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절규

민순혜 기자 승인 2020.05.07 15:34 의견 0

지인인 그는 현직 외과 의사로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다.

그는 평상시 바쁘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따로 출사를 나가기보다는 사계절 구분 없이 매일 새벽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서서 일출 등 자연에서 느끼는 미세한 변화를 촬영하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주말이라도 각종 모임이 있는 날 외에야 비로소 대전 부근으로 나갈 수가 있는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나마도 조심한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 그가 보내온 글이 너무나 애절하다.

사실 그와 같은 의료진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편안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더욱더 고마울 뿐이다.

 

그가 보내온 아침 소식지 ; 

꽃샘바람이 세차다.

너울대는 백목련 꽃나무가 그냥

지나가는 범선 같았다.

벚나무들이 줄지어 그냥

길 따라 어디로 가는 줄 알았다.

희붐한 봄볕에 시력이 그냥

흐릿해진 줄 알았다.

꽃잎들이 흙빛으로 후드둑 떨어져 발길에 밟혀서야

그제야 봄이 가는 줄 알았다.

빛이 빛 같지 않고 향이 향 같지 않은, 봄이

물 빠지듯 지나는 중이었다.

 

꿈이듯 창 넘어 풍경 보듯

무성영화 보듯 그냥 4월의 몇 날을 보냈다.

나와 상관없는 꽃과 풀들이 저만치

혼자 피어 있었다.

그냥 모조품같이 빛나는 객관적 상관물들이…

보름달이 코로나 같이 보여도

앵두의 달이 가고

목련의 달이 밝아왔다. _*<可 人>

 

벌써 4월이 지나가고 있다. 마치 음습하고 기나긴 동굴을 통과하듯이 오늘도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득 지난 2018년 6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태국 유소년들이 동굴에 갇혔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당시 암흑의 긴 동굴로 생사를 판가름하기 어려웠지만,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 없이 모두 구조돼서 전 세계를 기쁘게 했던 일이어서다.

이번 <코로나19>도 그들처럼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옛 생활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지인의 소식지를 받고 지금 그에게 그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詩 한편을 보내고 싶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可 人>

옥천중앙의원 송세헌 원장

외과 의사, 시인, 사진작가

시집 『굿모닝 찰리 채플린』

사진 전시회 <대청호의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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