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0 14:54 (목)
충청의 명의 - 대전 유성선병원 부인암센터 최석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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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명의 - 대전 유성선병원 부인암센터 최석철 소장
  • 안시언
  • 승인 2019.10.08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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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완쾌했다는 것, 기분 끝내주는 순간이죠.”

‘부인암 권위자’, ‘자궁암 분야 명의(名醫)’. 대전 유성선병원 부인암센터 최석철 박사를 수식하는 관형어다. 원자력 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2014년 8월부터 유성선병원 부인암 센터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산부인과 부인암 분야에서 국내 10대 명의로 꼽히는 올해 의사로서 28년 차 최석철 박사. 그를 만나 의사로서 의미 깊었던 시간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Q. 최석철 박사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무엇이 지금의 최석철이 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A. 아버지가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늘 환자분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수술 도감을 같이 보면서 인체가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전 무작정 외우기만 하는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다만 실습에 유독 흥미와 특기를 보였어요. 동물 실험 할 때나 해부 실습 할 때 제가 하는 과정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저는 수술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수술 환자의 사진이 다 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분도 어떻게 수술이 이루어졌는지 알 권리가 있기에 그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Q. (수술하는)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첫 번째는 인성입니다. 그리고 타고난 손재주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열심히 오랜 기간 그림을 그린다고 하여도 타고난 재주가 있는 화가와는 견줄 수 없겠죠. 공부를 잘하면 손재주가 좋을까요? 그건 별개의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수술하는 의사는 도제식 교육이기 때문이죠.

다만 트레이닝 과정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죠. 의사는 많지만, 환자가 신뢰하는 의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슈바이처를 꿈꾸며 의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죠.

Q. 작년에 열린 ‘제1회 대한부인종양학회 부인암 수술 심포지엄’에 강연자로 참석하셨죠?

A. 네, 저는 2014년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유성선병원으로 왔습니다. 저는 소위 수도권 메이저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아니고 현직 교수도 아니죠. 그런 나에게 수술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오더군요. 자궁경부암에 걸린 젊은 여성에서 자궁을 보존할 수 있는 ‘복강경을 이용한 광범위 자궁경부 절제술(Laparoscopic Radical Trachelectomy)’이란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올 7월 서울대에서 열린 부인암 수술 심포지엄에 좌장으로 초청받았습니다.

Q.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병원(Leipzig University) 연수 시절 ‘뼈아픈 고통’을 겪었다던데요?

A. 맞습니다. 당시 교환 교수로 독일에 갔습니다. 제 순번도 아니었는데 간절하게 그 수술법을 배우고 싶어 원장님께 간곡히 부탁하여 얻어낸 기회였어요. 당시 2004년이었고요. 그곳에서 제가 목격한 것은 15시간 이상 소요되는 위험하고도 놀라운 수술이었어요.

당시 헤켈 교수의 리어(LEER) 수술법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수술이었죠. 세상에, 이렇게도 수술할 수 있구나. 연신 감탄하면서 제 좁은 시야를 질책하는 시간이었죠. 정확히 설명하면 직접 수술에 참여하여 봤던 것은 아니에요. 독일 의사면허가 없으니 헤켈교수 어깨너머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카메라로 세세한 부분까지 녹화하면서 봤어요.

팔을 길게 뻗어 카메라를 수술 장면에 고정한 자세로 15시간이고 17시간이고 녹화했어요. 나중에는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제 수술은 독일 전과 후로 양분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어요.

Q. 그렇게 배운 리어 수술법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까?

A. 네, 귀국 후 2005년 원자력병원 재직 시절에 성공했습니다. 60세 환자분이었는데 수술 시간만 15시간 30분이었어요. 피가 마르는 긴 수술이 새벽에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환자분을 지켜보다 밤을 꼬박 새고 저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외래 진료를 이어서 봤어요. 어느 순간 눈을 뜬 채로 제가 졸고 있더군요. 거제도에 거주 중인 분이었는데 병원 이직 후 선병원까지 외래 진료를 옵니다. 이제 안 오셔도 되는데.(웃음)

그때 가족 중 한 명이 병원 홈페이지에 감사 글을 남긴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말 한마디에 피로가 다 씻깁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그 환자분에게 완치되었다고 판정을 말씀드릴 때 너무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간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석철 박사는 환자와 대면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지금도 차트 정리를 미리 해놓는다. 본인을 찾은 절박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 더 자세한 설명에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다. 환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혹독한 오늘을 사는 최석철 박사. 환자의 완쾌가 더없는 보상이라는 그에게 명의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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