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작가의 여행기] 그대, 아루나찰라로 초대합니다.

이연자 작가 승인 2020.08.12 15:29 의견 0
아루나찰라산을 바라보는 세계에서 온 수행자들


아루나찰라는 매혹적인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보름 동안 그곳에 있었고 본성(the Self)을 향한 구도의 각기 다른 길을 가던 세 사람을 만났다. 남의 여행기를 읽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시시콜콜한 경험과 감상을 적은 글을 읽으면서 무한정 낯선 곳, 낯선 상황이 주는 매혹적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필시 나처럼 문자 중독이어서 더욱 디테일한 상황 묘사나 심리적 변이를 따라 읽는 것에 희열을 느낄 것이다.

 

1. 아루나찰라를 인터넷에 소개하기

이번 아루나찰라를 여행하는 동안 나의 궤적을 적어보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순간순간의 상황이나 감상에 대한 묘사를 성실히 해볼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가를 진정하게 표현한다면, 그 진실이 주는 감동으로 팍팍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고, 살아낼 힘을 생기게 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나는 뭄바이 인-아웃 비행기 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였다. 시즌이 막 시작되기 일주일 전이므로 세금과 비자 신청비 포함 87만 원을 지불하였다.

지난주 종강한 후에 대학원생들의 성적을 입력함으로써 15주 할 일이 다 끝났다. 26일 돌아와서 27일 딸 대학 접수, 28일은 학부생들 성적을 입력하기로 한다. 12월 12일 아침 6시 50분에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남편은 출근길에 나를 인천공항행 정류장에 떨구어 주는 것이다. 나는 반팔 티셔츠에 가벼운 캐시미어 스웨터, 겉옷으로는 고어텍스 소재 윈드스타퍼를 입었다. 약간 서늘하지만 참을 만했다.

 

스리 라마하 마하르시 - 가장 유명한 사진


2. 전교조 교사로 지리산 자락에서 친구와 인도 여행 루트를 짜다

나는 인도를 대여섯 번 다녀온 친구를 하루 시간을 내서 만났다. 그가 짜준 루트는 뭄바이-고아-함피-뭄바이-엘로라-보팔-산치-뭄바이였다. 여행 루트를 핑계로 오래 묵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 지리산 입구 초라한, 그리고 억수로 유치한 실내장식과 희미한 전등불 아래, 시골 청춘남녀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는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나눠 마시며 터무니없이 생경한 인도와 여행 루트와 추억과 여행 경험담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을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부조리한지. 충분히 인생은 살만하지 않은가. 주변은 어찌나 시끄럽고 산만하던지…. 일찍 어둠에 잠겨 캄캄한 지리산 산동네가 오히려 비사실적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어두운 산길을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한 가지 기억이 툭! 하고 비집고 올라왔다. 5년 전 카트만두의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들리는 한국 사람들의 경쾌한 영웅담을 엿듣다가 나는 그들의 식사비를 치렀다. 장기여행자들에 대한 예우랄까. 어쨌든 그런 나의 호의에 그녀는 의아해했고, 나는 한국에서 만나면 대신 밥을 한 끼 대접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받아든 그녀의 주소와 이름. 난 소중히 그 이름을 간직했고 한 두 번의 통화를 했다. 그녀의 소개로 라마나 마하르쉬 책을 구입해 읽었다. 『진아여여(眞我如如/Be as you are, 대성스님 역)』같은 초기 책은 10만 원의 보시를 하고 한 권 얻은 책이며, 내가 자주 가는 동네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간다는 마지막 통화에서 그녀는 “선생님은 아루나찰라로 오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미국 시튼홀대학에서 연극 제작에 참여하며 3년을 살게 되었는데, 맨해튼 건너편이라 완전히 상거지처럼 살았다. 원베드룸에서 애들 둘과 생활하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위로는 언젠가 히말라야에 가리라는 소망뿐이었다. 마하르쉬의 사진을 오려서 부엌 한 켠에 붙여놓고 그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미치도록 번잡하고 화려한 속에서 믿을 수 없이 적게 소유하고 아무런 소유의 욕망마저 나를 잠식하지 않는 나는 학생이며, 학자이며, 동시에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boundary crosser)’ 로서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피 터지게 싸워댔다.

아, 마하르쉬. 무소유를 즐기면서도 체류기간 동안 1,600권을 사 모았는데 책에 대한 탐욕만은 접을 수 없었다. 아, 마하르쉬. 사진 옆에 사인펜으로 적어놓은 ‘무소유’. 쪼그만 부엌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다가오는 물질주의에 항거하는 나의 서투른 그러나 푸른 정신.

이제 마하르쉬의 성지로 여행 방향을 틀었다. 인도 사이트에 접속해서 의견을 물어보니 고아와 아루나찰라는 정반대의 성격인데 어떻게 두 개를 연결할 생각이냐는 고수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루나찰라(Arunachala Hill)는 타밀나두 주 띠루반나말라이(Tiruvannamalai)에 있었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첸나이 공항에서 내려서 택시나 버스를 4시간 타고 가면 도착하게 되어있다. 나는 뭄바이 인아웃이었기에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버스터미널


3. 뭄바이 공항에서 빅토리아 터미널행 새벽버스를 타다

나는 먼저 마하르쉬 아쉬람에 14일부터 5일간 방을 예약했다. 뭄바이-뱅갈로르-띠루반나말라이를 연결해야 했다. 조금 비장해졌다. 그래 가보자.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 옆좌석 아가씨는 라즈니쉬의 산야신(힌두교에서 인생의 4번째 단계(ashrama)에 이르러 속세와 인연을 끊은 수행자)으로 뿌네의 아쉬람에서 6개월을 보낼 계획이다. 그녀는 인도식당을 경영했었는데, 실컷 인도 커리를 맛볼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단다. 그녀는 하는 짓이 귀여워 보였다. 기내 와인을 2병 시켜서 쫘악 들이키는 그 모습과 말을 할 듯 안 할 듯 머뭇거리는 표정이, 한물간 오쇼의 아쉬람에서 살겠다는 그 마음이 귀여워 보였다.

밤 12시에 공항에 떨어졌다. 입국 수속과 환전을 마치니 새벽 2시쯤 되었다. 빅토리아 터미널에서 뱅갈로르(Bangalore)행 기차가 아침 7시 55분에 있다. 예약하려면 이틀 이상 소요될 텐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2주뿐이므로 기필코 오늘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할 것이다.

공항 바깥에 호텔예약 부스, 대절택시 부스, 버스예약 부스가 나란히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오늘 아침 뱅갈로르행 기차를 반드시 타야 하는데….”

“그럼, 지금 터미널로 가지 그래, 아침엔 러시아워라 차가 밀리니까” 하고 부스 직원이 나를 버스 터미널로 데려다준다.

공항 출구 바깥 왼쪽 방향으로 3분 정도 걸어가니, 버스가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벽 3시 15분 발 빅토리아 터미널행인 것이다.

버스에 오르니 바닥에 운전기사와 조수가 자고 있었다. 차장이 나더러 맨 앞에 앉으란다. 버스비는 달랑 16루피이다. 새벽 4시 10분에 기차 터미널에 도착했다. 인도 특유의 풍경으로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역 안 실내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예약 창구에서 믿을 수 없이 간단하게 2A/C upper berth(침대칸)로 1,637루피에 아침 7시 55분 발 예약을 끝냈다.

* 6529 Udyan Exp. 7:55am 1,210km 24.5 hr — 24시간 30분(!) 동안 타고 간다.

이제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성전용 대기실로 가서 머리도 감고, 볼일도 보고 역 내 서점에서 25루피를 주고 기차 타임테이블 책자를 샀다. 뱅갈로르행 기차가 플랫폼 9에서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쉬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잠시 정차한 곳에서 간식 사먹기


4. 빅토리아 터미널에서 뱅갈로르행 기차를 타다

기차는 엄청나게 길었는데 2A는 맨 끝에서 두 번째였다. 출입문에 붙어있는 리스트에는 내 이름이 미처 올라가지도 않았나보다. 2시간 눈을 붙이고 나서 현지 인도남들의 수다스런 대화 소리에 잠이 깨었다. 10루피짜리 토마토 수프 한 컵과 역시 10루피짜리 얄팍한 토마토 샌드위치로 아점을 때웠다. 짜이도 수프도 일회용 얇은 비닐 컵에다 준다. 내 칸(coach)의 인도 친구들, 아침 8시 탑승 때부터 끈덕지게 자고 있다. 내 건너편 남학생, 아래 칸 모녀는 쉬지 않고 잔다. 더운 날씨 때문에 낮잠이 필수라서 그런가? 2A/C는 모포 한 장, 베개, 수건 한 장이 제공되고, 에어컨이 가동된다. 나는 밤새 컴컴한 upper berth에 그냥 멀뚱히 누워 있는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기차 출입문을 열고 별을 좀 쳐다보았다. 이제 뱅갈로르에 내리면 버스 스탠드까지 걸어가서 띠루반나말라이행 버스를 타면 된다.

 

아쉬람 앞 유명한 레스토랑


5. 머제스티 버스터미널에서 띠루반나말라이행 버스를 타다

뱅갈로르 역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난 지하도로 들어가 왼쪽 ‘Local’ 표시를 따라 올라가니 머제스티 버스터미널이다. 띠루반나말라이행 버스는 Gate 14에서 10분 후 출발이다. 버스에 올라타자 차장이 승강기 바로 앞자리를 준다. 버스비로 73루피를 낸다. 내가 탄 디럭스 버스는 TV수상기가 두 대나 있고, 5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비디오를 돌린다. 두 편의 인도 드라마를 보았다. 1시 30분에 시골 장터에서 10분간 휴식이다. 짜이가 3루피이다. 옆 좌석 아가씨 데비에게 한 잔 사준다. 튀긴 빵 한 개도 3루피인데 한 입 먹으니 이가 부러질 듯이 딱딱하다.

어제 기차에서 샌드위치 한 쪽, 스프 한 컵, 저녁은 쪼그만 뿌리 한 장, 화장실이 귀찮아서 물도 거의 안 마시고, 오늘 아침 건너뛰고, 지금 한 입 베어 물다 만 빵은 시커먼 기름에 튀긴 바로 그 맛이다. 데비가 버스의 모든 사람이 내가 누군지 궁금해서 ‘재패니즈’라고 대답했단다. “얘, 난 한국인이다.” 해도, 한국인은 모르고 일본인은 알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하긴 둘러보니, 얼굴 누런 사람은 나뿐이다.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같이 가고 있는 거다. 남부의 풍광이 뜨뜻한 바람과 함께 스치며 지나가고, 시끄럽고 더럽고 소란한 모든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정겹게 느껴지니 대체 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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