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비꽃’ 같은 만남들……

송은숙 승인 2021.05.10 16:36 의견 0

우리말 중에 ‘비꽃’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한 방울씩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꽃송이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을 ‘비꽃’이라 합니다. 비꽃은 ‘비가 내리는 길’이란 의미입니다, 비꽃이 먼저 길을 내야 가랑비든 이슬비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비의 길을 처음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봄이면 시골마당 한편에는 들녘에서 가져온 들나물들이 소쿠리에 널려 있었고 양념고추장을 묻힌 가죽잎들이 빨랫줄에 걸려 있었지요. 봄 들녘에 나가시며 곧잘 “꽃비 오거든 비설거지 꼭 해야 한다.” 부탁을 하시곤 했었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리워지는 봄날입니다. 아름답고 싱그러운 봄 햇살에 그리움이 엉기어 무작정 걷고 있는데 후드득후드득 비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리번거리다 예쁜 카페로 들어서니 짙은 커피향과 함께 앙증스럽고 어여쁜 각종 조각케이크가 유혹합니다.

10여 년 전인 듯합니다. 부슬비가 내리던 초봄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선배님, 사무실에 계신가요?”

참 상냥한 목소리에 친근함이 흠씬 묻어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쁘시겠지만 10분 후 회사 앞에 도착할 테니 잠깐 내려오세요.”

오래된 인연이지만 그리 많은 시간을 같이한 적이 없는 분이기에 궁금해집니다.

잠시 후 도착한 그녀는 예쁜 조각케이크 상자와 함께 진한 향이 느껴지는 커피를 내미십니다. “커피숍 지나가다가 선배님 생각나서 샀어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용, 파이팅!!!” 앙증스럽게 말을 던지곤 다시 바삐 떠나시던 그녀는 사업에 입문하면서 마케팅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들으며 고민을 함께 해준 마케팅 샘이십니다. 이 방면에 눈을 뜨도록 도와주고 브랜드에 대한 의미를 던져 준 인연입니다. 그녀는 내게 마중물이었고 비꽃이었던 셈입니다.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면 비꽃의 흔적은 잊혀지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필자에게 비꽃들의 인연들이 참 많았었는데……. 완전히 섞이지 못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정으로 태어난 필자의 축축한 뒷면입니다. 그동안 고마웠던 표현도 하지 못하고 세월을 지내왔다는 생각들이 다시 비꽃을 만나면서 투영이 되는 시간입니다.

인생을 좀 더 살아보니 삶의 전부는 관계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체온을 쬐는 수밖에 없겠지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감정들과의 교류, 지식들의 공유와 교류가 우리 삶을 진화하게 합니다. 우주가 팽창하듯 지상에 사는 우리들은 서로 밀어내기도 하고 저항도 하면서 관계망과 관계의 질이 팽창하는 것으로 서로의 사람이 되어 가면서 지구여행을 하는 것이겠지요.

우주의 법칙에 따르면 진정한 관계란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미는 힘으로 상호 확장을 돕는 관계라고 합니다. 상호 팽창의 본성을 이해하고 서로 거리를 내주면서 따뜻한 에너지를 교류하는 비꽃같은 만남이 수없이 있었기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들과 접하며 그나마 행복하게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가장 예쁜 케이크를 5조각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2샷의 따뜻한 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잠깐 뵈러 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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