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박승일 승인 2020.05.11 15:15 의견 0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김기택의 시들은 집요하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사물들일수록 물고 늘어지며 끄집어내는 그의 집요함은 끈질기다. 이는 세밀한 관찰력과 더불어 사물이 지닌 성격과 특징을 들여다보기의 자세로 보여주는 것이다.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고 있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이러한 묘사는 김기택의 티끌 하나 놓치지 않는 관찰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무릇 시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김기택의 시처럼 사물의 관찰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한 번도 죽음을 본 일이 없었기에,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죽음은 접시 위에서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격렬하게 꿈지럭거렸다.

흰 접시는 마치 제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라미 안에서 빨판들을 물방울처럼 튀기며 거칠게 파도쳤다. 그러나 죽음이 달아나기엔 접시의 반경이 너무 짧았고 모든 길은 오직 우스꽝스러운 꿈틀거림으로만 열려 있었다. - 산 낙지 먹기 중에서

 

김기택 경기 안양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속의 폭풍, 사무원, 껌, 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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