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노코노리수’ 김계진 대표

“주판과 수(數)로 재미나고 기다려지는 수업을 합니다.”
‘노코노리수’로 치매 예방하고 두뇌에 활력을 주세요.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6.03 15:00 의견 0
노코노리수 김계진 대표


■ 김 강사의 ‘노치원’ 수업에서는 수(數)와 웃음이 함께 있어 즐겁다

“어르신들, 이 색종이로 봄을 한번 표현해 볼까요?”

‘노코노리수(놓고 놀이하는 수)’ 김계진 대표 강사가 어르신들에게 색종이를 나눠주며 말했다. 정해진 모범답안만 내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세대. 그들에게 김 강사의 뜬금없는 제안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 앞에 놓인 형형색색의 색종이가 설레기도 하는 어른들이다.

“아니, 어르신. 태양을 세모로 만드신 거예요?”

“태양이 하늘에서 내려 퍼지니까 세모처럼 부서지지….”

“다음은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 볼까요?”

“아니, 필요한 가위도 안 주고 어찌 만들라는 거야?”

“색종이를 찢으셔도, 접으셔도, 구기셔도 되니 마음껏 만들어 보세요. 두뇌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내 보시면 재밌어요.”


한 수강생은 봄에 날아온 제비를 만들었다. 김 강사가 옆에서 돕다 그만 다리를 찢고 말았는데 김 강사 특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적절히 나왔다.

“어머! 어머니, 어떡해요….”

“에구, 우리 선생님이 내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네!”

교실은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곳은 유치원이 아닌 김 대표가 열어가는 다양하고 즐거운 노코노리수 ‘노치원’ 치매 예방 교실이다.

학교 주산 강사로 특유의 재미있고 활동적인 수업방식으로 최다 수강생 등록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김 강사. 주산 수업을 노인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수리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주판을 이용하지만, 같은 프로그램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어쩌면 그 목적이 달라진다. 어르신들은 주판을 앞에 두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향수에 젖기도 했다.

“옛날에 나는 가난해서 주판을 못 가져봤어. 그런데 이제야 주판을 쥐어보네.”

어르신들은 거부감, 두려움 없이 김 강사의 수업에 다가왔다. ‘손가락은 나와 있는 뇌’라고 했는데 손가락을 매양 이용하는 주산이 노인 치매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김 강사의 확신도 강했으니 김 강사는 더욱 고무됐다.

노코노리수 김계진 대표


■ “밋밋한 어르신 복지관 수업 보니 안타까웠어요.”

김 강사는 고령화 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아동 대상 수업을 차츰 접고, 지난 2014년부터 노인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노인 강사·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노인교육 현장에서 만나본 어르신들은 과거, 내 엄마 아버지 대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수준이 아니었다. 다양한 경험과 학력을 가지고 사회 각 방면에서 활약해 오신 세련된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교육장에서 접할 수 있는 교육이라곤 고작, 신체 리듬체조, 율동, 요가, 민요 배우기, 노래 부르기 등에 편협돼있고 새롭지 못했다. 노인들의 수준과 삶의 질은 높아졌는데 공기관의 노인 대상 프로는 제자리걸음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만나 뵙는 어르신들은 정말 현명하시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의 지혜로운 생각이나 경험에서 제가 배울 점도 많았습니다. 교육장에서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프로그램으로 책상에 앉아 한글 베껴 쓰기만 하고 계신 그분들을 위해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것이 없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 특별하고 재밌는 활동 수업 ‘노코노리수’ 노인 교재 발간

고민 끝엔 그는 노코노리수라는 회사를 조직하고 상표 등록했으며, 재작년까지 주산 등을 이용한 노인 두뇌활동 교재 두 권을 발간하고 특허를 받았다. 제1권, 1단계는 ‘뇌가 살아야 내가 사는 치매 예방 교재’로 주판 활용, 주산셈을 기본으로 고흐의 명화 퍼즐 맞추기, 2단계 교재에는 김홍도, 신윤복의 민속화 조각 맞추기, 화폐 인지 활동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는 소근육 활동에 좋은 주판을 활용한 수업을 하되, 연계한 또 다른 두뇌 자극과 재미를 주려 노력했다. 주판은 어르신 손에 맞게 알도 키우고, 알을 튕길 때 소리도 명쾌하고 기분 좋게 나게 특별히 주문 제작했다. 처음 김 강사가 제작한 교재를 어르신께 보이면 먼저 자신 없어 했다.

“아니, 이렇게 큰 숫자를 내가 어떻게 계산해?”

김 강사는 노인들이 심리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높일 수 있도록 교재의 단계별로 특별히 감안한 수식을 만든다. 처음 시작은 받아 올림이 안 생기는 수로 주산과 쉽게 친해지게 한다. 적응이 된 노인들은 문제지 1장을 풀면 ‘내가 이렇게 해 냈어!’라며 굉장히 기뻐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노코노리수’는 현재 노인교실 1년 과정 수업 커리큘럼을 완성했다. 아동 교육 경험치를 살려 여러 교구를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모았고, 1회차도 똑같은 수업 내용이 없다. 아동 수업을 통해 샘플링하고 보완했다. 년 최대 32주~36주 수업 코스로 진행할 수 있고, 수업 차시마다 게임과 다양한 활동으로 수와 연관해 두뇌 자극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교재 예시

1) 화투 게임

화투 그림에도 1월~12월까지의 달이 가진 수가 있다.

화투를 바닥에 깐 다음 화투를 한 번 뒤집고 그림 동물 카드 한번 뒤집어 그 두 카드의 수를 합산해 준비된 숫자 카드에서 찾는 게임.

2) 상보(床褓, 밥상의 음식을 덮는 보자기) 수업

조각된 상보를 칸이 나뉘지 않은 네모로 맞춰 옮겨 큰 네모로 완성하는 작업. 상보는 천의 느낌을 내기 위해 한지로 제작된다. 상보 조각 옮기기가 완성되면 나중에는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조각을 맞추는 바느질 작업 등을 시행.


■ “한 번도 안 오신 분은 있어도, 한 번 오신 분이 안 오시는 경우는 없지요.”

김 강사가 제작한 교재로 복지관 치매 예방 수업을 찾으면 노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나 치매 안 걸렸는데, 왜 이런 수업을 받아야 해?”

하지만 김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면 흥미로운 교재와 게임 방식에 수강생의 얼굴은 금방 화색이 돈다. 그가 교실에 들어가면 ‘강사님 오늘은 뭐 할 거예요?’라는 기대에 찬 질문들이 쏟아진다. 입소문이 퍼져 그녀가 하는 수업은 정원이 초과돼 대기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덧붙였다.

“어르신들도 두뇌 개발, 소근육 활동은 나이 드셔도 꾸준히 하셔야 해요. 머리를 쓰지 않으면 갈수록 몸도 마음도 경직되죠. 저희 노코노리수 수업에 한 번도 안 오시는 어르신은 있어도, 한 번 오신 분이 안 오시는 경우는 없죠. 저희는 봄 아카시아 냄새처럼 반갑게, 수업을 빨갛고, 노랗고 화려한 색깔로 단장해 어르신들께 찾아가 생기를 주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대전시 동구 아름다운 복지관, 유성구 장애인 복지관. 손 소리 청각장애인 시립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 대상자들은 55세에서 80세 이상까지 장애인, 일반인으로다양하다.

김 강사는 현재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다. 노코노리수 수업은 활동 내용상 수업 전후에 수강생, 강사 간 충분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수업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10여 명 내외의 소규모 소통 수업이 가장 이상적인데, 현실적 측면에서는 난관을 만나기도 한다.

김 강사가 노코노리수 수업 유치를 위해 각종 현장을 찾으면, 기관의 관리 담당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전통적인 관리적 측면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싶다며, 대규모 수업을 원하고 20명 이상을 앉혀놓고 수업해 주길 바라고 있다.


■ 수업에서 어른들께 배우는 게 많아… 프로그램 다양화 위해 노력할 것

“ 저는 항상 ‘오늘 이 수업에서는 내가 가장 전문가다.’라는 자신감으로 강단에 섭니다. 예전 학교 방과후강사 시절에는 참여 수업에 들어오신 교장 선생님도 지목해 질문을 던졌죠. 수강생이 강단에 선 강사만 멀뚱히 구경하는 경직된 수업이 아닌, 수강생 모두가 활동하고 참여해 즐거워지는 수업이죠.”

김 강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친구들과 다른, 남다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어 “너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었어?”라는 주위의 감탄을 많이 들을 만큼 남다른 개성이 있었다. 또 특유의 열정과 부지런함도 지녔다.

“하루는 한 어르신이 수업에서, ‘까치는 지은 둥지를 이듬해에는 재사용하지 않는다. 알 낳고 새끼 키우고 한 해 쓰고 나면 이듬해에는 그걸 다시 안 쓰고 새로운 걸 짓지.’라고 말씀 해주셨어요. 저도 완성된 수업 커리큘럼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롭고 유익한 버전으로 새로 짖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어르신들을 만나면 매 순간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어른들을 위한 이벤트도 마련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어린이 주산 대회처럼, 언젠가 노인들을 위한 구 대항 ‘실버주산대회’를 열어 노인들에게 도전하는 재미를 주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반응이 좋았던 수업은 청주에 있는 부모님께 교구를 챙겨가 개별 수업을 해 드린다. 수업을 받은 부모님은 매번 그녀의 노고를 인정해 준다.

“우리도 이렇게 헷갈리는데, 이거 정말 치매 예방되겠다. 너 대단하다, 애썼다. 어떻게 매번 다르게 이런 재밌는 수업자료가 나오니!”


그녀는 비단, 그의 부모님에게뿐 아니라 그녀의 수업을 듣는 모든 어르신에게 정감넘치고 고운 딸로 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남다른 창의성과 재능, 끼를 어른들께 맘껏 펼치고 소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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