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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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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 시사저널 청풍
  • 승인 2019.07.08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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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혹은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생각해 본 적 있었던가 “세상의 책들은 왜 모두 무거운 것일까” 글자가 너무 많아서? 아님 책 속에 담긴 게 너무 많아서? 지지리도 공부를 못해서? 굳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속담을 꺼내들지 않아도 우린 책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의 시는 낮선 언어 낮선 문법 등을 우리에게 들이대며 분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매끄럽기 그지없는 문체로 우리의 눈을 현혹하지도 않는다

이런저런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인 시일 뿐 그러나 그 일상이 우리에서 주는 무거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기에 짧은 생각 끝에 책이 무거운 까닭에 대한 결론 그것은 든 것 없는 내 머릿속의 한없는 가벼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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