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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ZOOM in 국립대전현충원 양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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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ZOOM in 국립대전현충원 양재호
  • 시사저널 청풍
  • 승인 2019.07.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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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버려진 양심을 수거합니다”

사람人 ZOOM in 국립대전현충원 양재호

“저는 오늘도 버려진 양심을 수거합니다”

대전 현충원 200톤, 생활 쓰레기부터 음식물 쓰레기까지

 

 

마스크는 항상 두 겹씩 쓴다. 면장갑 위로 질기고 오래간다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다. 반소매를 입었지만 토시 덕분에 드러난 살은 없다. 장화와 챙 넓은 모자, 버프로 얼굴 전체를 가린 덕분에 노출 부위는 두 눈뿐이다. 눈빛이 형형했던 양재호씨를 만난 것은 이른 더위로 내륙 지역 폭염이 출몰했던 6월 초였다.

 

유모차, 폐타이어, 소형 냉장고, 페인트 통, 사무용 회전의자, 낚싯대와 골프채. 만물상 목록이 아니다. 누군가 국립대전현충원에 놓고 간 쓰레기 중 일부 목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생활 쓰레기가 국립대전현충원 묘역 쓰레기통에 모인다. 참배객이 전국에서 오다 보니 쓰레기도 전국구다. 옮기기도 힘든 쓰레기를 보훈의 성지인 이곳까지 가져와 버린 그들. 쓰레기통 앞에 붙은 ‘개인 생활 쓰레기는 되가져가 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부질없어 보인다. 백만 평이 넘는 국립대전현충원을 돌며 그들이 버리고 간 양심을 수거하는 이들의 현장, 양재호 직원의 하루를 통해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현충원은 대한민국 국민은 다 들어오는 곳이죠. 지역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찾아옵니다.

참배객이 아니더라도 둘레 길을 걷다 들어도 오고. 방문객이 많은 건 환영할 일이지만, 매년 늘어가는 쓰레기를 볼 때면 방문객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단 생각이 듭니다.”

 

2년 차인 양재호 씨는 처음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에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다 분리배출은 고사하고 음식물과 섞어 쓰레기통에 투척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묘역에서 팔도 음식 박람회 같은 상을 차려 먹고 마시는 참배객 앞에 어이가 없기도 하다. 둘레길을 걷다 온 지역민과 주말이면 몰려오는 관광객도 색다르고 창의적인 음식물 쓰레기를 투척하고 간다. 싸 오는 음식도 다양해 전국 맛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진풍경과 심지어 고기를 신나게 구워 소주까지 곁들이는 참배객은 또 어땠는지. 신고가 들어와 직원들이 계도를 나가면 오히려 구성진 욕설과 고성으로 반문한다. ‘너희가 누구 때문에 먹고 사냐?’라며 고기 굽던 집게로 삿대질을 한다고. 기껏 다른 이들이 분리해 놓은 재활용 쓰레기통에 음식물을 투척하거나 식수대 하수구 통에 음식물을 들이 붓고 가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도 목격했다. 듣다 보면 제3자도 화가 나는 상황이 줄을 이었지만 정작 양재호 직원은 침착하게 말한다.

 

“고기는 구워 먹으면 안 됩니다. 조리된 음식이야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모인 자리일 수 있으니 식사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다 좋으니 남은 음식을 수거만 해 가셨으면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현충원에서 수거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매립밖에 길이 없어요. 심각한 문제죠.”

 

음식물과 쓰레기, 이 기막힌 콜라보레이션(?)은 수거도 몇 곱절 방해하는 요인이지만 2차 피해도 야기한다. 음식 냄새에 동한 산짐승은 묘역을 식당처럼 드나들고, 내려온 김에 묘역 여기저기 헤집어 놓는 이벤트를 선사하고 사라진다. 조상님이 편히 잠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참배하곤 빅 엿을 투척하고 간 셈이다.

 

 

묻고 태우고, 자연과 조화(調和)롭지 않은 조화(造花)

 

주말이나 명절, 현충일이나 한식 등 참배객이 많은 날이나 조금 덜 한 날도 쓰레기는 줄지 않는다. 해마다 지난해 기록을 경신하던 쓰레기가 올해는 200t을 넘을 것으로 현충원 측은 예상했다. 어떻게 운반했을지 감탄스럽기까지 한 생활 쓰레기도 문제지만 도를 넘은 헌화용 조화 또한 골칫거리다. 묻어도 썩지 않는 철사와 소각하면 미세먼지 날리는 화학 염료로 무장한 중국산 조화는 1년 내내 묘역 전체에서 무섭도록 반짝거린다. 참배객은 누가누가 가장 크고 화려한 조화를 헌화하고 가는가를 겨루는 경연대회 참가자인 양 총천연색 조화를 놓고 간다. 몸을 뉜 건 땅 한 평인데, 조화는 양쪽으로 두 세평을 차지하는 묘역도 있다. 조화를 봉분마냥 쌓은 곳도 있다. 이 찬란한 쓰레기는 쉽게 소각도 매립도 할 수 없다.

 

“철사로 뼈대를 만든 줄기 부분과 플라스틱·비닐로 만든 꽃봉오리 부분을 분리해 해야 합니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조화를 분리하는 작업은 정말 고됩니다. 12만 9,000여 위가 잠든 곳인데 그 양은 또 어떻겠습니까? 집하장에 산처럼 쌓인 조화를 보면 정말 말도 안 나옵니다.”

 

한때 현충원에서 수거하는 쓰레기의 90%에 육박했던 조화는 지역을 넘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참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헌화는 국화 한 송이로 바꾸자는 목소리는 꾸준히 재기됐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헌화 문화 때문에 개선의 목소리는 매번 난관에 봉착했다. 미세먼지와 토양 오염을 야기하는 조화 문화, 언제까지 국민 인식의 전환에만 기대야 하는 걸까?

 

주말도 명절에도 쉴 수 없지만, ‘고맙다’는 격려 한 마디에 오늘도

 

오전과 오후, 2.5t 트럭을 몰고 경내를 돈다. 50여개 쓰레기통을 돌면서 7차례 트럭을 비워야 했던 날도 있었다. 12명의 환경 요원과 힘을 합쳐 330만㎡ 부지를 부지런히 쓸고 치운다. 폭염에도 완전 무장을 해제할 수 없다. 주말도 없고 명절엔 더 바빠 가족과 차례도 지낼 수 없다. 음식물과 쓰레기,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생활 쓰레기가 발견될 때면 실없이 웃음도 터진다. 휴양림으로 착각하는지 텐트까지 치고 노는 방문객 때문에 식겁하는 날도 있다. 쓰레기통 밖으로 넘쳐나도 재활용이 가능한 소주병 더미가 한 다발 조화보다 차라리 반갑다. 유품을 놓고 갔다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라도 찾아달라는 황당하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힘든 만큼 보람도 많은 직업입니다. 도저히 없어질 것 같지 않던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참배객이나 방문객들이 ‘덕분에 깨끗해 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곤 합니다. 쓰레기가 아닌 누군가의 양심을 수거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일터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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