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꼭 잡아 주세요, 아빠!』 & 『악어오리 구지구지』

이해완 시인 승인 2021.05.10 16:33 의견 0

5월을 맞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긴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꼭 잡아 주세요, 아빠!』는 자전거를 배우는 딸과 가르치는 아빠 간의 애틋한 사랑을 , 『악어오리 구지구지』는 오리 둥지에서 태어난 악어와 오리 가족의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꼭 잡아 주세요, 아빠!』

글: 윌리스

그림: 토니 로스

옮긴이: 김서정

5월이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5월이다. 가까운 야산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날아든다. 아카시아나무가 천 개의 손마다 한 움큼씩 모아두었던 향기를 허공에 툭툭 던져주는지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향기를 더 맡으려고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샌지’가 떠오른다. 우연히 빵집 위층 방에서 며칠을 머물게 되었다가, 빵집에서 올라오는 빵 냄새를 흡입하기 위해서 깔때기 모양의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훅훅 들이마시다가 빵 가게 주인에게 들켜 빵 냄새 맡은 값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결국은 재판장에 서게 된 가난한 여행자 ‘샌지’ 말이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샌지와 빵집 주인』(글·그림: 로빈 자네스. 비룡소)의 주인공 ‘샌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샌지’에게 그 기계 장치를 빌려 아카시아 향기를 들이마시고 싶다. 저 바람 속에는 아카시아 향기뿐 아니라 5월의 산천을 수놓은 칡꽃, 등꽃, 오동꽃, 이름 모를 들꽃까지 수많은 향기도 함께 전해 오리라.

5월! 5월! 이렇게 발음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5월의 싱그러움 속으로, 저 바람 속으로 어린이처럼 뛰어들고 싶다.

그렇기는 해도, 시국을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코로나19가 진정되는가 싶어 그동안 보류했던 강의를 재개했는데, 확진자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누군가가 떠오르는 법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던 믿음직스러운 손 같은, 누군가가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힘들 때면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제는 이 지상을 떠나 별이 되어, 저 하늘에서 지켜볼 부모님!

『꼭 잡아 주세요, 아빠!』에서 소피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아빠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아빠는 어린 소피에게 “얘야, 세상 어디든 미끄러운 비탈은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 울퉁불퉁한 길도 있단다. 가기 힘든 길은 늘 있을 거야. 높은 계단이랑 언덕도 있단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전거만 탈 수 있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조금 넘어지는 일, 한두 군데 멍드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빠는 뒤에서 수없이 손을 놓았다, 잡았다를 반복하면서 소피가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갈 수 있는지를 가늠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놓기로 했을 때, 커다란 결단이 필요했을 터이다. 소피는 이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내키면 세상 끝까지라도.

손을 놓는다는 것은 딸에게는 성장을 의미하지만, 아빠에게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딸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이다.

이 책은 자전거 타기를 통한 부모와 자식 간의 성장과 이별에 대한 상징을 담고 있다.

아빠는 비록 손을 놓았어도 마음속의 손은 놓지 않고 꼭 붙잡고 있음을 어린 소피는 먼 훗날에도 기억할 것이다.


『악어오리 구지구지』

글·그림: 천지위엔

옮긴이: 박지민

출판사: 예림당

아이들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본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몇이 머리를 맞대고 뭐가 즐거운지 깔깔대는데, 그 웃음소리가 14층까지 통통 뛰어오른다. 참 좋은 때다.

저만한 아이 때였을까? 아니 더 어렸을 때였을 것이다. 어떤 일을 계기가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다. 니 친엄마 찾아가라.”라는 말이 작은 누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인 줄 알기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치지만 누나는 더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면서 친엄마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까지 알려준다. 주위를 둘러보니 큰누나, 막내 누나, 형의 얼굴에는 미처 못 지운 공범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비록 그것이 누이의 장난에 불과했지만 어린 날의 그 통과의례는 나를 더 성장하게 했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말 주워온 아이라면 마음이 어떨까?

어느 날, 둥그런 알 하나가 수풀을 지나고, 꽃밭을 지나고 다시 내리막길을 데구루루 굴러 오리 둥지로 쏘옥 굴러 들어간다. 그 알은 오리알에 비해 엄청 커다랗지만, 엄마 오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알을 품고 있다.

때가 되어 둥지 속의 알이 하나씩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아기 오리들이 나온다. 그런데 네 번째 오리는 온몸이 온통 푸르스름한 게 아주 괴상하게 생겼다. 이 오리는 자꾸 ‘구욱구욱’ 하고 중얼거려서 엄마 오리는 구지구지라고 이름을 짓는다.

구지구지는 다른 오리들보다 헤엄도 잘 치고, 뒤뚱뒤뚱 걸음마도 잘한다. 그런데 그림책을 눈여겨보면 커다란 구지구지가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있다. 나무로 만든 오리다. 걸어갈 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구지구지가 다른 형제들과 뭔가 다름을 느꼈다는 증거이다. 다른 형제들은 몸집도 작고 넓적한 부리에 날개까지 가지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그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그렇기에 나무 오리인형을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다행히 엄마 오리는 생김새를 따지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 그 덕분에 구지구지는 오리 형제들과도 화목하게 잘 지낸다.

그런데 호숫가에 구지구지와 똑같이 생긴 동물들이 나타난다. 바로 악어다. 뾰족뾰족한 이빨에 너무나 무섭게 생긴 악어들이 구지구지의 푸르스름한 살갗과 뾰족한 발톱과 이빨을 들어, 넌 오리가 아니라 악어라고 말해준다.

악어들은 구지구지에게 오리들을 꾀어서 다리 위로 데리고 오라고 한다. 그러면 자기들은 다리 밑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겠노라고, 속삭인다.

이제 구지구지는 자신과 생김새가 똑같은 악어들을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것이다. “넌 악어니까, 악어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슬픔에 젖은 구지구지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크아! 소리도 질러보고 무서운 표정도 지어 본다. 그러자 물결 위로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물결에 악어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오리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오리도 아니지만 무서운 악어도 아니라며 자신을 악어오리라고 외친다.

이 책을 읽어 줄 때, 나는 가끔 이 대목에서 여러분이라면 악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악어들과 함께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키워준 오리들과 계속 살아갈 것인지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이들의 대답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당사자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지구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이 심각한 문제를 통쾌하게 마무리 짓고 있는 『악어오리 구지구지』를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 이해완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아동문학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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