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나 울다 / 백인덕

박승일 승인 2020.10.07 15:06 의견 0

산비탈 비스듬히 골목을 오르다

삐져나온 바위 그루터기에 앉아

울었다.

“시는 무엇이며, 인생은…”

바람이 담뱃불조차 꺼버린 어둠,

진득하게 고인 시간 속에서

누구는 나한테 “바다”를 보라 하지만

- 거긴 죽음을 먹어치운 해파리만 가득하고

누구는 나한테 “꽃” 을 보라 하지만

- 색색의 표면 아래 들끓는 생식의 욕망 가득하고

누구는 나한테 “바다와 꽃과 시”를 보라 하지만

허기진 날 바람은 더욱 매섭고

아무래도 삶은 “라깡”이 아니라 “새우깡”인데

어둠이 깊어갈수록 더 크게 웃는 당신,

당신들이여!

오층 창가에 아주 잠깐 반짝이는 “반딧불이” 는

내 서러운 어둠을 위해, 이 밤도

울고 있음을…

돌 벽에 수없이 머리 찧어도 번개가 일지 않는

흐리고 흐린 밤, 비스듬한 골목을 오르다

마지막 담뱃불을 꺼뜨리고

나 실실 울다.

 

 

 

 

“어둠 깊어갈수록 더 크게 웃는 당신 그건 또 누구이며 무엇이란 말인가?”

직업, 나이, 남녀노소를 불문 끔찍하고 야속하고 막막하다. 지금껏 사람들의 북적이던 곳곳이 공포와 분노로 가득하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칸막이, 거리두기, 격리, 감염, 따위들… 이는 지상에서 가장 슬프고 무서운 광경이 아닐까?

문득 백인덕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마치 ‘고뇌란 이런 것이야’라고 말해 주듯 내장을 후벼 판다. 울음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막장의 동화들. 도대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이런 씹다 뱉은 새우깡 같으니라고.

백인덕 시집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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