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공동체 송차연 대표

매번 기적이 일어난다―함께 하는 기쁨 프로젝트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7.13 14:44 의견 0

한 송이 수련꽃인 듯 하늘하늘한 그니의 외모 안에 옹골차고 단단한 무언가가, 기백마저 있다. 이유가 뭘까? 투명한 듯 맑아서 그렇다. 처음에 시작은 미미했는데 욕심이 없다보니 동심원처럼 수평으로 넓어져버렸다. 정치색이나 공명심이나 종교적 색채를 가지려 하지 않았기에 그저 투명하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내는 회비로 살림을 꾸려나갈 뿐이다. 매번 수입보다 지출이 기형적으로 많아져도 지출은 오롯하게 나눔으로만 밝혀지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따로 없다. 성서에 물고기 몇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 말이다. 차림새도 금방 달려가서 걸레를 쥐고 닦아야 할 것처럼 언제나 티셔츠에 바지. 준비 끝.

가벼운 몸무게를 지닌 그니는 끝까지 대전시민공동체를 날렵하게 유지할 것 같다. 공동체가 무거우면 유지비가 많이 들 터이니, 유지비를 나눔으로만 계속 사용할 그니에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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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 일을 하면서 2016년 발족

나는 1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고 사회활동을 멈추고 내 아이랑 집에 있었다. 약간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 2013년부터 이런저런 봉사를 했다. 자연스레 소규모 모임이 만들어졌고 아이들과 놀거나 복지관 봉사 그리고 김장봉사 등을 했다. 봉사를 다양하게 시작하는 입장이어서 다른 단체를 찾아다니면서 합류했다.

보라매공원 한쪽 무대에서 작은 공연을 주관하였다. 3시간 공연을 하는데 80명의 관객이 왔다. 주로 지인들과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춰선 사람들이 모였다. 서구에서 지원비를 받아서 장비와 공연비를 지불했다. 그 공연을 시발점으로 2개월 동안 주말마다 버스킹을 하였고 이어서 힐링아트페스티벌에 참가했다. 2번은 오프닝과 엔딩을 주로 담당했고 총 3번을 참가했다. 사회복지협의회 행사 때 심신 씨와 안치환 씨를 초청했다.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해도 되겠다는 강한 느낌이 내안을 섬광처럼 훑고 지나갔다. 2016년 2월에 서구청에서 공연기획과 관련해 모임의 발대식을 했다. 100명 정도 모여서 시작했는데 2017년 1월부터 그대로 이어갔다. 시작도 조용했고 움직임도 조용히 끈기 있게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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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 활동

대전 서구에 보라매 공원이 있다. 보라매 공원 한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시청 북문 앞에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 평화인권활동의 한 축으로 평화의 소녀상 닦기를 시작했다. 평화의 소녀상과의 만남은 참말로 우연이었다. 6월 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다가 소녀상에 씌여진 손뜨개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양말이 더워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소녀상에게 다가갔다. 꽁꽁 묶인 것을 풀자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녀상과 관련된 봉사단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벗긴 손뜨개 보온재들을 의자에 올려놓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소녀상이 한복을 입었는데 훼손 등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의자에 놓아두고 자리를 떠났다.

평화나비 대전행동지부에 평화의 소녀상 닦기와 타일에 손편지 쓰기를 제안했는데 수락이 안 돼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시작했다. 2017년 1월 22일, 아주 추운 날이었다. 살을 에는 맹렬한 바람과 추운 날씨에 봉사자들이 모였다. 교육청에서 물을 받아서 닦기 시작했는데 시커먼 물이 계속 나왔다. 그런데, 그때 어떤 참여자가 아주 거룩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할머니의 당시 고통을 생각하면서 맨손으로 닦읍시다!”라는 제안 말이다. 우리는 그 제안의 묵직한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더러운 먼지를 닦고 마무리를 하였다. 다행히 동상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참가자는 없었다. 지금까지 맨손으로 소녀상을 깨끗이 목욕을 시키듯 닦는 게 전통이 되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와 무너지는 억장이 함께 풀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걸레를 빨면 청소년 참가자들이 닦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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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남지 않은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해 생존하시는 할머니에게 타일에 손편지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편지를 쓰니 위안부할머니를 키워드로 검색하거나 할머니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도록 짤막하게 서두를 꺼낸다. 모이고 모여서 2019년에 손편지 전시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림활동을 시작한 2017년 1월 22일 37분에서 이제 오직 14분의 할머니가 계실 뿐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닦거나, 타일에 그리거나, 손편지를 쓰는데 17년부터 3년간 약 3천 장의 타일이 모였다. 2019년도에 1,000여 장을 선별했다. 서구청 로비에서 2주, 시청 지하철, 대전역 지하철 역사에서 “대전에서 만나는 위안부할머니 기림 손편지 전시회”를 총 45일간 진행하였다. 100개의 평화나비를 만들고 1004(천사)개의 배지를 나눠드렸다. 21년 5월 22일에 311차를 운영했고 단 한 분의 할머니가 계실 때까지 프로그램은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 예방접종이 시작되고 점차 위험요소가 사라지는 분위기가 정착될 것으로 예측해서 7월부터 스크래치페이퍼로 손편지쓰기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올해 8월 14일 시청 로비에 전시요청 제안서를 냈다. 우리의 마지막 꿈은 ‘소녀의 방’을 만드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 방을 만들고 싶다. 지붕 없는 가건물을 구축해서 시민들이 무언가 쓰고 가기를 원한다. 전시대를 고정시설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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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꽃에 날개를 달고

우리 대전시민공동체도 ‘1365 자원봉사 콜’에 등록한 단체가 되었다. 자원봉사자를 모을 수 있는 단체로서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인원이 50명이다. 초등학생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봉사시간이 카운트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타일에 쓰는 손편지는 주말에 진행한다. 음료도 주고 피자도 가끔 쏘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봉사를 무언가 특별하게 한다.”라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참가 학생이 눈 코 입이 없는 빈 얼굴인 채로 타일을 돌려주었다. 내가 “그림을 완성해서 제출해야지.”라고 했다. “13살에 끌려가서 날마다 수십 차례씩 성폭력을 당해서 멍투성이 피범벅 눈물범벅인 그 얼굴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어요?” 하고 울먹이는 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아이는 눈물 한 방울을 그려놓은 작품도 있다. 4학년 이상이면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작품만들기―전시회―백일장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그램이다. 위안부할머니 기림 편지쓰기는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으능정이에서 시작했는데 한 번에 70장 정도의 참여자가 쓴다.

대전시 공모사업으로 ‘인권 오디오 북 제작’을 신청해서 김숨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한 명>을 선택했고 저작권 문제로 50쪽만 낭독이 가능하다. <한 명>은 ‘지금 **분의 할머니가 계십니다.’라고 시작된다. 37번째 생존 할머니부터 우리가 녹음을 시작할 것이다.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를 통해 스피치 교육과 발음 교육을 받고 있다. 녹음은 10명이 할 예정이라 회원들이 2시간 정도 교육을 받을 것이다. 혹시 녹음사고가 발생할 때 대타를 뛸 임원진들도 교육을 같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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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나눔 활동

2017년부터 생명나눔 활동을 5년 차 꾸준히 하고 있다. 헌혈증서가 필요하다는 지인의 호소를 듣고 시작했다. 백혈병환우 돕기 및 혈액이 필요한 환우에게 약 700여 장의 헌혈증서를 회원들의 기부와 동참으로 따뜻한 마음의 전달을 하였다. 기네스북에 올리겠다는 결심으로 평생 117장의 헌혈증을 모은 분이 우리에게 기부했는데 21년 1월에 혈액원에 200장 기증의 단초가 되었다. 현재 사무실 한쪽에 놓여있는 상자에 헌혈증서 199장이 모여있다. 소아암재단과 협약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기증할 예정이다. 병원에서 연락이 오는 긴급상황 때 헌혈증서를 쓸 것이다. 앞으로도 생명나눔활동 사업은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청소년과 존엄성 수업을 사회 복지 활동으로

2014년 전후에 1년 정도 인권 강사를 잠깐 하였다.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을 받고 활동을 하였다. 인권센터에서 부소장을 하면서 주로 교육을 담당했는데 정치가가 방문한다는 소리에 이합집산으로 우르르 모였다. 나는 정치색을 띄자 바로 멈추었다.

그리고 혼자서 지역의 이웃을 돌보는 활동으로 김장봉사, 현충원 묘비 닦기 등 다양하게 시작했다. 처음에 한 달에 한 번 서구노인복지관, 관저종합사회복지관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하는데 조리봉사를 하였다. 오신 분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2013년에 노숙자 봉사를 했던 터라 그분들이 눈에 밟혔다. 더 낮은 곳을 찾아가 함께 있고 싶었다. 아동과 청소년 대상으로 봉사의 유형을 변화시키기로 했다. 복지원 아동복지센터로 갔다. 청소년 교복지원을 장학금으로 선정해서 30만 원으로 2명만 선정했다. 애들하고 공연하고 놀이하며 즐겁게 이벤트를 하니까 너무 행복했다. 왜 아동으로 바꾸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것도 용기이다. 사회복지 영역은 똑같으니까 말이다.

대전시민공동체 소개

우리 대전시민공동체는 후원회원이 40명, 운영이사는 18명 정도이다. 매년 2월 정기총회에서 수지결산을 공개하고 랜선 모임으로 페이스북에 800여 명이 팔로워로 있다. 매월 소식지로 활동기록을 공유한다. 우리 공동체는 NGO 지원센터와 서구청과 공유 플랫폼을 활용한다. 대전시민공동체의 운영비가 제로에 가깝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의 자부심이다. 회의는 남녀 골고루 40~50명이 모인다. 연회비로 12만 원을 내고 운영진은 24만 원을 내는데 기본 활동비를 모아 두었다. 긴급한 활동을 위해 그때그때 후원금을 모으러 다니는 것도 나의 일이다. 기꺼이 내는 분들이 많아서 항상 감사하다.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 했는데 이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여러분들이 많이 보내주셨다. 일단 돈이 안 들게 회원들의 재능기부도 활발하다.

시에서 행사를 할 때 제공되는 300만 원 중 10% 범위만 써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거의 100% 다 봉사에 지출한다. 예산을 세워도 후원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촘촘하게 고민하고 후원을 받으면 좀 더 풍성하게 봉사를 채울 수 있으니 기쁠 따름이다. 우리에게는 ‘꾸준한’ 사업도 있고 ‘흩어 모여’ 깜작 봉사도 탄력적으로 하고 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보다 수혜자가 받았을 때 기쁨을 나누는 그런 봉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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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마더 테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쁨은 기도이다. 힘이다. 사랑이다.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물이다.”라고…….

송차연 대표를 만나고서 그녀를 움직이도록 이끄는 동인이 무엇일까 생각했더니 바로 기쁨이었다. 기쁨을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무언가 생각이나 이념보다 더 강력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도 그녀는 봉사하는 기쁨, 함께 하는 기쁨 그리고 그렇게 함께 하도록 십시일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기쁨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가녀린 손을 내민다. 같이 그 기쁨을 느끼자고, 차별 없이 공평하게 행복을 나눠 가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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