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0 14:54 (목)
김형태 칼럼 | 농가월령가: 팔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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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칼럼 | 농가월령가: 팔월령
  • 김형태
  • 승인 2019.10.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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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업일지랄까 농촌생활 잡기랄까 음력 팔월(양력 9-10월)의 농촌 생활을 두루 섭렵해 놓은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팔월이라 한가을이니 백로 추분절기로다. 북두성 자루 돌아 서쪽 하늘 가리키니 서늘한 아침저녁 가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에 들리는구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은 열매 맺고 만물 결실 재촉한다. 들 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백곡은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이니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이 누런 구름 일어난다. 백설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 송이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태기 장만하고 면화 따는 다래귀에 수수 이삭 콩 가지요. 나무꾼 돌아올 때 머루 다래 산과일이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차지구나, 아름 모아 말리어서 철 되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 내어 가을 햇볕에 널어 말리고 쪽들이고 잇들이니 울긋불긋 하구나. 부모님 나이 드시니 수의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말려놓고 자녀의 혼수하세. 집 위의 익은 박은 긴요한 그릇이라 대싸리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다. 참깨 들깨 거둔 뒤에 중 오려 타작하고 담배 녹두 팔아다가 필요한 돈 마련하자.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 보세. 새 술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성묘를 하고나서 이웃끼리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 다녀갈 때 개 잡아 삶아 내고 떡 상자와 술병이라. 초록 잠옷 검남빛 치마 차려 입고 다시 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회복이 되었느냐, 가을 하늘 밝은 달에 마음 놓고 놀고 오소. 올 할 일 다 못하여 내년 계획 짜봅시다. 밀대 베어 더운 갈이 밀과 보리 심어 보세.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가소. 사람 힘만 그러할까 계절도 그러하니. 조금도 쉴 틈 없이 마치면 시작이라”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심판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적에 베짱이와 개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여름 한철 노래만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될 때 추워서 여기저기 구걸을 다니고 봄, 여름철 땀 흘려 먹이를 저장한 개미는 가을과 겨울에 굴속에서 편히 쉬며 따뜻하게 지낸다는 얘기 말이다.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를 통해 그런 교훈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겁니다/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물을 겁니다/그때 나는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도록/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하지 말아야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겁니다/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가꾸어 나가야겠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겁니다/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그렇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고 안 심으면 안 난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자와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자. 죄를 심고 칭찬을 거두려는 자가 사기꾼이다. 이리 굽고 저리 굽어 무질서해 보여도 길게 보면 모든 강은 산에서 출발해 바다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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