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새로운 중년이다, 다시 시작하자

이길우 자유기고가 승인 2020.02.13 15:56 의견 0

“지금부터 지상에서 가장 긴 700m를 경험할 거야.”

친구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겨우 700m가 남았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 오직 바로 앞만 비추는 이마등(헤드랜턴)의 빛에 의지해 발길을 옮긴다. 영하 12℃. 두꺼운 등산복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고어텍스 장갑을 끼었지만 찬바람은 집요하게 살 속으로 파고든다. 멀리 남해의 바다 위에는 만선을 꿈꾸며 그물을 거두는 어선들의 밝은 조명등이 아스라이 줄지어 있다. 목이 자꾸 마른다. 새벽 6시 30분.

천왕봉 정상으로 오르는 이들의 이마등 불빛이 마치 여름날 반딧불이의 유영처럼 반짝거리며 멀리서 손짓한다. 옆을 지나던 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곧 정상입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는 대답한다.

“안양에서 어젯밤에 밤차로 백무동에 도착해 새벽 3시 30분부터 쉬지 않고 올라왔어요.” “힘드시겠네요.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왜 이리 힘든 산행을 하나요?” “그냥 천왕봉에 오르고 싶었어요. 5년 전에 오르고, 벼르고 벼르다 이번에 왔어요. 그런데 일출은 볼 수 있겠죠?” 65세면 손주도 있을 나이다. 혼자 밤새 깜깜한 지리산을 오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울컥, 감정이 벅차오른다. 눈물이 난다. 왜일까? 오늘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28분. 천왕봉 정상이 코앞에 있다. 아직 20분 남았다. 마음이 급해진다. 좋은 일출 사진을 찍으려면 여유 있게 올라 배낭 속 카메라를 꺼내 체크하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도 확보해야 한다. 친구를 재촉한다.

 


해발 1915m. 드디어 휴전선 남쪽 뭍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일출 시각 10분을 남긴 천왕봉 정상. 이미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옷깃을 여민 채 동쪽을 바라보며 해 뜨기를 기다린다. 누구도 떠들지 않는다. 이 순간을 위해 그들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뜨는 해를 보며 무엇을 간구할지 정리하고 있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구름도 없었지만, 수평선 위에는 짙은 구름이 두껍지 않게 깔려 있다.

여명이다. 비록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수평선 너머 숨어 있는 태양의 위력은 지리산의 넓은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수많은 산의 능선이 마치 파도치듯 펼쳐진다. 연푸른 푸른 능선이 환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지리산의 이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실루엣이다. 몽상적이다. 가슴이 뛴다.

 

“우린 47년 전에 만난 중학 동창입니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친구의 짧은 문자메시지에서 시작됐다. “지리산 간다. 같이 가자.” 한겨울에 지리 종주라니. 그것도 2박 3일. 하지만 나도 모르게 답했다. “좋아. 가자.”

그는 정년퇴직을 며칠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30여 년간 국회에서 근무했다. 나도 불과 두 달 전에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정년퇴직이라는 공통분모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게 만들었다. 산행하면서 우리 둘을 보고 누가 물었다. “두 분은 어떤 친구 사이인가요?” 그는 곧바로 답했다. “우린 47년 전인 1972년 3월 2일 중학교 입학하는 날 만난 오랜 친구입니다.”

이번 산행을 앞두고 준비물을 ‘통보’하며 그는 나에게 라면 6개를 준비하라며 ‘두 개씩 다른 종류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같은 맛의 라면을 싸올 것 같아 미리 주의를 준 것이다.

2019년 12월 25일 밤 10시 45분 용산역을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친구는 기차 좌석을 예약하며 자리를 떨어뜨렸다. 산행을 대비해 잠을 자야 하는데 붙어 앉으면 이야기를 해서 잠을 설친다는 이유다. 그는 타자마자 귀마개를 하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는 잠을 청한다. 독한 놈이다.

새벽 3시 10분, 열차는 6분을 연착해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성삼재에 새벽 6시에 도착해 2박 3일의 산행을 시작했다. 스틱을 짚고, 이마등을 켜고, 거의 20kg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편한 사이, 그것이 산 친구의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 둘은 평소에도 주말에 북한산을 주로 올랐다. 그는 한창때 지리산 종주를 10시간 만에 하기도 했다. 놀라운 체력이다. “쉬엄쉬엄 가자고. 이제 서두를 것 없잖아.”

50분 만에 노고단에 도착했다. 지리 종주의 시작이다. 여기부터 천왕봉까지 25.7km. 지리산의 주 능선이다. 능선 번호 01.

 


노고단은 여신을 섬기는 제단이다.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신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흙이 많은 육산이다. 지리산(智異山)을 풀면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는 산이다. 이름도 많다. 신라 때 최치원이 쓴 비문에는 지이산(智異山)으로 표기돼 있고, 백두산맥이 흘러왔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으로도 불린다. 삼신산의 하나라고 방장산(方丈山)으로도 불린다. 196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함양·하동의 3개도 5개시·군에 걸쳐 있다. 광활하다.

노고단 산장(대피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떡국. 사골 국물을 집에서 얼려 왔다. 즉석밥도 넣었다. 추운 날엔 따끈한 국물이 제격이다. 3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행에 나섰다. 흐린 날씨. 조금씩 눈발이 날린다. 친구가 쏘아붙인다. “비 온다고 했는데 배낭 덮개도 준비 안 했어?” 그러고는 자신의 배낭 덮개를 벗겨서 준다. 자신은 비옷을 배낭 위에 덮어쓴다. 고맙다.

 

노고단-임걸령-벽소령 지나니 어둑해진 사위

반야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1시간 30분 만에 임걸령에 도착했다. 옛날에 ‘임걸’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활동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고 사철 내내 풍부한 물을 뿜어낸다고 하는 임걸령 샘물이 있다. 한 모금 마신다. 달다. 날씨가 흐려 반야봉은 가지 않고 통과하기로 했다. 지리산에 가면 늘 반야봉을 올랐다. 해발 1732m의 반야봉은 지리산 한복판에 있는 중심점 같은 봉우리다. 지리산 종주를 처음 했을 때 반야봉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환상이었다. 여름날 수많은 지리 능선은 마치 준마가 평야를 달리며 갈기를 휘날리듯 힘차게 약동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지친다. 배도 고프다. 친구는 별로 지친 모습이 아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다. 짐을 줄인다고 애썼지만, 어깨와 허리에 가해지는 압박이 크다. 오후 2시가 돼서야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맛난 저녁을 위해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산장에는 아침 노고단 산장에서 봤던 산꾼들이 저마다 준비한 식사를 한다. 본격적으로 눈이 내린다. 지리 품에 안겨 함박눈을 맞다니. 벽소령 산방을 향해 출발한 지 10분 만에 앞서가던 친구가 “이런, 젠장”이라며 낭패스러운 말을 한다. 그의 오른쪽 등산화 밑창이 반쯤 떨어져 나간 것이다. 먹이를 앞에 둔 악어처럼 그의 등산화가 입을 한껏 벌리고 있다. 2주일 전 주말 북한산을 오르며 이번 지리산 종주에 대비해 그 등산화를 신고 와서 시험했던 용의주도한 그였다. 주인이 정년퇴직하니 등산화도 지쳤나 보다.

친구는 곧 평정을 되찾더니 눈길덧신(아이젠)을 꺼낸다. 그리고 아이젠을 단단히 조여 밑창을 고정한다. 앞으로 3일간 산행해야 하는데, 그는 포기보다 밑창 떨어진 등산화로 종주를 강행하기로 했다. 걱정은 나머지 왼쪽 등산화도 언제 입을 벌릴지 모른다는 것. 나도 아이젠을 꺼냈다. 이번엔 내가 소리쳤다. “이런 젠장.” 왼쪽 아이젠을 고정하다 뚝 하고 아이젠 줄이 끊어진다. 오래됐기 때문이다. 한쪽만 하고 걷는다. 그래, 이제 몸도 이런 고장 나는 등산화나 아이젠 같을 것이다. 때로는 부러지고, 막히고, 찢어질 것이다. 조심해서 써야 한다. 살살. 마침내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다. 오후 5시인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밤 9시 산장 불이 꺼지고 지리 10경을 읊조린다.

침상을 배정받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한 뒤 취사장으로 갔다. 신나는 저녁이다. 그런데 구내방송이 우울하게 만든다. 술을 먹으면 안 되고,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천장 여러 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다. 친구와 나는 소주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을 속일 수 없다. 준비한 돼지고기두루치기를 소주도 없이 먹어야 하다니. 산장 직원이 오후 9시가 되니 실내 불을 끈다. 자야 한다. 오랜만에 산장에서 맨정신에 자려 하니 잠이 안 온다. 친구도 그리 쉽게 잠을 자지 못한다. 곁에 누워 있던 친구는 지리 10경을 하나하나 읊조린다. 나보고 외우라는 뜻이다. 노고운해, 직전단풍, 반야낙조, 벽소명월, 세석철쭉, 천왕일출, 불일현폭,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 3년 전 칠선계곡을 올랐으니 그래도 친구와 함께 지리 10경은 모두 맛본 셈이다.

 

친구는 이번에는 ‘지리산 시인’으로 유명한 이원규 시인의 시 ‘지리 10경’을 휴대전화에 띄워 보여준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다음 날 눈을 뜨니 이미 친구는 안 보인다.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날씨는 쾌청하다. 멀리 산등성이로 해가 뜬다. 구름 한 점 없다. 능선을 붉게 물들이던 태양은 금방 중천에 자리 잡는다. 오늘 산행의 백미는 상고대다. 비 온 뒤 기온이 내려가고 날씨가 맑아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에 흰옷을 입은 상고대를 감상할 수 있다. 마침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니, 시작되는 산길이 모두 상고대 숲길이다. 만화영화(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설국의 모습이다. 선비샘에 물이 졸졸 흐른다. 슬픈 전설이 있다. 화전민의 자식으로 평생을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았던 노인은 단 한 번이라도 선비 대접을 받고 싶었다. 그는 유언으로 이 샘터 위에 묻어 달라 했고, 이곳을 찾은 이들은 샘에서 물을 받으며 몸을 저절로 숙이게 됐다. 생전에 받고 싶었던 선비 대접을 죽어서나마 이뤘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산장에서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에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넓은 평전이 시원하다. 사방이 상고대이고 눈꽃이다. 아침에 먹다가 남은 찬밥에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오후 4시에 도착한 장터목 산장에서는 멀리 반야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감상해야 한다. 매섭게 추운 날씨지만 산장 한쪽에 등반객들이 추위와 싸우며 서 있다. 역시 풍요로운 저녁노을이다. 화려하면서도 수줍게 산야를 붉게 물들인다. 다들 마치 내일 아침 일출의 예고편을 보듯 감탄을 연발한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천왕봉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일출 사진도 잘 찍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올라온 천왕봉이다. 드디어 해가 뜬다. 일출 예고 시간인 7시 28분에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이내 자태를 드러낸다. 모두 조용하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지리산 최고봉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 아침,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그들은 코끝이 시큰한 감동을 마음에 새기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친구야! 이제 남은 삶, 다들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의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은퇴를 했지만 노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구나. 좀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이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구나. 그래, 새로운 중년이다. 힘차게 시작하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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