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의 단상]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홍경석 편집위원 승인 2020.03.17 15:26 의견 0

세상을 사노라면 여자는 누구라도 한 번은 딸이 되고 아내가 된다. 이어 어머니와 할머니가 되는 운명의 길을 간다. 남자 또한 아들에 이어 남편이 된다. 아울러 아버지를 넘어 할아버지가 된다.

이러한 보통의 인간의 궤적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점철되고 반복된다. 한데 이 ‘희로애락’ 중 희락(喜樂)보다는 단연 로애(怒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음 역시 거개 인생의 현주소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우리네 인생을 일컬어 고해(苦海)라 하신 것이리라. 이러한 까닭에 특히나 우리네 한국인들은 청출어람(靑出於藍) 사관, 즉 부모보다는 자녀가 잘 되는 걸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이유와 목적으로 삼으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 살았던 지난 시절, 너무도 가난했기에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자녀의 교육이라면 뭐든 마다치 않았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정성과 희생이 그 방증이다. 교육만이 가난을 딛고 서는 성공의 사다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에서 언젠가의 그해 가을엔 실로 예기치 않았던 낭보(朗報)가 찾아왔다. 내용인즉 S대학교의 어떤 부서에 딸이 합격했단다. 하여 다음 달부터 정식으로 출근하는 ‘선생님’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뛸 듯이 기뻤다. 잠자리채에 걸려든 잠자리처럼 신산한 일상과 빈곤의 씨줄과 날줄에 걸려들었다. 그래서 얼추 무기력한 처지였던 현실이 일순 타파되면서 대신 단숨에 동동거리는 마음은 비행기처럼 하늘을 붕붕 날았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까지 일거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 내 딸이 드디어 또 해냈구나!’ 딸이 S대학교에 합격하여 상경한 건 지난 2005년이다. 그 후 대학과 동 대학원을 월등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따라서 그 대학에 입학한 지 11년 만에 다시금 딸은 우리 가족에게 ‘청출어람’의 환희와 희열까지를 동시에 안겨준 것이었다. 이는 따지고 보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덕분이었다.

여름이면 한증막과 같았고, 겨울엔 반대로 너무나 추워서 덜덜 떨어야만 했던 다 쓰러져가는 누옥의 셋방에서 살았다. 새벽 2시가 넘도록 면학에 정진하던 아들과 딸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팔불출이라고 흉볼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정말이지 풍랑을 탓하지 않는 어부였다. 아무리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돈이 억수로 많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서울대학교다. 고로 딸의 S대 ‘선생님 부임’은 그 얼마나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더 이상 부언(附言)하지 않아도 될 성 싶다.

이러한 업적과 어떤 쾌거는 그동안 딸이 보여준 ‘형설지공’의 끊임없는 노력 외에도 미래를 간파하는 너른 생각이라는 이중주(二重奏)의 고운 협연(協演) 덕분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환경이나 일의 어려움을 핑계로 자신의 한계를 미리 규정짓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1m까지 자라는 코이 비단잉어를 작은 어항에 가두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생각의 자체를 어항이 아닌 너른 강(江)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강에서 생활하는 코이 비단잉어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딸의 S대 ‘재입성’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아울러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의 또 다른 형설지공으로 매진하길 응원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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