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부터 증손자까지 동문… 강원도 정선군 100살 임계초등학교

‘함께한 100년, 함께할 100년’
특집―개교 100주년을 맞은 청풍 발행인의 모교를 찾다

정여림 기자 승인 2022.09.07 10:07 의견 0
강원도 정선군 100살 임계초등학교

인터뷰:
임계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심응종
임계초등학교 총동창회장 김춘겸
임계초등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김승하
임계초등학교 총동창회 감사 이백규

1922년 일제 강점기에 개교해 올해 2022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강원도 정선군의 임계초등학교.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동문이 되는 유서 깊은 학교다. 동문들은 오는 10월 1~2일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질 계획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임계초등학교 제53회 졸업생이기도 한 본지 정다은 발행인에게도 동문이 연락을 해왔다.

“너는 야, 우리 동문회 자랑이다. 모교 100주년 행사하는데, 와서 인터뷰 한번 해야지 않아?”

정 발행인은 빗길에 대전에서 4시간 반을 달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이 아늑한 고향 모교를 찾았고, 100주년 행사준비에 바쁜 심응종 100주년 추진위원장과 임원진을 인터뷰했다. 또 입학생이 줄어 안타까운 학교의 현안과 지역 사정도 들었다. 덧붙여 초등학교 코흘리개 시절 가난한 추억도 소환해 독자들의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동심을 돌아보고, 향수에 젖을 수 있도록 이 지면을 준비했다.

강원도 정선군 100살 임계초등학교


일제강점기 허름한 판자 교사로 문 열어 한때 금광채굴사업으로 번성했지만 점차 학생 수 줄어…

1922년 7월 15일 일제강점기, 허름한 판자 교사에 입학생을 처음 받아 문을 연 임계공립보통학교. 교사 1명, 소사 1명으로 시작한 이 학교는 100년의 궤적을 지나왔고, 오늘날 임계초등학교로 변모했다.

남한강 최상류 해발 500m 이상 산간고랭지역인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에 위치한 이 학교 부근은 백두대간의 중심축을 이루는 전현적인 농·산촌으로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가거지지(사람이 살 만한 곳)의 으뜸으로 천거된 곳이다. 송계리 근처에는 금광이 있어 채굴사업이 한때 성행했고 일제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광부들과 그 가족들로 지역이 들썩거렸고, 학교에 학생 유입도 넘쳐났다.

한때 전교생이 1000명이 넘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와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현재 교원은 12명, 학생 수는 61명이다. 청정한 마산봉이 에워싸고 있는 이 소담하고 조용한 학교 학생들은 ‘지혜롭게, 정직하게, 튼튼하게’라는 교훈을 갖고 정선군 맑은 자연, 오염되지 않은 광활한 운동장에서 밝게 자라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 100살 임계초등학교


‘함께한 100년, 함께할 100년’ 슬로건으로 오는 10월 1~2일에 걸쳐 이틀간 100주년 기념행사 펼칠 예정

개교 100주년을 맞이해 임계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2019년부터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3월에는 총회도 개최했다. 심응종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사업준비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동문 기금을 조성하기로 하고 2억 원을 목표로 정해 모금 중이다. 현재 300여 명의 동문들이 기금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표액의 근사치에 도달했다.

100주년 추진위원회 임원회의


오는 10월 1~2일을 행사일로 정해, 조성된 동문 기금으로 임계초등학교에 기념 식수 및 표지석 설치와 증정할 기념품도 구상 중이다. 임계초등학교 100년사도 편찬 예정인데, 학교 현황과 교훈, 교표, 교화, 교목, 교가, 학교 연혁, 역대 학교장, 기별 졸업생 명단 등으로 묶어 정리할 예정이다.

또 기념사업회에서는 행사 슬로건을 동문에 공모했는데, 51기 김병윤 동문이 제안한 ‘함께한 100년, 함께할 100년’을 채택했다. 임계초등학교 동문회는 10여 년 전부터 활성화돼, 매 기수 마다 30주년 행사를 개최해 그동안 60주년, 90주년 행사를 갖기도 했다.

임계초등학교 동문회


심 위원장은 “기금을 조성하며 동문들의 모교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한 집안의 5남매가 전원 참여해서 기금을 내주기도 하고,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모교 지원에는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도 봅니다. 고맙다고 인사차 전화를 하면 ‘동문들이 다 잘되기를 빈다, 은사님들이 그립다’는 정감있는 대화로 이어집니다. 특히 70대 이상 원로 선배님들이 솔선수범하시며 분위기를 잡아주시니, 책임자로서 행사준비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짐으로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라고 100주년 사업기금을 모으며 느끼는 소회를 밝혔다.

그 시절 책상 걸상


해마다 입학생 줄어… “10년~20년 후면 정든 모교가 없어지지 않을까 안타깝다”

내년에 임계초등학교의 1학년 입학생은 4명에 그칠 예정이다. 임계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원생이 4명이기 때문에 그 학생들이 입학생이 된다. 여느 대다수 시골 학교가 겪는 일이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재학생 수는 동문으로서 고민이다.

총동문회 이백규 감사는 “이웃에 한 분은 강릉으로 이사가 자신은 아침마다 임계로 출근을 한다. 아이를 촌에서 공부 안 시키려는 이유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강릉으로 이사 간다.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사람들 없으니 자식들 교육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크다. 뉴스에서 보니, 외지 초등학교를 특수학교로 변모시켜 인기를 끈다던데 그런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계면 학부모들은 학생 수가 많은 3~40여 분 거리의 강릉시로 자녀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농촌이 고령화돼 자연히 초등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고, 소규모 학교는 더욱 외면받고 있다. 20여 년 전에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활발했고, 다문화가정도 많이 생겨났는데, 그 들이 낳은 자녀들은 이제는 다 커 지금은 장가갈 나이다.

인터뷰에 모인 좌중은 임계초등학교 존립에 대해 위기감이 커지는데 지역 차원의 논의나 활성화 대책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임계 번영회 차원에서 농촌 청년후계자를 유치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넓은 범위의 교육청, 학교, 정선군 차원에서 학교 살리기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춘겸 임계초등학교 총동창회장


총동문회 김승하 상임부회장은 “최근 임계면의 사과가 인기를 끌어 자녀들을 도시에서 불러들여 귀농케 해 사과 농사를 짓는 모습은 고무적입니다.”라며 이 지역 사정을 이야기했다.

임계면의 특산품은 사과인데, 타지역 사과에 비해 아삭하고 당도가 높다. 이 지역 기온이 사과를 재배하기에는 최적이며, 청정한 자연환경 또한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임계사과는 그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다는 정평이 나 있는 만큼, ‘젊은이들이 사과농사를 짓기 위해 지역에 많이 유입되면 자연히 학생 수도 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크다.

김승하 상임부회장


임계면… 1970년대, 댐 조성 위한 수몰지역으로 지정돼 10여 년 묶여 발전 가로막혔다

60년대생인 김춘겸 동문회장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전교생이 1600여 명 됐다. 한 학년이 5개 반까지였다. 그 당시는 임계면이 부자 동네였다. 그런데 1975년부터 산업단지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댐 건설을 위해 수몰 지역으로 지정됐고, 서서히 쇠퇴해 인구가 빠져나갔다. 지역이 수몰된다니 돼지우리 하나, 창고 하나도 못 짓게 했다. 지금 임계면 인구는 3400여 명. 임계를 떠나 강릉시로 나가 사는 사람들이 68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1984년, 지질학적인 이유 등으로 수몰지역에서 해제됐다”고 말하며 과거를 추억했다.

심응종 임계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추진위원장


과거 정선군 군의원을 역임하기도 한 심응종 10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은 “임계면은 10여 년 수몰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발전이 가로막혔고, 인구 유출의 불이익까지 입어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위한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정선군은 산지가 지역 면적의 80%를 차지하는 농업진흥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상수원 보호법, 백두대간 보호법, 환경보호법 등에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심 위원장은 “정선군은 법적인 규제가 너무 많다. 자연 여건은 좋은데 국가정책 상 규제가 많으니 인구 유입에 장애가 따른다. 집, 공장을 마음대로 못 짓는다. 경관 좋은 하천변에 집을 지으려니 하천 제방선이 인접해 벽에 부딪힌다. 산 좋은 곳에 집을 지으려니 산림법, 산지보호법에 걸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억울하게 수몰 지역에 묶인 임계면이지만 정부차원의 보상은 전무했다며, 늦었지만 현재 임계지역 자생력 확보 차원에서 중앙정부에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한다. 정선군은 2016년, 관련 내용으로 용역을 얻기도 했는데, 군 차원의 일관된 입장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주었다.

임계국민학교 제29회 졸업사진


코흘리개 그때 그 시절… 책보 던져두고 논밭으로 가던 시절

인터뷰를 위해 여러 기수의 동문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100주년 사업 소개 뒤 소소한 초등시절의 회상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학교를 반은 가고 반은 안 가며 그 시절 ‘좀 놀았다’는 어느 동문의 이야기가 서두를 열었다.

“학교 갔다 오면, 책보 던져두고 논밭으로 갔다. ‘콩 주워라’, ‘벼 베러 가자’며 부모는 자녀가 일꾼이 돼주길 바라던 시절이다. 집에 닭을 키워 알을 낳으면 문방구에 가져가서 공책과 바꿨다. 개구리를 잡아서 껍데기 벗겨 팔고, 메기 낚시해서 등굣길에 팔아 용돈 벌었다.”

생생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이어졌다.

임계국민학교 35회 졸업사진


“학교 가는 길, 산에서 다람쥐를 잡아 팔았다. 낚싯대 끝에 홀치기를 붙여, 휘파람을 불고 있으면 다람쥐가 와서는 그 구멍 속에 머리를 넣었다. 뱀도 잡아 팔았는데 당시는 그런 것들을 약재로 쓰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지게 지고 친구들과 나무하러 갔다 자빠지고 굴러, 무릎에 딱지 떨어질 새 없었다. 그때는 공부가 뒷전이었다.”

“양은 도시락 속에다 고추장을 이겨 넣어 밥을 싸갔다. 교실에 나무 난로를 땠는데, 아이들 도시락을 그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돌아가며 도시락 자리를 돌려 바꿨다. 점심때 도시락 뚜껑을 닫고 흔들면 밥이 섞여 비벼졌는데, 그 도시락 맛이 꿀맛이었다. 도시락에 계란후라이 하나라도 들어있는 날이면, ‘왔다’였다. 콩자반, 멸치, 계란후라이 도시락 반찬이 최고였다.”

임계초등학교 35회 졸업생


깡촌 시골 소년이 음악 과목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시골 반천국민학교에서 전학을 왔는데, 음악실기시험을 친다고 했다. 선생님이 풍금을 켜고 그에 맞춰서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한 여학생은 다리에 스냅을 넣으면서 노래를 잘도 하는데, 나는 그 모습이 참으로 낯설었다. 라디오가 있나 TV가 있나… 음악 자체를 몰랐던 나는 당황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도 불러보지도 못한 노래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나는 책을 들고 읽어버렸다. 얘들이 ‘와하’ 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모여앉은 동문들의 눈빛은 어느새 3~40년 전 임계초등학교를 다니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입가에는 아련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동심은 더 풋풋하게 다가오고, 그 시절 그리움도 새록새록 올라온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수련장


기억 속의 선생님들

기억에 남는 훌륭한 선생님을 묻는 질문에 좌중이 모두 한 선생님을 꼽았다. 임계면 출신으로 임계초 교가를 작사하신 손계은 교장 선생님. 지역 출신으로 자상하고 희생적인 스승의 표상이었다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손 교장은 학교뿐만 아니라 임계면 일도 많이 돌보았는데, 온화하고 이웃집 아저씨같이 소탈하게 지역민들과 어울렸다 한다.

부전자전인지 이번 100주년을 맞아 손 교장의 소생인 소자, 세화, 경희, 병연 일동은 큰 금액의 후원금을 동문회에 투척해 다시 한 번 지역 사랑의 모범을 보였다.

가정방문에 대한 기억도 회자됐다. 그 당시는 새 학기가 되거나, 학생이 결석하면 담임 선생님이 집을 찾아가는 ‘가정방문’이 있던 시절이었다. 동문들은 자신들의 집을 방문했던 그 시절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며 먼 길을 물어 물어 찾아왔던 따듯한 그 시절 선생님들을 회상했다.

“옆집 친구의 엄마이자 내 선생님이셨던 분인데, 내가 입학할 때 부모님이 학교에 못 왔어요. 근데 그 선생님이 나를 일일이 돌봐주고 학교생활 내내 챙겨주셨어요. 부모 대신, 엄마 대신 나를 따듯이 돌봐준 그분이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왼쪽부터 김종구 사무국장, 이백규 감사, 김춘겸 임계초등학교 총동창회장, 심응종 임계초등학교 100주년 추진위원장, 김승하 상임부회장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보따리를 푸니 인터뷰 공간이 사랑방인 듯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중요한 성장기 8세부터 시작해 6년의 과정을 보내는 초등학교. 그곳은 평생 한 사람의 인격이 성장하고 감성이 자라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듯하다.

여름 폭우 뒤 선뜻 나선 강원도 행.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원도의 산등성이 울창한 수목은 더욱 기세등등했고, 골짜기로 흐르는 검붉은 흙탕물은 수위가 한껏 높아져 용솟음치며 흐르고 있었다. 다시 네 시간 반을 꼬박 달려 새벽 1시 정 발행인은 대전에 닿았다. 발행인은 장거리 운전으로 몸은 지치지만, 마음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는 모교를 취재하게 되서 마음은 기뻤다고 말했다. 함께 동행해 인터뷰를 해준 기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구미정: 9가지의 미

◎ 구미정: 9가지의 미

1. 어랑: 폭포에서 물고기가 비상할 때 삿갓(통발)을 놓아 잡는 곳
2. 전주: 밭두둑(전원경치)
3. 반서: 정자 앞 물 건너 돌섬
4. 층대: 층층이 된 절벽

5. 석지: 구미정 뒤편 작은 연못
6. 평암: 넓고 큰 바위
7. 징담: 물 맑은 소(연못)의 아름다움

8. 취벽: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
9. 열수: 암벽에 줄지어 있는듯이 뚫려있는 바위구멍

◎ 이종후(동막댁) 가옥

지정번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8호
소유자: 사유(이 위)
소재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216번지
구조형식: 목조와가 ㅁ자형
수량: 목조건축물 3동


약 400년 전에 지은 집이다.
조선 숙종 때의 상신(相臣)인 외재 이단하(1626~1689)의 아들인 이자가 이곳으로 낙향 한 후 지은 집이라 전하며 현 소유주 이위는 그의 9대 후손이 된다.
정확한 건축연대는 기록이 없으며 가옥의 구조는 한쪽이 뜬 ㅁ자형의 겹집으로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채, 사랑채로 구분되며 별당인 수고당이 집 좌측에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놓고 마루 끝에 작은 건넛방을 앉혔으며, 다시 그 앞으로 툇마루를 돌려 대청과 연결했다.
사랑채 역시 낮은 축대 위에 세운 겹집으로 전면 방과 방 사이에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다시 그 앞으로 툇마루를 두어 각 방과 연결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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