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림의 퇴직 리부팅] 필요한 곳에서 ‘모퉁이 돌’ 되리… (전)연구소기업협회 회장 권명상(67세)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5.11 14:43 | 최종 수정 2022.05.11 14:45 의견 0
필요한 곳에서 ‘모퉁이 돌’ 되리… (전)연구소기업협회 회장 권명상(67세)


국가산업 과도기… 모퉁이 돌들이 모여 대한민국 이뤘다

집 짓기의 기초이자 초석은 주춧돌이다. 권 회장 세대는 80년대 과도기, 국가 산업기반을 잡고 활성화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권 회장은 자신은 번듯한 정면에 놓인 주춧돌이 아닌, 뒤 곁 그늘 모퉁이에 놓이는 모퉁이 디딤돌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늘진 모퉁이라도 국가발전의 한 축에 있을 수 있다면 감사했다.

“지난 해 8월 뉴스를 보는데 한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를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분류했다는 보도를 하더라고요. 그 뉴스를 보니 눈물이 났어요. 대한민국의 1.5세대 바이오(bio)관여 과학자로서 국가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작은 모퉁이 돌로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 싶어 가슴 벅차고 뭉클했습니다.”

권 회장은 독일에서 면역약리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대덕의 정부출연(연) ‘안전성평가연구소’ 소장으로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과 화학물질에 대한 효능 및 독성 평가 검증 등의 책임자로서 대한민국의 바이오산업에 이바지했다.

“모든 식품이 안전성 검증을 마쳐야 사람한테 문제가 없죠. 약이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개발되는 것이 아니죠. 개발돼도 99% 이상이 걸러지고, 그 나머지 1%만이 약으로 태어날 수 있어요.”

권 회장은 정부출연(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부원장으로서 한의약의 과학화와 표준화를 위한 한의기술표준센터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한약 약재 중에 같은 당귀라도 여름에 채취했느냐, 가을, 겨울이냐에 따라 그 약성이 달라요. 채취 국적, 지역, 시기마다 약성이 다 다르고 당귀의 잎, 뿌리의 어떤 부분을 이용했느냐에 따라서 또 달라지죠. 한약을 표준화해야 재연성(再演性)있는 한약이 조제되죠.”

2015년에는 정부출연 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을 이용하는 ‘연구소기업’들의 질적 성장과 연합을 위해 과학기술정보 통신부 산하의 (사)연구소기업협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국가에서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넘겨서 사업화하길 장려했죠. 초대 협회가 만들어졌을 때, 700여 개 연구소 기업이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연구소기업이 1,200여 개로 늘었죠. 국가가 중소기업에 기술을 내주고 토양을 만들어 육성하는 원리죠. 연구소기업 중 큰 성공을 거두는 사례를 보면 보람됩니다.”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회원들과 한국 문화 체험

독일 정부 장학금으로 공부, 부채의식으로 되갚았다

전기 후기로 대학입시가 나누어지던 시절, 그는 전기에 낙방하고 후기로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하기가 싫어 ‘농땡이’치다 대학 펜싱부에 들어가 운동에 몰입했다. 같이 운동하던 선배가 젠틀하면서도 본받을 점이 많아 따랐고, 그 영향으로 자연히 공부에도 열의를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독일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도 같이 가게 되는 좋은 인연이 됐다.

유학을 대비해 해외개발공사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의 시야에 ‘세계 속의 한국’이란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내심 대한민국의 위상에 자부심을 느끼며 포부를 키웠다. 하지만 독일 유학시절 바라본 모국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독일 하노버 수의과대학 면역약리학 실험실에서 열중하는 그에게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 말했다.

“명상! 너희 나라에 가서는 이런 학문 너무 비싸서 못 써 먹을 건데…….”

면역학 실험을 하려면 무균 상태의 실험실이 필요했고 실험을 1회 마치면 모든 용품과 도구를 다 폐기해야 하는 고비용이 요구되는 실험이었기 때문이었다. 1987년 그가 박사학위를 마치던 무렵에도 한국 경제 수준은 동독이랑 비슷했다고 그는 술회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른다섯 살에 강원대에서 조교수로 시작했다. 독일정부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그는 나름의 부채의식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한국에 오는 다른 나라 유학생에게 이 빚을 꼭 갚겠다’는 결심이 있었고, 교수재직 시절 그가 주선해 조선족 동포 유학생 3명을 유치해 박사학위까지 받도록 길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은 셈이다.

교수직 퇴직 후는, 일과 쉼의 병행… ‘포스메가’ 남성 합창단에서 바리톤으로

국립대학의 교수 정년퇴직 나이는 65세. 공무원과 비교해 퇴직 연령이 높다.

“교수가 되는 연령은 대개가 중년이 되거나 넘어야 해요. 시작점이 일반 공무원과 다른 거죠. 해외의 경우는 교수직에서 정년제가 아예 없는 나라도 있어요.”

그는 몇 년 전 교수직은 퇴직했지만, 암 전문 병원의 요청으로 연구소장의 업무를 맡았다.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이 매시간이 바쁘고 소중하다. 일과는 매일 5시면 새벽기도회를 갔다가 사우나를 가고 건강 유지를 위해 헬스를 한다. 집에서 아침식사 후 연구실로 출근한다.

교수직 퇴직 후는, 일과 쉼의 병행… ‘포스메가’ 남성 합창단에서 바리톤으로

“최근 2주는 한방 천연물을 이용한 동물 암 치료 연구 관련 과제 준비로 꼬박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밤 겨우 다 마무리 하고 제출했습니다.”

이렇게 몰입하는 연구 외에 그는 오랫동안 해오는 취미생활이 있다. 10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 80여 명으로 조직된 남성 합창단 ‘포스메가’에서 바리톤 맡았다. 매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정기 공연을 할 만큼 체계와 명성이 있는 합창단이다. 매주 화요일 7시 반이 연습시간인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 없다.

교수직 퇴직 후는, 일과 쉼의 병행… ‘포스메가’ 남성 합창단에서 바리톤으로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로 활동과 연습을 미루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날이 연습을 재개하는 날이라며 설레어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기록하는 습관… 인생은 퍼즐처럼 맞춰진다

그는 ‘적자생존’의 습관이 몸에 베여있다며 누구를 만나도 그 만남을 기록하고, 배울 거리를 찾는다고 했다. 겸손한 마음으로 교만에 빠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주위에는 다양한 직업군, 다양한 분야, 계층의 사람들이 많아 외로울 틈이 없다고 했다.

“제가 기관장으로 책임을 맡았던 연구소 구성원들의 면면은 다양합니다. 연구원, 연구보조원, 기사, 관리원……. 이들의 호칭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직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조직원들의 호칭을 한 가지 ‘선생님’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과거 내게 기사분이 있을 때는 그를 허 선생이라고 불렀어요. 상대를 올려주면 내가 도리어 올라가고, 모든 관계는 상호존중이 필요하죠.”

필요한 곳에서 ‘모퉁이 돌’ 되리… (전)연구소기업협회 회장 권명상(67세)

그는 결혼생활 41년째다. 부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툼’이 없다는 거고, 게다가 집사람은 ‘No’가 전혀 없는 고마운 사람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자신의 수명으로 2000년까지 살 수 있을지, 막연히 내 피안(彼岸)의 세계가 까마득하다 싶었는데 마흔일곱 되던 해 낯선 숫자인 2000년을 맞이했다며 말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2022년이 됐네요. 그 22년 세월은 제게 덤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아갑니다.”

그가 국가 기관장 등의 중책을 맡고, 나름 잘 이끌 수 있었던 뒤에는 하루하루를 ‘액션’하면서 살아온 결과였다.

필요한 곳에서 ‘모퉁이 돌’ 되리… (전)연구소기업협회 회장 권명상(67세)

“오늘 내가 돌 하나 쌓아놓으면, 언젠가 그 돌이 하나의 퍼즐로 맞춰졌어요. ‘아! 그때 내가 돌 하나 쌓아놓은 것으로 이렇게 나의 스토리가 이어지는구나!’라고 감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작은 돌들이 모여져 내 인생 그림이 됐습니다.”

거시적 로드맵이 있으면, 미시적인 오늘을 충실히 ‘액션’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권 회장의 메시지를 고이 접어 넣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전)연구소기업협회 회장 권명상

학력

건국대학교 수의과 대학 수의학 수의학사
건국대학교 대학원 수의학과 수의기초학 수의학석사
독일 하노버 수의과대학교 면역약리학 수의학박사

경력

현재 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면역약리학교실 명예교수
현재 中國 河南省 鄭州大學 藥學院 招聘敎授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산하 (사)연구소기업 협회 회장
(사)바이오 헬스케어협회 부회장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바이오 프로폴리스 연구회 회장
정부 출연(연) 안전성평가연구소 소장
한국독성학회·한국환경성돌연변이 발암원학회 부회장
정부 출연(연) 한국한의학연구원 부원장
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겸 부속 동물병원장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 장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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