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무의 쌈지경영] 남선공원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조병무 편집위원 승인 2020.07.08 16:16 의견 0

대전시 서구에는 남선공원이 있습니다.

원래는 야트막한 산이었는데, 도시가 개발되고부터 체육관이 들어서고 일부는 산으로 남겨놓아 산책으로는 안성맞춤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담뿍 받는 곳이지요.

이곳에 매일 손 붙잡고 산책하던 80세가량의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치매로 할아버지한테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하며 사탕 달라고 강짜를 부리곤 했지요.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시비를 거는 등 할아버지를 민망하게 만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할머니에게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인사를 하며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곤 했지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아 궁금했는데, 알아보니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할머니를 잃어버린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잘못해서 할머니가 죽었다”고 울먹이시며 쓸쓸히 혼자 산길을 걸어 올라가십니다. 왜 그런지 그땐 그렇게 힘들게 보이던 두 분의 모습이 지금 할아버지 혼자의 모습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미장원에 데리고 가서 머리를 깎아주고 돈을 계산하는 사이 밖으로 뛰어나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내가 조금만 더 챙겼으면 괜찮았을 텐데….” 하시며 모두가 내 잘못이라며 계속 할머니의 흔적을 찾으시는 할아버지의 꾸밈없는 사랑이 정말 훌륭하지 않나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저런 할머니는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조금만 귀찮아도 나 몰라라 하는 세상에 할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늙으면 보자’고 서로 벼르고 사는 부부가 있다면 잠시 쉬며 생각해 보세요. 조금만 마음을 넓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면, 지금은 아무리 꼴 보기 싫은 내 남편, 마누라지만 막상 떠나고 나면 그게 아니라는 이치를 알게 되지요.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고 말하지요. 벌써 세월이 10년을 지났는데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월이 사람을 가르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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