아가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불교여야 하느니라.’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上月圓覺·1911∼1974) 대조사의 설법이다. 애국, 생활, 대중불교가 천태종의 3대 지표다. 불교의 장점이 참선과 염불, 사경(寫經·경전 필사) 등 단독으로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지만 부처님 공부를 절박하게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불자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지혜와 자비심으로 거듭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공존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다문화와 다종교의 소통과 자비 나눔, 기도정진의 열기로 힐링행복도량으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무원스님 부산 삼광사에서

무원 스님은 1979년 대충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해 총무원 사회부장, 개성 영통사 복원위원회 단장, 금강신문 사장, 총무원장 직무대행, 부산 삼광사 주지 등을 지냈다.

2021년 대전 광수사 주지 4년 임기를 마치고 현재 천태종 제 17대 종의회 의장 겸 서울 삼룡사 주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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