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마당에 배를 매다 / 장석남

박승일 승인 2020.05.06 15:32 의견 0

마당에
녹음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 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세상에 온 모든 생들
측은히 내려 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속에 쌓고 있는가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갈 날이
곧 오리라

오,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뒷모습들
 

 


눈으로 보고 그 느낌을 보이는 그대로 적는 시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이해가 될 정도로 시와 독자는 더불어 발전했다.

‘마당에 배를 매다’에서 마당은 우리 삶의 현장을 말하고 있다. 뭐 실제 마당에 녹음 가득한 배를 맬 수 있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낙원이 어디 또 있으랴. 그러나 실제로 시인이 배를 댈 수 있는 마당을 원한 것이라면 이 시는 매우 단순하기 그지없는 시가 되고 만다. 즉 마당은 우리 삶의 현장이고 별은 그 마당에서 시난고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연민이며 마지막 연에 강조되고 있는 뒷모습은 영혼 혹은 갈증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 할 수 있겠다.

 

장석남 | 1965년 경기 덕적
시 집 |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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