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흔(素欣) 이한배의 첫 포토에세이 <이젠 비워내도 괜찮아>를 읽고

민순혜 기자 승인 2022.06.03 16:08 의견 0
소흔(素欣) 이한배

이한배 작가는 어떤 직업을 갖고 종사하는 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 삶의 의미나 즐거움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바쁘게 지내다가도 휴일이 되면 으레 카메라를 둘러메고 동호인들과 사진 촬영을 나갔다. 사진 삼매경에 빠져 매년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사진에 연관된 글을 쓰면 사진의 의미 전달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그를 수필가로 등단하게 했다. 습작하면서 써놓은 수필로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글쓰기라 사진과 수필을 한데 모아 지난 5월 포토에세이 <이젠 비워내도 괜찮아>를 출간했다(2022.5.10.).

이젠 비워내도 괜찮아

이 작가는 30대 후반에 어느 스님한테서 모든 걸 비워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머리에 콕 박혀 화두처럼 늘 뇌리에 떠올랐다. 이제 한참 채워야 할 때라는 생각과 뭘 채웠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비워 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살아가야 할 길이 창창한데 다 비워내면 어떻게 살라는 건가? 긍정보다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그 말은 작가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어느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만유(萬有)를 짜서 정제한 뒤에 오는 공(空)이 참 비움이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걸 채운 뒤에 비움. 그것이 참 비움인 것이다. 봄에 씨를 뿌려 여름내 채우고 가을에 비워내는 가을 들녘처럼 채우고 비우며 돌고 도는 게 인생이란 것이다.


그렇듯 고단함도 오래 삭히면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삭히는 일은 결코 쉽지도 빨리 되지도 않을 것이다. 모난 돌이 뭉우리돌 되듯, 거센 풍파 속에 서로 부닥뜨리고 깨지면서 오랜 고단함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피한다고, 외면한다고, 돌아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절실하게 슬프고, 괴롭고, 힘들고, 아파해야 비로소 삭혀지는 것이다. 또 삭혀진다는 것은 그 고단함이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있는 마음이 돼야 한다. 그런 뒤에 모두 비워내야 비로소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가는 불혹과 지천명을 넘어서니 이젠 저절로 비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노년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보내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글을 쓰는 것은 비워내는 일이었다. 그가 말했다. 불교철학에 관하여 쥐뿔도 모르면서 모르면 용감하다고 열심히 비워내고자 글을 썼다고. 수필을 한 편 써놓고 마음이 흡족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지기도 해서일 것이다. 그렇듯 글쓰기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또한 소흔 이한배 작가는 테스 형의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밖에 아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을 때, 작가 자신을 대변해주는 말로 들렸다고 한다. 무작정 부닥쳐서다. 사진이 그랬고,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영원한 소인(素人=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그것들에 도전함으로써 생기는 행복과 즐거움으로 인해, 나이 듦에 대한 중압감에서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가 있어 좋았다고 한다.

다만 사진을 찍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한계가 올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운전해야 하고, 산에 오르기도 하고, 많이 걸어 다니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이 망가지지 않고 글씨를 쓸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작가는 수필을 쓸 때면 살면서 잊혀진 것을 찾아내는 기쁨이 있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독자와 공감대를 갖게 하는 폭넓은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수필을 읽는 독자들이 “맞아! 그건 그려.” 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작가는 첫 포토에세이 <이젠 비워내도 괜찮아>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내심 독자와 공감대를 갖고 좀 더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덧붙여 책이 나오기까지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송하섭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흔(素欣) 이한배

경기도 여주시 출생
국방과학연구소 28년 정년퇴직(2005.09)
아침의 문학상(2014.12)
한국문학시대 문학상(2021.06)
아침의문학 회원,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원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들 회원
불교공뉴스 사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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