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의 단상] 열정은 태풍도 막을 수 없다

홍경석 편집위원 승인 2020.05.11 15:05 의견 0

이완용(李完用)은 한말(韓末) ‘을사5적신’의 한 사람이다.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들을 일컫는데 ‘을사오적’으로도 거론된다.

이들은 학부대신 이완용을 필두로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이중 이완용은 일본에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이완용은 조선만 배반했을 뿐 아니라 고종까지 배신한 희대의 간신이었다. 이완용이 당시 고종의 총애까지 받아가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저변엔 신교육을 받고 영어를 잘 한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주미공사를 역임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한민국 사람은 통상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이렇게 10년 이상 영어를 배운다. 그럼에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영어시장은 여전히 순풍만범(順風滿帆)으로 쾌항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얼추 40년이 다 되는 지난 1980년대 초반에 [정철카세트 25주 프로그램]이라는 영어회화 교재와 테이프가 있었다.

엄선한 3편의 영화를 해설하면서 그에 따른 비슷한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내용이었다. 그 즈음,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나에게 취업은 하루가 급한 몸부림이었다.

입대 전처럼 노동만 했다간 장가도 못 하고 ‘몽달귀신’으로 죽을 게 뻔했다. 하루 날을 잡아 구인광고가 붙은 전봇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마침맞게 [정철카세트 25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주)문화어연 출장소에서 신입사원 모집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세 고민이 숲을 이뤘다. 그도 그럴 것이 응모 자격은 학력이 고졸 이상은 되는 자라야만 가능한 때문이었다. 하기야 다른 아이템도 아니고 명색이 영어이거늘 그 정도 학력은 돼야 맞는 것이긴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서류접수부터 하자고 그 사무실을 찾아갔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장은 입사를 적극 권장했다. 건네주는 이력서에 허위로 ‘고졸’이라고 써냈다. 중학교라곤 문턱도 넘지 못한 무지렁이의 필사적 거짓이었다.

며칠 뒤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며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갈이 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거 참 큰일 났네!’ 불행하게(?) 최종합격까지 된다면 영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 때문이었다. 어쨌든 또 면접을 치렀고 거기서도 합격했다.

소장은 견본용 교재와 테이프를 주면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라는 숙제를 주었다. 그걸 가지고 집에 왔으나 영어라곤 알파벳조차 배우질 않았으니 뭐가 뭔지 당최 알 도리가 없었다. 좌고우면 끝에 고졸의 동창생을 찾아갔다.

“너, 오늘밤부터 나한테 영어 좀 가르쳐주라!” 그와 병행하여 [정철카세트 25주 프로그램]의 교재와 테이프 모두를 미친 듯 암기하기 시작했다. 한 달 이상 습관을 들이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완벽하게 그 내용을 술술 풀어낼 수 있었다.

그에 기반한 왕성한 영업활동까지 가세하자 드디어 전국 판매왕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다. 이어 최연소 영업소장 자리까지 꿰찼다. [정철카세트 25주 프로그램]에 녹아있는 영화 중 하나가 《깊은 밤 깊은 곳에》(The Other Side of Midnight)이다.

시드니 셀던의 소설이 모티브라고 한다. 어제 유튜브를 보던 중 이 영화가 나오기에 지난 그 시절이 덤으로 떠올랐다. 뭐든지 미쳐야 승리한다. 간절하면 보인다. 영어도 이런 간절함으로 배우면 못할 게 없다.

열정은 태풍도 막을 수 없다. 다만 잘 배운 영어든 또 다른 지식이든 이완용처럼 매국과 이를 매개로 한 치부(致富)는 정말로 부끄러운 역사적 수치(羞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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