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와인’이고 싶은 김신욱, 정치신인 등록합니다!

순수함과 열정으로 다져진 자본시장 전문가… “바꾸면 좋은 것은 너무 많다”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8.05 14:47 의견 0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김신욱


익숙히 봐온 정치인들의 유창한 그것과는 다른 순수함과 선함

권력을 가져도 이권에 때 묻지 않고, 늘 초심을 지켜 변치 않는 정의로운 정치인을 우리는 열망한다.

대전 동구 중동 출신의 자본시장전문가, 성균관대 김신욱 겸임교수가 올 초 고향인 대전으로 귀향해 지역 정치판에 도전장을 냈다. 심성이 곱고 행동이 아름답다는, 바르고 멋진 남자라고 정평이 나 있는 그다.

김 교수는 현재 대전 동구를 중심으로 대민 경영 컨설팅과 봉사를 실천 중이다. 신선한 정치 신인의 탄생을 기대하며 지난 28일 그의 경영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정의로운 정치인의 싹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의 화법에서는 익숙히 봐온 정치인들의 유창한 그것과는 다른 순수함과 선함이 배여 나왔다. 그가 지역을 바라보는 태도와 진정성에서는 은근한 기대감도 생겨났다.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김신욱


자본시장전문가… 정치초년병 편입, 왜?

그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데, 올 초까지 한국예탁결제원에 근무하며 증권서비스 업무 등을 진행했다. 자본시장전문가로 30여 년 활약했다. 이 기관에서 젊었던 그의 인생 1막의 열정을 불태웠다면, 그는 지금 인생 2막의 터닝포인트에 서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이 맡아오던 국민의힘 대전 동구 조직위원장 공모에 그는 지난 6월 지원하며, 오래전 품어왔던 정치인이 되기 위한 출사표를 내보였다. 현재 이 조직위원장 공모에는 윤창현 의원(현 국민의힘 국회의원(비례))과 한현택 전 동구청장 등이 응모해 정치 신인인 그에게는 녹록지만은 않은 관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보는 2년 뒤 다가올 제22대 총선을 위한 시동인 셈이다. 자본시장전문가로 살다, 불현듯 정치초년병으로 편입돼 쉽지 않은 세계에 뛰어든 그는 어떤 신념과 동기를 지녀서 인지를 물었다.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사회는 바뀌는데 정치와 정치인은 바뀔 줄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정신인 사람은 정치를 안 하는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 이름 가운데 자가 ‘믿을 신(信)’이고 마지막이 ‘해뜰 욱(旭)’자 입니다. 그 이름대로 저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고,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서고 싶고 이 지역의 미래를 맡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는 설파했다.

“저는 자본시장의 빅데이터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지역의 미래 먹거리 산업, 새로운 핀(Fin)테크 사업을 활성화시켜 지속가능한 우리 대전의 일자리 터전을 유치하고 싶습니다.”

봉사회 <사랑의 사다리> 밑반찬 봉사 중 회원들과(오른쪽이 김신우 박사)


지역 현안에 대한 그의 복안은?

그는 35년여 만에 돌아온 고향 대전에 대해서 소회를 밝히며 현안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전 동구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가오동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지역에 유치돼 먹고 살 거리가 많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지역 경제가 침체되고 있습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라며 “대전이 생산도시이기보다는 소비도시에 멈추고 있습니다. 청주시는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입지해 젊은이들이 많이 유입되는 모습을 봅니다. 창원시에는 쿠팡 물류센터가 있어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고향에서 직장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동구의 가양동, 자양동 재개발도 수익성이 나야 하는데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대전 동구 지역의 현안은 소제동, 가양동 재개발 사업입니다. 재개발은 자금조달이 중요하므로 증권사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용 시 저의 자본시장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설계하는 대전시 로드맵을 들어보았다.

▲가양동을 비롯한 인접 성남동·삼성동·소제동·홍도동·대동 등의 효율적인 재건축· 재개발 필요

▲중동 및 인접 정동의 현재 추진 중인 역세권(역전 전통시장 등 포함) 개발과 연계한 디지털 인쇄단지 개발 필요

▲내탑동 등 대청호 주변의 자연자원을 활용한 힐링단지 조성과 식장산 주변의 자연을 활용한 숲세권 조성 및 관광벨트 조성 필요

▲원도심 특성상 어르신이 많은 지역이므로 경로당·복지관 등의 지속적인 지원과 신규 투자 필요

▲부산 이전 공공기관 근무 경험을 활용한 공공기관 유치 및 동구에서의 지속 가능성 연구 필요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수단인 대기업 등 유치 및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T/F 조직 상시 가동 필요

▲일터 내 어린이집·유치원 시설 신설 및 확충으로 워킹맘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필요

▲대전역세권 주변 대동천변과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고 문화 콘텐츠를 갖춘 소제동 카페거리 조성 필요

예탁결재원 재직시 역외(해외) 펀드 소매판매 개발관련 회의 주재 모습


“지난 ‘조국사태’ 때 나라가 쪼개지는 듯하여 가슴 아파, 정치 동기가 생겼다”

정치에 뛰어들게 된 구체적인 사건이 있는지 물었다.

“2년 전 ‘조국사태’ 때는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는 듯하여 가슴 아팠습니다. 여의도 자본시장전문가, 이제 그 분야에서의 제 소임은 마쳤다고 봅니다. 퇴직을 맞으며, 그동안 저와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보다 ‘우리’라는 큰 가치를 위해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세상에는 바꾸면 좋은 게 너무 많은데, 기득권을 가진 쪽에서는 고수해 잘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길에 나서고 싶습니다.”

그는 재작년부터 심중에 품고 있던 정치 진출의 의중을 가족들에게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당황해 쌍수를 들고 말렸고, 하나 있는 대학생 아들에게 말했을 때는 “이제 우리집 망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가 어른들도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장인, 장모가 조금씩 그의 의지를 인정하며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 모범적이고 선한 수재형인 그를 알기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라는 것이 물이 더럽고 험하다. 너처럼 순수하고 바른 사람이 갈 길이 아닌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정치를 혐오하며 말렸다. 회사 동료에게 말했을 때도 대동소이. 두 가지 질문으로 일축했다.

“당신 돈 많으냐?” 아니면 “처가가 부자인가요?”

하지만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바위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지난 4월 모교인 남대전고 2학년 대상 특강 (주제: 증권과 증권시장)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이 의미 있는 삶”

“제 나이가 50대 중반을 훌쩍 넘고 있습니다. 이제 뭔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퇴직 후, 제 삶만 즐기면서도 살 수 있는데, 나의 이익을 쫓으며 생을 마칠 수는 없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항간에서 떠도는 말 중에 정치를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 세 가지란 자금력, 화려한 프로필, 폭넓은 인맥이라고 들었어요. 이 세 가지 조건은 젊은 정치인이 입문하기 힘든 이유가 되기도 하죠. 외람되지만 저는 지금껏 열심히 뛰어왔고 이 조건들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는 직장생활 중에도 주경야독하며 석‧박사 과정을 마친 노력형이었다.

“과거가 미래를 이야기해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과거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미래를 향해 달려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난관도 수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압니다. 하지만 고난은 무수히 받아왔고 잘 극복해 왔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상처받는 일은 쉼 없이 생깁니다. 고난에는 익숙해질 나이가 됐습니다. 이제는 고난도 관조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봉사회 <사랑의 사다리> 회원들과


이제 고향… 지역 현안을 청취하고 지역민과 섞여 감동을 만들다

그는 올 2월 고향 대전으로 돌아와 동구 용운동에 터를 잡았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둘러보고 봉사활동도 하며 다소 떨어져 있던 지역의 친화력을 다지고 있다.

현재 그는 한국예탁결제원 1년 전직(퇴직) 연수 과정 중에 있다. 대전 동구 은어송로에 지역발전을 위한 ‘김신욱 경영연구소’를 올 5월에 열고 지역의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재무 컨설팅, 금융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또, 대전 봉사회 ‘사랑의 사다리 밴드’ 밑반찬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활동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 양파 까기 등 식재료 준비와 조리 보조, 완성된 밑반찬의 포장 작업까지 평일 일정 시간을 이 작업으로 보낸다.

자기개발도 놓지 않아 효과적인 대민 소통과 원활한 전달력을 위해 한 스피치학원에도 등록했다. 일방적인 전달식, 권위적인 소통을 지양하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하며 교감하면서 대화하는 여러 기술을 습득한다. 그는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정치가의 신중하면서 정제된 표현법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언어생활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돌아보며 보완할 수 있는 기회로 임하고 있다.

한남대학교 대학원 제54기 최고경영자과정의 회장에도 추대됐다. 회원 20여 명의 이 기수들은 주로 지역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은 김신욱 회장의 자상하고 성의 있는 리더십에 감동받을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이 과정에서 원거리 답사를 수행했는데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을 내 답사지를 사전에 방문해 동선 등 현장의 제반 여건을 체크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심지어는 회원들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여러 식당들을 일일이 들러 확인하고 식사를 예약했다. 이런 그의 정성으로 답사에 오른 회원들은 그의 세심한 리더십에 감동하여 박수를 보냈다.

또한 현재 그는 대전중부장로교회 교인으로, 독실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노래하며 신앙심을 더욱 다지기 위해 아내와 함께 부부성가대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남대 대학원 제54기 최고경영자과정 회장직 수행
전라도 여수 연수 중 회원들과(앞줄 가운데 하늘색 티셔츠)


자상했던 부모님, 부침을 겪기도 한 유년

그의 아버지는 한때 경찰공무원으로 일해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였는데 늘 나라를 걱정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다. 이를 보고 자란 그도 남다른 애국심이 내재됐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애틋하다. 기독교에 독실하셨는데,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셨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남들을 우선 배려하고 항상 베풀어라.”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 당부는 그의 뼛속까지 남았는지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격의 없이 다정히 대한다. 경영연구소 방문객을 맞으면, 이리저리 사무실을 오가며 사무실을 소개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 전망도 소개하며 살갑게 친해지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대전시 노른자위이던 중동에서 남부럽지 않게 중산층으로 살았던 그인데, 초등 1학년 무렵 집안이 어려움을 만났다.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살고 있던 집까지 비워줘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침에 툭탁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부모님께서 리어카에 집안 가재도구를 싣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흐느끼고 계셨고,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무신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영문도 모르고 짐 실린 리어카에 손을 얹고, 후미진 골목을 터벅터벅 걸어 누추한 집으로 이사 들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집안 형편이 많이 힘들었지만, 부모님은 하나 있는 아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에 실패해 3수를 했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고된 시간이었다. 앞날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배회하고 방황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긍정마인드를 지닌 사람이었다.

“중학교 시절 제법 열심히 공부했고, 전교 1등을 했지요. 이후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자기 긍정의 마인드가 싹텄던 것 같습니다. 제 안에 내재 된 가능성을 믿었고, 희망이라는 단어로 견뎠습니다. 고교시절 이과생이었으나 적성과의 괴리감을 느껴 인문계열로 바꿔 대학 입시에 성공했습니다.”

한남대 대학원 제54기 최고경영자과정 회장직 수행
전라도 여수 연수 중 회원들과


대전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는 대전 중동에서 태어나 가양초등학교, 동중학교(우송중학교), 남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형제는 1남 1녀로 외아들이며 하나뿐인 누님은 오래전 지병으로 작고했다. 상대적으로 형제가 적은 집안이라 형제 많은 집이 부러웠고, 외로움도 또한 많았다고 한다.

그는 중동에 살던 시절 대전천변에서 친구들과 많이도 놀았다. 하루는 고무신을 신고 놀다가 발이 못에 박혀 피가 철철 났다. 친구들이 놀라 집에 알려줬고 어머니 손을 잡고 지금은 없어진 병원 ‘변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던 기억도 소개했다.

최근 그는 대전천변을 지날 때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낀다고 했다. 물가에 노는 아이들이 보이면 그의 어릴 적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며 놀던 아이들 모습을 찍은 사진도 내보였다. 그가 출생했던 중동 집은 상가로 변모했는데 그가 드나들었던 출입문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며 찍은 사진을 소개했다.

1970년대 후반 대전천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국예탁결제원에서 30여 년 일해 온 자본시장전문가

성균관대 회계학과를 졸업 직후, 한국예탁결제원에 입사했다. 복합금융상품 및 정보기획(빅데이터 등) 등의 업무 총괄과 연구‧개발부 등에서 근무했다, 정보기획 팀장으로 업무를 총괄하며 4차 산업혁명의 일환인 빅데이터 업무도 수행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법을 활용하여 특정 알고리즘으로 개발하는 업무는 미래 먹거리를 탐구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전공 외였던 빅데이터 업무를 위해, 제 개인적 노력도 많이 쏟아 부어야 했지요. 하지만 노력의 결과 첨단 IT 업무도 경험해보며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도 대전의 미래산업 디자인에 소중한 자산으로 쓰이리라 믿습니다.”

그는 국가 공공기관인 예탁결제원에서 증권서비스 업무를 지원해, 시장이 원활히 운영되게 돕는다는 보람으로 30여 년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은 미련도 후회도 없고 오로지 최선을 다한 결과물로 자리 잡았다.

그가 30대 후반이던 2005년에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생으로 선발됐다. 덴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MBA)을 공부했다. 이후에도 내일을 준비하며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주경야독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얻을 수 있었다.

평소 취미는 등산. 친구들과 가지산 정상에서


교수로서도 선진적인 강의 방식을 연구한다

그는 2021년도부터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생을 대상으로 재무관리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작년 1학기 때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도 힘들었겠지만 교수들도 온라인강의가 쉽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강의 준비를 하려니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1회 강의 준비를 위해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온라인강의는 사전녹화니까 대면강의보다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오프라인 강의보다 오히려 더 긴장해야 합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2시간 강의를 준비한다며 10분 정도 분량 단위로 강의를 나누어 계속 녹화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후 이를 편집하는데 특정 부분이 잘못된 경우는 이를 다시 녹화하며 심지어 10여 회까지 녹화를 다시 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김신욱


정치인도 국민으로부터 ‘평가’ 가혹히 받아야

그는 미국유학 시절을 떠올렸다. 경영학 석사과정 때 재무관리를 좀 더 실용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대학은 과목을 강의하는데, 책에 있는 내용을 교수가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경험한 미국대학의 교수는 노트북을 가져와 엑셀 등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직접 실습하는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 형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업에서도 선진적인 방식을 도입하고 싶다고 한다. 현장 중심의 좋은 강의를 위해 항상 준비하며 강의력을 개선을 위해 고민한다.

요즘 교수들은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로부터 혹독한 강의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강의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한다. 학생들로부터의 평가에는 주관식으로 적는 소감이 있다. 수강생들마다 강의에서 바라는 점의 편차는 다양하다고 그가 소개했다.

“성균관대에서는 2학기 강의가 8월 말부터 시작되는데,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전녹화 강의(맛보기)를 제작하여 학교 시스템에 탑재합니다.”

그는 요즘 2학기 강의 준비하느라 더 바빠졌다. 강의평가에서 2번 연속 강의 등급이 하위 20% 미만이면 자동 아웃 즉, Two Strike Out 되는 제도를 설명하며 송곳 같은 지적을 내 놓았다.

“사실 정치인들에게도 이런 가혹한 평가가 따라야 하는데요. 정작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장치가 비켜나 있죠.”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김신욱


기업회생경영사(CTP) 과정 등록… 시간을 쪼개 쓰다

주말에는 중소기업 지원의 전문성을 보다 넓게 확보하기 위해 기업회생경영사(CTP) 과정 수업을 듣는다. 바쁜 일정이 줄이어져 그야말로 그의 시간은 ‘분 단위’로 치밀하게 쪼개져 쓰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모교인 남대전고에서 한 교사의 주선으로 후배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증권시장에 관심 있는 고2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했는데, 교재로 준비해 간 증권(용지)에 대해 학생들은 호기심이 컸다.

“증권 투자관련 질문을 쏟아내는 등 고등학생인데도 증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특히, 한 학생이 워렌 버핏의 장기투자 방법이 괜찮은지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미국 부자들은 검소하다. 중고차를 오래도록 타고 다니고, 옷도 검소하게 한번 마련하면 오래 입는 등 돈을 아껴서 주식투자를 한다. 꼭 돈이 많은 사람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돈을 아껴서, 적은 금액으로도 주식투자의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는 그의 조언에 학생들은 열렬한 흥미를 보였다 한다. 모교 후배를 만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눌 수 있어서 그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는 당면한 국민의힘 대전 동구 조직위원장 공모의 추이를 지켜보며 선정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임할 생각이다. 또한 지역민과 동화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어 최근 동구체육회 산하 배드민턴 협회에 가입해 주민들과 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시민기자협회에서는 저널리스트 대학 교수로 임명받아 문필로서도 시민을 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김신욱


훌륭한 와인 같은 정치인… 치밀한 균형감을 가져 오묘한 깊은 맛을 내는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넘쳐나는 에너지가 빛났고, 목표를 향해 앞 만 보고 나아가는 일관성이 보였다. 최근 고향에서 만나는 다양한 지역의 현장, 여러 목소리를 접하며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숙연해진다는 그. 어쩌면 30여 년 일해 온 그 일터보다 고향 사람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몇 개월이 그를 더 크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을까.

대전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뚜렷한 당위성으로 온몸이 똘똘 뭉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직도 대중 앞에 서기는 어색하고 낯가림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 내면에는 ‘예측 불가한 오만가지 색깔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필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훌륭한 와인은 첫입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와인이라 합니다. 여러 맛을 담고 있지만, 그 여러 맛이 치밀하게 균형감을 가져 어느 하나가 돌출 나지 않아 첫입에 아무 맛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도 그런 훌륭한 와인 같은 정치인이 되고 싶은 바람입니다.”

그가 정말 훌륭한 와인 같은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 시민의 목소리를 섭렵하고 잘 수렴해, 공평히 조율할 줄 아는 정치인. 자신이 빛나기보다, 지역사회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도록 분발하는 은근한 맛의 정치인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신욱(1966년생)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1988.3~1992.2 성균관대학교 경상대학 회계학과 졸업

2005.8~2007.5 미국 덴버대학교 대학원 경영학석사(MBA)

2009.3~2011.2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전공: 경영학)

주요 경력

1992.3~2015.2 한국예탁결제원 글로벌 증권·펀드·국내 채권 투자 지원 및 조사연구

2015.3~2020.5 한국예탁결제원 복합금융상품 및 정보기획(빅데이터 등) 팀장

2020.6~ 한국예탁결제원 연구개발부 · 인사부(현재 전직 연수 중으로 2023.3 퇴직 예정)

2021.3~2022.2/2022.8~2023.7 성균관대 경영학과생 대상 강의(재무관리)

2022.5~ 김신욱 경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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