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사람에게 / 문정희

박승일 승인 2020.01.08 15:45 의견 0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 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시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아름다우냐  

 

사람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이 끝없는 의문과 질문들에 내몰려 우린 때로 광활한 생의 우주를 방황하기도 하는 것.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시인 또한 사람을 묻곤 하다 그만의 허공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막막한 공간을 떠돌던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묻게 되는 것이니, 문정희의 사람이란 결국 삶을 이르는 것이리라.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든 스스로 희망했든 그리하지 않았든 부대끼는 사람 없는 고립, 그것은 자유라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문정희 1947 전남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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