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똑똑해지는 약』&『돼지왕』

이해완 시인 승인 2020.08.12 14:53 의견 0

이번 호에는 『똑똑해지는 약』과 『돼지왕』을 준비했습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지도자는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할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볼 만한 그림책입니다.

 

『똑똑해지는 약』

글 : 마크 서머셋

그림 : 로완 서머셋

옮긴이 : 이순영

출판사 : 북극곰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은 수없이 많지만, 유치부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 있는 그림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였다. 사실 그맘때 아이들은 똥이란 말만 나와도 뒤집어진다. 그런데 그림책 『똑똑해지는 약』의 반응은 이전에 나온 똥에 관한 어떤 책보다 뜨거웠다.

그림책 읽어주기를 하는 사람들은 비장의 무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바로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 강연 의뢰가 오면, 이 책을 가지고 가곤 한다. 처음에는 저 강사가 어찌하나 보려는 듯 근엄하게 자리 잡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이 책을 다 읽어주고 나면, 무장해제를 하고 호의적으로 변한다. 그때 살짝 2탄도 마저 읽어드릴까요? 한다. 그러면 다들 어린애처럼 “네!” 하고 외친다. 이날의 강의는 두말할 것 없이 성공한 것이다. 여러분들도 자녀에게 한 번 읽어주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놀이지도사 과정 때문에 매주 일요일마다 6차에 걸쳐 진주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세종유치원 원장님께서 모처럼 오셨으니 학부모 교육을 그림책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 책임연구원인 남혜란 강사가 맡게 되었다.

남혜란 연구원이 어리보기 칠면조 역을 맡고 한 학부형이 장난꾸러기 어린 양 메메 역을 맡아 읽어나가는데 마치 역할극을 보는 것 같이 재미있었다. 짧은 대화 속에 속이려는 메메와 먹기만 하면 똑똑해진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칠면조 칠칠이의 내면을 작가가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뒷자리에 앉아 지켜보는데, 몇몇 학부모들은 책을 주문하려는지 스마트폰을 꺼내 『똑똑해지는 약』을 검색하기도 했다. 『똑똑해지는 약』은 장난꾸러기 메메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이고, 『레모네이드가 좋아요』는 똑똑해지는 약인 줄 알고 먹은 것이 똥이란 사실을 안 칠칠이의 복수극이다.

칠칠이는 복수를 하기 위해, 염소 빌리의 오줌을 준비해 놓고 레모네이드라면서 메메에게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영리한 메메의 교묘한 말장난에 넘어가 칠면조 자신이 또 먹게 된다. 많은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고 어리보기 칠칠이를 비웃는다. 어쩌면 그게 맞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 똑똑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과 함께 더불어 행복해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똑똑하다고 해서 그 영리한 머리로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누리는 호사는 결국은 자신도 불행에 빠뜨린다.

나는 힘없고, 빽 없는 어리보기 칠면조 칠칠이다. 그래서 칠면조 칠칠이가 잔뜩 의심의 눈으로 이거 혹시 똥 아니냐고 물었을 때처럼, 내 식탁 위에 오르는 반찬들이 중금속에 오염된 것은 아닌가 의혹의 눈으로 살펴보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알 도리가 없다.

똑똑하고 영리한 자들이 순도 높은 음식을 먹을 때, 힘없는 나 같은 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괜찮다고 하면 중금속에 오염된 똥보다 못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똑똑한 메메라고 생각하는가, 어리보기 칠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림책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한 아이가 한 말은 나를 뭉클하게 한다.

“친구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요! 심심하면 같이 놀자고 해야죠.”

 

 

 

『돼지왕』

글 그림 : 닉 블랜드

옮김 : 김혜진

출판사 : 천개의바람

 

주나라 제10대 국왕은 여왕(厲王)이었는데, 그는 사치스럽고 잔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때문에 백성들의 비난이 빗발 같았다. 여왕은 분노하여 위나라 출신의 무당을 불러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게 했다. 여왕의 탄압이 세어지자 백성들은 말을 못하고 눈짓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여왕은 자신을 비방하는 말이 사라졌다고 여기고 신하인 소공에게 “나는 잡다한 소리들을 모두 없애버렸소. 이제 감히 나의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없소.”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소공이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물이 막혔다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인데, 백성들도 역시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수로를 열어 물이 흐르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들의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충언을 했다. 하지만 여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4년이란 무시무시한 공포의 시간이 흐르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낫, 호미 등 농기구들을 들고 왕궁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자, 왕궁의 경호병들은 뿔뿔이 도망쳐버렸다. 여왕도 간신히 도망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국외에서 생을 마쳤다. 그때는 어두운 봉건시대였음에도 성난 민심을 당해내지 못하고 여왕은 국외로 쫓겨나야 했다.

『돼지왕』은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는 돼지왕과 그 아래서 고통당하는 양들의 이야기이다. 돼지왕은 길을 갈 때 양들이 등에 멘 판자를 밟고 걷는다. 그러면서도 양들이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란다. 자기 때문에 양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해질지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멋진 옷이다. 멋진 옷을 입으면 양들이 자기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입을 근사한 옷을 위해 양들의 털을 벗겨내는데, 그 과정이 끔찍하다. 양들이 줄지어 들어서면 머리 위에서 물감들이 쏟아진다. 그다음에는 쇠기둥에 매달리게 해서 초강력 진공 흡입기로 양들의 털을 한 올 남기지 않고 다 뽑아내는 것이다. 물론, 왕이 입을 옷을 밤새도록 만드는 것도 양들의 몫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 날 봐달라고 거만하게 걷는 돼지왕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도 돼지왕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나를 좋아해 줄 거냐고!” 소리소리 지른다. 그러자 돼지왕에게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좀 착해지려고 노력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러자 돼지왕은 투덜댄다. “나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착했다고!” 참으로 어이없는 이 말은 돼지왕이 얼마나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날 밤, 돼지왕은 전에는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던 감정을 경험한다. 양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마침내 양들을 위해 뭔가 착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돼지왕은 밤새 양들의 옷을 만든다. 그걸 보며 양들은 모두 앞으로 돼지왕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한다. 돼지왕은 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이다.

앞서 소개한 『똑똑해지는 약』에서 똑똑해지는 약인 줄 알고 똥을 먹은 칠칠이가 복수하려고 염소 빌리의 오줌을 레모네이드라고 속여 먹이려고 했다가 영리한 메메의 말재간에 넘어가 또 다시 자신이 오줌을 먹고 말지만,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든 저항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당하기만 하면 그때는 정말 바보인 줄 안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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