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튼튼요양병원 & 치매전문 튼튼요양원 백병준 회장

정다은 기자 승인 2020.02.04 13:38 의견 0

| 논산 탑정호 동양최대 길이 600m 출렁다리, 레이크힐 호텔/브런치카페 전층 리모델링
성공신화의 밑거름 ‘운과 신뢰, 도전정신, 베푸는 기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를 생각하게 하는 멋진 이 남자, 튼튼요양병원 백병준 회장은 ‘절망의 날’을 딛고 ‘기쁨의 날’ 성공신화까지, 그 스토리를 들어봤다.

 

Q. 백회장님 어린 시절은?

A. 대전 은행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논산 연무대에서 치과를 운영하며 가족은 남부럽지 않게, 소탈하면서도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지 백일이 지나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는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후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져 초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중학교 입학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취업차 서울로 떠난 외삼촌의 뒷바라지를 위해 외할머니도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습니다.

 

홀로 남겨진 저는 살아야 했기에 일자리를 알아봤고, 가까스로 대전 중동의 한 안경점에서 심부름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일종의 취업이었지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지요. 안경점 주인은 절박하면서도 의지가 강해보인 저에게 일자리뿐 아니라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줬습니다. 일자리와 숙소까지 마련한 저는 주인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당시 안경들이 외국에서 제조된 것이 많고 설명도 영어였던 만큼 조그만 쪽지에 영어 단어를 빽빽이 써서 화장실을 갈 때나 버스를 탈 때, 틈만 나면 닥치는 대로 손에 펼쳐놓고 외웠죠. 우연히 접한 영어책에서 ‘Boys, be ambitious!(젊은이들이여 야망을 품어라)’라는 문구를 본 것을 계기로 배움에 대한 욕망은 커져만 갔습니다.

일찍 사회를 접한 만큼 당시 어른들 말씀대로 ‘졸업장은 있어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슴 한곳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강한 의지는 결국 안경점 점원 생활을 하면서도 주경야독하며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검정고시 합격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하고 안경점을 그만두면서까지 본격적인 학업을 위해 대전상고에 지원했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수업료가 없어 고생하던 차 연락이 두절됐던 어머니와 어렵사리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돼 기뻐한 것도 잠시, 곧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다시 외톨이가 됐습니다. 수업료 내라는 담임선생님의 눈치와 질책에 선생님을 피해 다녔으나, 이를 아시고 계시는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망을 주시어 염원했던 빛나는 대전상고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현재는 故人이 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모가 미혼모여서 양부모에 입양되어 성장했는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와 생활하며 선친의 DNA를 이어준 것은 어머니의 힘이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Q. 전기를 접하게 된 계기는?

A. 의기양양하게 고등학교 졸업장도 손에 쥐었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은행, 제약회사, 무역회사 등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미역국만 먹는 메아리가 들렸습니다.

그럴수록 좌절과 절망을 할 시간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자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며 ‘Boys, be ambitious!’를 리마인드하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을 비롯한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취업할 수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사표를 내야만 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을까 무작정 친구들이 있는 인천으로 떠나 1년 동안 놀았습니다. 마음껏 놀았지만 마음속은 편치 않아 결국 대전으로 다시 내려왔고, 내 인생에 있어 자수성가라는 성공신화를 있게 한 결정적 전환점을 만든 전기공사업체에 입사를 했습니다.

 

전기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난감했습니다. 회계, 장부, 관리 등 닥치는 대로 배우며 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숙련도와 이해도가 빠른 덕에 몇 년 만에 기업의 2인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2인자 자리에 안주할 수 없었습니다. ‘내 사업을 한번 해보겠다’는 꿈이 자신감과 함께 가슴 속에서 점점 커져 창업을 결심, 드디어 1990년 10월 ‘신화전기’를 설립하고, 전기사업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3억 원의 설립자금이 필요했지만 모아둔 돈으론 턱도 없었습니다. 일단 뜻을 세우니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본격적인 ‘전기사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순탄할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제겐 먹구름만이 가득했습니다. 기존 전기회사에 밀려 한국전력공사의 전기공사 수주를 따내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따낸 전기공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공사 중 사고가 발생해 전기 한국통신공사의 케이블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케이블에는 수많은 전화선이 연결돼 있었고, 공사장 주변 주택들의 전화가 불통돼 50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변상해야 했지만 지인들의 도움도 받고, 한국통신과의 협상이 잘 되어 실비 수준으로 변상하는 것으로 실수를 면했습니다. 이 사고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철두철미하게 일을 진행하고, 신뢰를 잃지 말자는 다짐도 했습니다.

이후 전기사업은 승승장구해 조그만 규모의 전기사업도 따내지 못하던 신화전기는 수십억짜리 공사수주를 따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1만 여 개 전기공사업체 가운데 500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전기장이 청년에서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한 중견기업의 CEO가 된 것입니다. 사업성공은 개인 노력도 중요했지만 운도 따라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잃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성공요인인 것 같습니다.

 

 


Q. 서비스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탑정저수지 레이크힐, 제주도 호텔, 대형찜질방)

A. 전기공사로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부턴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비스업에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묘한 도전정신이 생겼습니다.

레스토랑과 숙박시설을 구상하던 중 논산 탑정호 초입에 5층짜리 전망 좋은 레이크힐 호텔을 신축하였고, 이후 제주도 애월읍 해변가에 럭셔리한 호텔을 완공하여 운영을 하면서 서비스업에 대한 경영 노하우를 축척했습니다.

또한, 대전 중구 목동에 5층 규모의 대형 찜질방을 오픈했습니다. 찜질방은 물론 고급 헬스클럽, 실내 골프 연습장 등 건물 전체를 하나의 레저타운으로 만들었죠. 이때 서비스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우송대 관광경영학과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하여 경영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한층 높이고,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되는 체계적인 학문을 실제 경영에 적용시켜 소기의 성과를 나타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찜질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비수기가 너무 길다는 단점 때문에 야심차게 준비하고 시행해오던 대형 찜질방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선친의 DNA를 물려받은 사업가적 근성과 승부사 기질이 있는 저는 함께하는 수많은 임직원,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가롭게 내 자신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자고로 경영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 즉 사회에 환원하며 더불어 함께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터라 청장년들의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것이 곧 애국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故人이 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의 문구가 어렴풋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연설문의 1. 경험(과거-현재-미래에 관하여), 2. 일과 사랑(열정에 관하여), 3. 죽음으로 구성된 내용 중 마지막 부분인 ‘죽음’ 편에서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어차피 주어진 인생 보람 있는 일을 선택해보자는 구상 끝에, 위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제1물결은 키우는 것 growing. 제2물결은 만드는 것 making, 제3의 물결은 서비스 하는 것 servicing, 생각하는 것 thinking, 아는 것 knowing, 경험하는 것 experiencing)을 접하고 나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는 노인복지사업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며 국가가 요구하는 노인복지 정책의 일익을 담당하고 경영활동도 할 수 있는 1석 3조의 사업이라고 생각하여 요양병원과 요양원사업을 해야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갈수록 노인 인구는 많아지고 수명도 길어지는 상황에 주목해 기존의 요양병원들이 노인 요양과 치료라는 본래 목적보다 상업적인 논리에 휘둘리는 세태를 바로잡고 싶어 과감히 찜질방 자리에 요양병원을 개원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한다는 모토 아래 개원한 튼튼요양병원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 첨단시설을 갖춘 것은 물론 전문 의료진까지 갖춰 현재 304병상(증설예정 포함) 규모입니다. 최종 목표는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노인 포털서비스 시설을 갖추어 요양과 진료, 주거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고급 아파트형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입니다.

 

 


Q. 튼튼요양병원 & 치매전문 튼튼요양원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우선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크게 분류하면 요양병원은 의사가 상주해 있는 곳이고, 요양원은 입소자격이 필요하여 등급을 받아야 입소가 가능합니다. 감독기관은 모두 보건복지부이고, 요양원은 노인복지법을 따르고, 요양병원은 의료법을 적용 받습니다.

 

우리 튼튼요양병원은 인공신장실 운영, 야간투석실 운영, 요양·투석 입원실 운영을 합니다.

▲우리병원의 자랑거리중 하나는 인공신장 투석기를 대전 충남대학교병원보다 더 많이 보유하여, 최대 43명이 동시 투석치료가 가능합니다.

투석치료 환자를 위한 인공신장실 치료는 매 회당 4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일주일에 3회씩 지내는 생활공간이나 마찬가지여서 편안하고 안락한 실내인테리어에 신경을 썼고, 투석 시간의 무료함을 없애기 위해 각 침대마다 1대의 LCD모니터를 배치했으며 환자분들을 위해 카페 같은 휴게 공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전도심 중심에 위치해 있어 가족들이 편하게 자주 찾아뵐 수 있어 어른들의 소외감 해소는 물론 가족들의 마음에 부담도 덜어줍니다. ▲전문의료 서비스로 전문의사 및 전문 간호 인력과 함께 안전하고 편안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24시간 보호자 없는 안전한 병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200여 평의 부지에 304병상 규모의 호텔급 병원시설, 옥상의 힐링정원과 건물 내 둘레길(산책코스) 조성, 차량 210대를 동시 주차 가능한 넓은 주차장도 튼튼요양병원의 자랑입니다. ▲의료사회사업으로 미용 봉사, 종교 활동, 각종 놀이치료 등 환우 분들의 신체적, 정서적 기능 향상에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3월 중 오픈 예정인 튼튼요양원은 전국 최고의 시설을 갖춘 치매 전문 요양원입니다.

대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튼튼치매전문요양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최적의 환경 조건을 갖춰놓고 있습니다.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께서는 자신의 방에 있는 것보다 공용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12분씩 한 공간에서 쾌적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넓은 공용거실·휴게실을 마련했고, 1층에 카페, 미용실, 프로그램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Q. 평소 인생철학은?

A. 제 인생철학은 ‘신뢰’입니다. 운과 신뢰로 사업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맞는 운이 따라오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결코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운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노력에 합당한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는 제가 지켜온 신념이자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당장 시간이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해도 돈보다는 약속을 지켰고, 오로지 마음으로 사업을 해왔습니다. 기업은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믿음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요한 약속은 하루에 하나만 잡습니다. 시간이 중복되면 상대방에게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10분 전 약속 장소에 도착해 상대방을 기다리는 것도 몸에 밴 평생 습관입니다.

 

Q. 사회공헌사업은?

A. 저는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에도 상대방에게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베풀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담아 베풀기를 좋아하는 덕분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학재단(대전상고)을 통한 희망 장학금 지급 ▲매년 관내 이웃돕기 성금, 백미 5000kg(목동, 은행선화동, 용두동, 중촌동, 태평1동) 기탁 ▲수시 관내 불우이웃 성금 지급

▲병원 직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스마일 배지를 달게 하고 고객에게 친절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큰 스마일 배지 밑에 달리게 되는 작은 스마일 배지는 가장 친절한 직원들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상으로 작은 스마일배지 숫자가 가장 많은 직원은 연말에 해외여행 상품권을 포상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향후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도 꿈입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한 편의 영화와 같습니다. 이제까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고, 받은 만큼 돌려주며 신뢰를 잃지 않는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해봤어?’ 등의 명언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신 고 정주영회장님을 존경합니다. 또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언을 남기신 재계의 큰 별들은 모두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일자리가 없어 좌절하고 절망하는 젊은이들 모두에게 ‘Boys, be ambitious!(젊은이 들이여 야망을 품어라)’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합니다. 절망할 시간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도전하십시오.

 


프로필

백병준, 1957. 4. 22.

(010-5508-5704)

 

(학력)

1978. 대전상고 졸업

2006. 우송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2015. 서울대보건대학원 수료(보건의료정책최고위과정)

 

(주요경력)

1980.8~1989.12 한흥전기공사

1990.10 (주)신화전기 설립

신주개발, 신주전기, 신영전기 설립

레이크힐, 제주도빌로우비치호텔 설립

 

(포상)

1995.7 한전충남지사장 표창

1997.5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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