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 ‘폴카닷’ 이은경 대표

정다은 기자 승인 2020.05.07 16:34 의견 0

| 여고시절 붕어빵팔이 소녀, 광고 마케팅의 달인
물방울의 의미가 너무 좋아 물방울의 의미를 가진 ‘폴카닷’으로 창업

 

엄마의 옷가게 앞에서 붕어빵을 팔던 소녀가 광고마케팅의 달인이 되었다.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예쁜 욕심쟁이 ‘폴카닷’ 이은경 대표는 작은 가녀린 체구에도 광고와 공예 유튜브 까지 모두를 섭렵한 달인이 되었다.

 

폴카닷 이은경 대표


◆ 광고일을 하게 된 계기는?

광고일을 시작하게 된 지 18년입니다.

2002년도 대학교 졸업해서 서울 프로덕션에서 3년 동안 일주일에 3, 4일 밤을 샐 만큼 열심히 일을 했어요. 방송국 영상, 관공서 홍보영상, 광고,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하며 기획실장과 조연출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죠. 3년차 되었을 때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되며 프로덕션을 그만두게 되었지요.

첫째 아들을 낳은 지 1년 후 돌잔치에서 돌 스냅촬영을 하고 직접 편집을 했는데, 그 사진들을 엄마들 카페, 블로그에 올려서 친구들과 나누었죠. 그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든 다른 아기엄마들에게서 스냅사진 문의가 많이 들어와 해주다보니 그게 직업이 되어 3년 동안 1800여 명의 아기를 찍어주게 됐어요. 처음에는 토요일 2건, 일요일 2건 정도로 시작을 했는데 그게 나중에는 토요일 13건, 일요일 12건…, 전국에서 예약이 들어올 정도가 되어 그 매출이 월 1000만 원 가까이 되었어요. 사진작가님들을 면접과 포트폴리오로 뽑고 고객 상담과 사진편집, 액자, 앨범 제작, 배송을 직접 하며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어요.

포털 사이트에 ‘대전 돌 스냅’으로 검색하면 제 블로그가 나오도록 홍보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그 사업 매출이 1000만 원 정도가 되니까 더 크게 광고를 하고 싶었어요. 1000만 원이 2000만 원이 되면 좋으니까요. 그래서 광고회사를 찾아갔더니, 오히려 어떻게 혼자서 일을 그렇게 잘 하냐고 감탄을 하시며 사장님이 저에게 광고회사를 광고해주는 일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신에요. 제가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해서, 강의와 컨설팅으로 400만 원~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던 좋은 비즈니스 제안이었습니다.

돌 스냅 사진 업무는 밤새 편집하고, 전화하고, 주말 일정이 10개, 20개가 되어 주말에 쉬지 못 하는 일도 있었고, 1800건 매 주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 사이에 아이는 셋이 되었고 가족들도 힘들어했었고요, 시댁, 친정에서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었던 상활에 아이 셋을 혼자 케어하며 주말에 8명의 사진작가와 20, 30개의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많이 바빴으니까요. 대전의 제일가는 광고기획사를 만들고 싶은데, 함께 일하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광고회사 대표님의 제안에 남편과 상의하고 회사 검증을 거쳐 저도 괜찮게 생각되고 끌렸던 거죠. 그렇게 해서 거기서 7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어요. 컨설팅으로 시작한 광고영업 업무가 2년차, 3년차 되면서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지요. 출퇴근 없는 프리랜서의 자유를 느끼며 일했습니다.

 

◆ 광고일이 매력적인 이유는?

제 사업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매출의 20%를 다 가져가라고 계약을 했어요. 개인적 할 일 다 해도 되니까, 영업사원들 컨설팅, 고객 관리, PT할 때 같이 가주기만 해도 150만 원에 성과급 20%씩 받는 조건으로 7년 일을 했어요. 아들을 셋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계속 했습니다.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우수사례로 강의까지 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영업사원으로 병원에 가서 명함을 나누어드리고, 한참동안 원장님을 기다리다가 만나서 버스 광고, 택시 광고 영업을 했어요. 발로 뛰어서 버스 음성 광고, 택시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 6년 전 폴카닷 창업을 하셨는데요?

다니던 회사가 버스 음성 광고를 독점한 기간이 딱 7년이었어요. 그 계약기간이 지나자 다른 데다 독점권을 빼앗겼어요. 광고 회사가 붕 떠있던 중에, 그 광고를 가져간 회사가 저한테 또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주셨죠. 기존 광고회사 사장님은 7년 사이 돈을 많이 버셔서 더 이상 광고회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고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광고영업으로 만났던 대표님들과 관공서에서 마케팅 강의나 컨설팅을 해달라는 분들이 생겼어요. SNS 마케팅 하는 법, 공무원들이 축제 홍보하는 법, 광고 매체 구성하는 법 등등. 기관들도 홍보 광고를 많이 합니다. 복지관들도 택시, 버스, 지하철에 광고를 붙이고, 노인인력개발원의 경우에도 광고 진행을 는데, 그 담당자분들이 2, 3년에 한 번씩 업무가 계속 바뀝니다. 그럴 때마다 저한테 이전 광고방법이나 견적에 대해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어떻게 광고를 하면 되는지, 지하철에는 몇 개, 버스에는 몇 대 붙여야 되는지. 과거 사례를 가르쳐 드리니, 방문해서 강의를 해 달라, 아니면 코칭을 해 달라 하는 요청이 들어오게 되어 자연스레 일이 많아졌습니다.

 


◆ 모든 일에 적극적이신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활달하셨나요?

어렸을 때, 학교 행사에 무용 하거나, 교장선생님께 꽃 전달하는 일은 많이 했어요. 그런데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거든요. 먼저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는 가만히 있으면 굳이 얘기 안 하는 아이 있잖아요, 그런 성격이었어요. 굳이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제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트레이닝을 한 거죠.

초·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엄마 옷가게 앞에서 붕어빵도 팔았어요. 대학 4년간은 아르바이트를 12가지 넘게 했습니다. 과외, 옷 판매, 전단지, 한의원 약탕기 닦기,학원 수업, 설문조사, 백화점 상품 판매, 삼겹살집 불판 닦기, 커피숍 등등 다양하죠.

고등학교 때는 엄마 도와주려고 붕어빵도 팔고 그랬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잖아요. 처음에는 가만히 서서 붕어빵을 팔았는데, 여학생이 붕어빵을 팔고 있으니까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엄마 옷가게가 충남기계공고 앞이었는데, 여학생이 붕어빵을 굽는다는 소문이 나니까 너무 잘 됐어요. 저는 엄마 도우려고 별 생각 없이 한 건데, 주변에서 볼 때는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보였던 거예요. 외삼촌이 하는 얘기가, 멀리서 제가 붕어빵을 파는 걸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 고생을 모르고 자라신 것처럼 보여요.

부모님 사업 실패로 가계가 힘들어져 어려서 아빠와 헤어져서 살았어요.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엄마는 간병 일을 하시며 저희 3남매를 가르치셨어요. 저희 엄마에게 꼬옥 배워야할 점이 있습니다. 특히 감사했던 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저희 앞에서는 절대 미워하지 않으셨어요. 저도 신랑이랑 싸워도 애들한테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거든요. 그게 많이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선 아빠가 다 나쁘다고 할 것 아닙니까? 처자식 고생시킨다고…. 그런데 엄마는 내색도 않으시고 항상 웃으셨어요.

나중에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 형제들은 엄마 고생한 걸 다 봤으니까 받아주고 싶지 않았고, 또 나 같으면 안 받아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고, 아빠도 가족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도 자존심에 못 돌와왔었다는 걸 제가 알아요. 아쉬운 소리 하기 싫고, 자기가 준비될 때까지는 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오셔서 신혼처럼 두 분이 알콩달콩, 여행도 다니시고 부채춤 배우러도 다니시고 재미있게 사셨습니다. 저희를 긍정적으로 키워주신 엄마 덕분에 고생 안 한 얼굴로 보이는 겁니다. 고민은 툴툴 털어내고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최우선이지요.

 

◆ 폴카닷의 뜻과 의미는?

폴카닷은 물방울무늬라는 뜻입니다. 2014년에 오픈해 6년째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했던 동아리 이름도 그랬고, 물방울이라는 의미를 좋아해요.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바위를 뚫기도 하고, 멀리 가서 바다를 이루기도 하고. 한 방울이 향수도 될 수 있고 독약도 될 수 있다는 그 물방울의 의미가 너무 좋아서 물방울의 의미를 가진 ‘폴카닷(Polka dot)’이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했습니다.

전 온 몸으로 부딪히며 마케팅을 배웠습니다. 빌딩을 타고 명함을 나누고 행사, 축제를 다니며 현장을 보고 체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 재능은 엄마한테서 받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조용하게 있던 건 아빠 성격에서 받은 유전자인 듯하고요. 어려울 때 나오는 에너지는 엄마한테서 온 것 같아요. 아이 셋을 엄마가 혼자서 키우면서 옷도 팔고, 간병인도 하시면서 얼마나 힘이 드셨겠어요. 하지만 언제나 웃으며 가족을 지지하며 응원하며 긍정적으로 키워주신 엄마께 많이 감사드립니다.

 


처음 폴카닷을 오픈하고 L안과병원과 D한방병원 광고, 공무원교육, 창업교육 등으로 첫 달 매출이 300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영업에 있어서 사전조사와 광고기획 제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보통 영업사원들이 병원들을 많이 가요. 제안서 들고 가고, 놓고 가고 이렇게만 하는데, 저는 미리 준비한 제안서가 다른 영업사원 분들과 달랐습니다. 보통 4, 5장짜리 기본 제안서가 있어요. 다른 영업사원들은 다 그런 걸 놓고 오시지요. 저는 광고 대상인 L안과병원이나 D한방병원을 연구해서, 버스 음성광고 멘트를 A, B, C 세 종류를 써 가지고 갔어요. 그 셋 중에서 어떤 걸로 광고를 하고 싶으세요? 하고 여쭤보는 거죠. ‘설득의 달인’같은 책을 많이 읽고 도움을 받았죠.

다른 영업사원 분들은 ‘택시광고 얼마입니다.’하고 얇은 제안서를 놓고 가면 광고주는 ‘알았어.’하는 거예요. 그렇게 광고 견적만 놓고 오는 것이 아니라 저는 A안, B안, C안 세 가지가 있는데 뭐가 괜찮은지 묻는 제안서를 2, 30장 만들어서 들고 갔습니다. 광고매체를 진행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시안 세 가지를 만들어서 가져가면 어떤 시안이 더 괜찮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광고기획이 바로 시작되는 거죠. L안과병원과 D한방병원 광고를, 다른 영업사원들이 4회, 5회 제안했어도 계약이 안 된 광고 건을 저의 제안서로 통과가 되어 지금까지 5년 넘게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걸 보고 다른 영업사원 분들의 질투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강의, 컨설팅 또 공방 사업도 많이 하시던데요?

한동안 광고업을 하다가 강의나 컨설팅, 멘토링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이 되었어요. 강의를 시작하고, 사무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공예를 배우고, 광고 계약의 수익금 중 일부를 직원 분들한테 돌려드렸어요. 수익의 2~30%는 직원 수만큼 떡도 해 가고, 캔들도 만들어 가고요. 구매해서 드리는 선물보다 직접 만들어서 선물 했을 때 저도 더 뿌듯하더라고요. 석고 방향제에도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어서 만들어 드리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광고주 분은 제가 광고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아는데, 그 곳의 직원들과 동료들은 제가 공방 하는 사람인 줄 아시더라고요. 어느새 저에게 천연염색 스카프를 주문하시고, 비누꽃, 캔들 등을 대량으로 맡기거나 수업 문의까지 하시게 되었지요.


강의를 할 때 노인복지면 노인복지, 자활기업 센터 직원이면 그 목적에 맞추어 각각 다른 내용을 준비합니다.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이에요. 업무활성화나 동기부여, 홍보컨설팅 등 직원 능률이 떨어져서 매출이 덜 나오는 상황을 개선하는 교육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저한테 200만 원짜리 광고를 하고 싶다고 제안이 와요. 방문해서 상담, 현장상황 체크, 매출 진단을 해보아서 광고매체를 활용한 광고보다 직원 4명한테 50만 원씩 나눠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이 되면 그렇게 제안을 드립니다. 직원들과 마케팅 회의를 하고 2~30일 테스트를 하면 정말 성과가 나옵니다. 물론 상권과 계절, 고객관리 등 다른 부분도 체크를 해봐야겠지만요.

대표와 직원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매출 성과가 나지 않은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광고 매체 기획도 해드리지만 매출의 구조, 업무협약, 언론보도자료 등 배포 등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방법들도 전해드리고 SNS 마케팅 교육 등과 지속적인 멘토링으로 함께 성장하는 광고주분들과의 소통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은경 대표의 마케팅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광고에 목마른 이들의 목을 촉촉이 적셔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광고, 프로덕션, 사진편집, 마케팅 강의, 천연염색, 각종공예, 유튜브 방송까지 이 대표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감각, 노력은 어디까지일지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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