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 & 엄마, 잠깐만!

이해완 시인 승인 2020.05.11 15:02 의견 0

이번에 소개할 그림책은 토니 로스의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과 앙드와네트 포티스의 『엄마, 잠깐만!』입니다.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과 『엄마, 잠깐만!』을 통해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

글, 그림 : 토니 로스
옮김 : 민유리
출판사 : 키위북스

‘그림책놀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계룡시 ‘그림책으로 여는 행복세상’ 모임에서 문자가 왔다. 이 단체는 지난해 책놀이 활동을 모아 책자로 펴낸 바 있어서 무척 반가웠는데, 고문 자리를 맡아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의 말과 함께 그림책에 대한 강의도 해주면 좋겠다는 거였다.

회원들이 저학년 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까 생각해볼 만한 그림책을 뽑아 들었다. 그 책이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이다.

주인공 제제벨은 완벽한 아이다. 어른들이 좋아할 그런 아이 말이다. 공부도 잘하고, 언제나 깔끔하고, 자기 방도 말끔하게 정리하고, 고양이 똥을 치우는 것도 언제나 제제벨이고, 쓰고 난 물건은 늘 제자리에 두고, 옷을 더럽히는 법도 없다. 이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통령은 ‘착한 어린이 상’을 줄 뿐 아니라 공원에는 제제벨의 동상까지 세워 모든 아이들이 본받게 한다.

이쯤에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 김상중 씨의 목소리를 빌려야겠다. 사건의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그 특유의 중저음의 톤으로 시청자의 귀를 끌어당기는 “그런데 말입니다.” 하는 말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시청자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알지 못한 내막이 펼쳐지리라는 생각에 귀를 바짝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이 그림책에서는 어떤 반전이 숨어있는 걸까? 복도에서 아이들이 허둥지둥 뛰어가면서 “제제벨 도망쳐!”하고 외치는데도 “복도에서 뛰면 안 돼! 규칙에 어긋나는 짓이야!”, “난 언제나 얌전히 걷는다구!” 하고 말한다.

이렇게 모범적인 제제벨은 예의바른 어린이 상, 뾰루지 없는 어린이 상, 수학을 잘하는 상, 책 잘 읽는 어린이 상... 상이란 상은 다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 규칙을 지키다가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악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뒤늦게 경비 아저씨가 악어를 붙잡아 “이런 못된 녀석!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이를 잡아먹다니!” 하고 호통을 치지만, 악어는 “냠냠 맛있다!” 입맛을 다실뿐이다. 마지막 장면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보고 많은 독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완벽한 아이를 본받게 하지는 못할망정 악어 밥을 만들다니!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런 끔찍한 결말을 보여주었을까? 평범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님, 완벽한 아이도 이런 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무래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부모나 선생님의 말만 잘 듣는 수동적인 아이보다는 능동적인 아이로 커가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사실 제제벨이 ‘나무랄 데 없는 아이’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까지는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싫은 것도 싫다고 내색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텔레비전에까지 나오게 되었음에도 눈에는 핏발이 서고, 눈꼬리는 치켜 올라가고, 눈 밑에는 시커먼 그늘이 드리우고, 송곳니까지 자라나는 괴물로 변해 간다. 이는 제제벨이 심적으로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 잠깐만!』

글ᆞ그림 : 앙드와네트 포티스
옮긴이 : 노경실
출판사 : 한솔수북

지금은 작고하신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의 수필 ‘별명을 찾아서’에는 어린 시절 갖게 된 별명에 대한 이야기가 씌어있다.

초등학교 시절 심한 개구쟁이였던 작가는 별명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지각대장’이었다고 한다. 이 별명이 붙은 이유는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지각을 자주 해서인데, 그 사유가 흥미롭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할아버지께 혹시 집에서 밥을 늦게 먹여 보내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손주 학교 보내느라고 오히려 아침 일찍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늘상 지각만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이유가 궁금해진 할아버지는 몰래 사촌을 시켜 뒤를 밟게 한다.

아이는 집을 나가서 곧장 학교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장다리꽃이 핀 남의 텃밭에서 쫑알거리고, 대밭에 가서 쫑알거리고, 심지어는 게 구멍 앞에서 민들레를 들고 한나절을 있더라는 거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신비롭고 재미났을 터이다.

개미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빵조각 하나를 시커멓게 줄을 서서 떠메고 가는 모습은 얼마나 장관인가. 사마귀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기는커녕 앞발을 세워 위협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가관인가. 아카시아 향기를 헤치고 귓가에 닿는 검은등뻐꾸기의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고 울어대는 울음소리는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정채봉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또 다른 별명은 ‘꿈쟁이’라고 하는데,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이미 밝힌 행동들이 쌓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왜, 게 구멍 앞에서 꽃을 들고 흔들어대고 있었냐고 물으니까, 그렇게 하면 게가 꽃을 쫓아 달려 나올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이 말에는 훗날 동화 작가의 길을 걷게 될 조짐이 내재 되어 있다.

『엄마, 잠깐만!』에서는 한 아이와 엄마가 거리를 걷고 있다. 엄마는 바쁜 듯 시계를 들여다보며, “빨리.”, “서둘러.”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꾸 뒤를 보며 “잠깐만!”이라고 외친다.

엄마의 눈에는 이미 무심한 것이 되어버린 강아지, 도로 공사하는 아저씨, 오리, 아이스크림, 나비 등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새롭고 신기하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자 엄마는 더욱 애가 타는데, 아이는 혀를 쏙 내밀고 빗방울을 받아먹는다.

지하철을 막 타려고 할 때,

“엄마, 진짜 진짜로 잠깐만요.” 하고 아이가 간절하게 말한다. 엄마는 그제서야 무슨 일일까 뒤돌아 바라본다. 바로 앞에 쌍무지개가 떠있다. 엄마는 아기를 가슴에 안고 황홀하게 바라본다. 아기가 엄마의 잠자던 감성을 깨운 것이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봉산촌에서 잠을 자고 강화로 출발하여 문수산성 부근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탄 말 머리에서 무지개가 펼쳐진 장면을 목격하였다. 선생이 본 무지개는 말 머리에서 시작되어 강화해협까지 펼쳐져 있었다. 얼마나 황홀했겠는가.

이런 장면을 보았을 때 잊지 않으려고 붓을 든 사람은 시인과 같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그럼 붓을 들지 않고 그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은 어떤가. 그는 최소한 문학 작품을 잘 소화해 낼 고급 독자가 되는 것이다. 출세하겠다고 책만 붙들고 있는 경험치가 낮은 사람은 어떤가. 그는 성공을 해도 남의 밑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제 이익만 챙기는 소인배가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전철 시간 때문이 아니라도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려 제때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열심히 문제지를 풀어 백 점 맞은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내 눈에는 다 헛똑똑이로 보인다.

시험 문제로는 답을 맞히는데, 실제 눈앞에 피어있는 진달래도 목련도 지금 한창 주렁주렁 하얀 밥풀때기를 매달고 있는 이팝나무도 모르는 아이들이 장차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들 뒤에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며 바쁘게 학원으로 몰아대는 부모들이 있다.

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뭣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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