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송 서용률 인생이야기, 바위에 새긴 소나무의 큰 꿈―다시 시작이다 『변혁과 희망 ‘그리고 함께’』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5.10 16:05 의견 0

임시직으로 시작해 3급으로 정년퇴직한 나는 항상 단 한 가지의 원칙을 지켰다. 작거나 크거나 사회 정의 그것 하나만 붙잡고 갔다. 언젠가 맑은 사회가 도달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끝까지 믿으며 밀고 나갔다. 내가 옳다고 하는 일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공공의 선이다. 공공의 정의와 선을 위하여 부정직하거나 불합리하거나 아니면 소수가 그 일을 추진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얻거나 하는 것을 나는 참지 못했다. 그래서 부조리한 것을 개선해 나갈 때 나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나의 사리사욕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정당당했다.

서용률 대표와 저서 『변혁과 희망 ‘그리고 함께’』

책 제목이 간결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이 듭니다.

아, 그런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 공무원(직장) 생활 41년을 응축한 제목이다. 우리 사회가 서서히 공무원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시작되던 시기에 나는 공노조 준비를 하면서 사회적 변화의 도도한 물살에서 소수보다 다수의 이해관계 증진을 추구하였다. 소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기보다 대다수가 행복하고 평등한 근무환경을 획득하고 동시에 사회적 지지를 바탕으로 성숙하기를 원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전지구적이자 국제주의인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물론 그 당시 많은 교육을 진행했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배워서 얻은 인식들이다. 40세 넘어서부터 컴퓨터에 저장을 하면서 일기형식으로 기록을 해 놓은 게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00년도부터 공무원 직장협의회(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초창기의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시직으로 출발했으나 공무원 생활을 순탄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공무원사회가 옛날부터 관습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 좋았다.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는 구조라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 공무원직장협의회에 관한 법률적인 근거가 마련되면서 큰 힘은 아니지만 나의 움직임이 공무원노동조합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이 있겠다 싶어 뛰어들었다.

“넌 임시직이라 밑바닥에서부터 배워야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서 대성고등학교 3학년 때 상위권에 진입한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원서를 써달라고 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써주지 않았다. 나는 원서도 쓰지 않고 곧장 재수학원에 등록했지만 뜻대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상실의 시대처럼 마구잡이로 살았던 재수생인 우리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공무원시험을 쳤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홍성으로 발령이 났고 나는 딱 한나절 출근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홍성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운명은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집에 오셔서 ‘아버지 속 그만 썩이고 일을 배우라’고 하셨는데, 그 계기로 충청남도교육위원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들었던 첫 마디.

“넌 임시직이라 밑바닥에서부터 배워야 한다.”

그 한 마디는 내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실패의 기간 동안 묵묵히 버텨내는 근기였다. 나는 일을 무섭게 했고 주어진 일정보다 항상 먼저 끝냈다. 조직 사회에서 선배들이 일 잘한다고 칭찬하고 인정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신체의 근육을 단련하듯 정신의 근육도 업무를 통해서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련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홍성의 양반 정신인 것도 같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는 ‘사회적 편견’을 비틀었다

보조수(일반직 9급 대우)! 요즘 표현으로 비정규직으로 나의 공무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우리나라 중부권 최초의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시도했었고, 들불처럼 공무원 사회에 번져나갔다. 외부와 연대하는 것도 배웠고, 충청권에서 공노조가 확산되며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불평등을 개선시키고 공무원도 노동자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변동과 맞물려서 활발하게 진행하고 때론 좌절하고 또 희망을 나누어 가졌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 빛과 그림자, 앞과 뒤, 전진과 후퇴, 장점과 단점, 이런 양면성에서 중립이란 과연 무얼까? 절개와 변절,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빅 어젠다(big agenda)인 공무원노조설립의 준비단계에서 초석을 다지는 나의 임무는 계속되었다.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역할이 끝날 때까지 몸 바쳐 일하고 역할이 끝나면 다음 기수에게 넘겨주고 깔끔하게 떠나리라고 다짐했었다. 연대의식에 대해 눈을 뜬 것이고 서로 힘을 합치면 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바위에 새긴 소나무의 큰 꿈―다시 시작이다

나는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살아내고 깨어있고 싶다. 오늘을 무의미하게 그럭저럭 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나는 수많은 세잎클로버 속에 띄엄띄엄 숨어있는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으련다. 왜냐하면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천 서씨(시조 신일) 10대손에서 분파된 연산 서씨(시조 준영)의 20대손으로 1959년(음력) 2월 9일에 충남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에서 태어났다. 언론인으로 정치 언저리에서 활동하시는 아버지가 타지에서 생활하시는 동안 홍성 시골집에서 어머니는 솜방(작은 가게)을 운영하면서 농사를 지으셨기에 장남인 내가 전적으로 도와드려야 했다.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장남인 나는 시골에 남겨진 할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책무를 가졌다. ‘중학교만 마치고 집안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명을 뿌리치고 나는 대전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서 자취방을 구하고 대성고등학교를 다녔다. 대성고등학교 동문이라는 것이 나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내포 신도시로 교육청이 이전해서 나 역시 홍성에 주민등록을 옮긴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홍성의 아들로서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홍성군민을 위한 활동을 제대로 하고 싶다. 현재 홍성군수가 3선이신데 나도 한번 도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제 세대교체의 시기이다. 아마도 군수 선거에 수많은 잠룡(潛龍)들이 떠오를 것이고 각 정당마다 내세우는 후보들의 각축이 시작될 것이다. 내년 3월의 대선의 판도에 따라 각 당의 후보자의 대선후보 지지가 경선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대선 결과와 집권 여부에 따라 여론이 쟁점화될 것이다.

홍성군수직 출마 공약을 이 자리에서 조금 피력하신다면

당연하지만 나는 무소속을 선택할 것이다. 인지도와 조직력을 갖추기에는 쉽지 않은 머나먼 길이지만 일단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발품을 팔아서 민생의 절실한 요구를 수집하고 코로나로 위축된 여러 생활 권역의 민생회복이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한다.

정치는 구도와 세력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홍성군수 예비후보자가 되는 나에게 “군민을 섬기는 일꾼이 되겠다”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함의하는 범위는 참으로 넓다. 나는 행정전문가로서 홍성군민들에게 서비스를 할 줄 아는 군수가 될 수 있다. 일선에서 많은 경험을 해온 나는 선거에 합당한 구도를 구성할 것이고, 역동적이고 목적이 분명한 조직의 구심점이 될 것이다.

행정은 투명하고, 공무원들은 군민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흥청망청 낭비는 이제 그만이며 군 살림을 아껴야 하는 행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군민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군수가 되어 정치력을 발휘하겠다. 구태의연하고 허황된 공약과 사탕발림의 말은 버리고 진실하게 군민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을 것이다.

후보자로서 홍성군민들에게 진실과 팩트로써 다가설 것이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말씀드리고 군수가 되면 살아온 바 그대로 정의로운 길로 가겠노라고 비전을 밝힐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밝기 때문에 그럴싸한 사탕발림의 복지에 현혹될 군민들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나는 도덕성과 청렴성으로 무장해 홍성의 의병 정신을 되살려 투명한 군 살림을 하며 재정을 바닥내지 않을 것이다. 서로 상생하는 행복한 홍성 만들기에 나를 바치겠다.

석송 서용률(徐容律)

1959년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 출생

학력 : 대정초 / 광천중 / 대전대성고 / 한국방송대학졸업(85학번)

대전대학교최고경영자(CEO)과정 수료(제19기)

충남대학교최고경영자(CEO)과정 수료(제26기)

공무원 및 사회경력

1979.07.28. ~ 2004.06.30. 충청남도교육청 25년 근무(명예퇴직)

2004.07.01. ~ 2020.06.30. 충청남도학교안전공제회 정년퇴직(일반직 3급)

2000.02.26. ~ 2004.06.30. 충청남도교육청공무원직장협의회(초대 및 제2대회장역임)

2003.03.16. ~ 2004.05.30.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총장 역임

2016.11.30. ~ (현재) 학교안전공제중앙회 이사

2019.01.14. ~ (현재) 연산서씨 전국대종회장

국제로타리 3680지구 4지역 총재 역임(인터랙트위원장 역임)

대전엑스포로타리클럽 제18대 및 제24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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