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0 14:54 (목)
이해완 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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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완 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 이해완 시인
  • 승인 2019.09.05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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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어떤 계기로 운명이 바뀔 뻔한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돼지 공주』는 성벽에서 떨어진 공주와 수레에 실린 돼지가 서로 신분이 뒤바뀐 이야기이고, 『소시지 소시지』는 요정을 구해주고 세 가지 소원을 빌 기회를 얻게 된 가난한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돼지 공주

글 : 조너선 에메트

그림 : 폴리 베르나테네

옮김 : 박창원

출판사 : 킨더랜드

돼지 공주는 공주와 돼지가 서로 운명이 바뀐 그림책입니다. 그야말로 공주에게는 재앙이, 돼지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마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공주는 공주의 자리로, 돼지는 돼지의 자리로 되돌아가리라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빗나간 겁니다. 작가는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요? 먼저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농부가 시장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사서 피그멜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밀짚이 가득 실린 수레에 싣고 오다가 잠시 성벽 그늘에 세워두고 한숨 돌리고 있습니다.

성 꼭대기에서는 왕비가 공주 프리실라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저귀 속에서 뿌지직 소리가 나더니 지독한 똥 냄새가 풍겨 나옵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서투른 왕비는 아기를 난간에 내려놓고는 유모를 데리러 재빨리 다녀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공주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서 농부의 수레에 착 내려앉습니다. 그러자 수레에 있던 아기 돼지는 위로, 위로 올라가더니 아기 침대에 쏙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둘의 운명은 한순간에 뒤바뀐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가 돼지로 변했건만 왕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찌 된 일인지 알 것 같다고 합니다.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심술쟁이 요정의 짓이라 생각하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들먹입니다. 이는 이야기를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 점이 이 책의 재미를 유지합니다.

아마 왕은 공주가 자라 결혼을 하고 왕자가 입맞춤을 하면 마법에서 깨어나 공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을 터입니다. (개구리 왕자)

농부의 아내도 어찌 된 일인지 알 것 같다고 합니다. 아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신들을 위해 착한 요정이 한 일이라 믿습니다. (엄지공주)

그렇게 해서 아기 공주는 농부의 딸 피그멜라로 살아가고, 새끼 돼지는 공주 프리실라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날, 농부는 성의 시녀들이 돼지로 변한 공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새끼 돼지와 공주가 뒤바뀐 것을 알게 됩니다. (왕자와 거지)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성으로 공주를 데리고 가지만, 왕과 왕비는 부자가 되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믿지 않습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

부모님과 함께 돌아온 피그멜라는 양치기 총각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왕자와 결혼한 돼지는 수많은 키스 세례를 받지만, 여전히 돼지로 살아갑니다.

작가는 왜 예쁘고 영리한 공주가 신분을 회복하여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스토리를 버리고 양치기 총각과 결혼해 살게 했을까요?

그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고관대작들의 근엄하고 고상한 이면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맡고 사는 것보다는(조선 25대 왕 철종) 양을 치더라도 하루하루 성실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소시지 소시지

글 그림 : 제시카 수하미

옮긴이 : 홍연미

출판사 : 웅진주니어

소시지 소시지는 가난한 나무꾼 존이 장미 가시에 걸린 요정을 구해주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요정은 그 보답으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를 잡은 존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아내 마사에게 전합니다.

이런 기회가 여러분께 찾아온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으신가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커피숍을 찾아 걷고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하고 올려다보았더니 로또 판매점이었습니다. 간판에는 ‘1등 담첨자 배출. 17억 9000만원’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도 당첨되면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터입니다.

존과 마사는 무슨 소원을 빌면 좋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옛이야기에서 처럼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해서 부자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막상 세 가지 소원을 고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휴우, 한숨을 내쉬고 더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배가 고파진 존은 "소시지 몇 개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존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어디선가 휘이이이익,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굴뚝에서 지글지글 김이 나는 통통한 소시지가 줄줄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원 하나를 그저 날려버린 것을 알고 아내 마사가 그 소시지가 당신 코끝에 철썩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외칩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휘이이이익 소시지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존의 코끝에 철썩 붙어버립니다. 두 번째 소원도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문제는 코에 붙은 소시지를 아무리 떼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가위로 자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림을 보면 소시지 둘레에 금빛 가루들이 뿌려져 있는데, 이는 마법이 작용하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소원을 쓸 기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코끝에 긴 소시지를 붙인 채 부자로 살게 해달라고 빌 것인가. 소시지가 존의 코끝에서 떨어지게 해달라고 해서 예전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살 것인가.

여러분은 작가가 어떤 결말을 내릴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한 그대로 작가는 마지막 소원을 존의 코끝에 달라붙은 소시지를 떨어지게 해달라고 빕니다. 그래서 존 부부는 부자가 될 기회를 잃고 맙니다. 그렇지만 둘은 함께 있고, 맛있는 저녁을 먹게 됩니다. 물론 그날 메뉴는 소시지였죠. 좀 시시한 결말 같지요?

그러나 돼지 공주의 작가나 소시지 소시지의 작가가 창의력이 부족해서 이런 결말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간혹 뉴스에는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도되곤 합니다. 로또 당첨으로 그들의 삶이 행복해지기보다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 돈이나 부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닌가 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두 작가는 이런 결말을 내렸겠지요.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 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발간

- 대전 시민대 동화창작 강의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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