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알사탕』, 『날아라, 에뮤!』

이해완 시인 승인 2020.10.12 16:23 의견 0

이번 호에는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과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에뮤의 꿈을 담은 브루스 와틀리의 『날아라, 에뮤!』를 준비했습니다.

 

『알사탕』

글 그림 : 백희나

출판사 : 책읽는곰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것은 백희나 개인적인 영광일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알사탕』의 주인공 동동이에게는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는 것은 이 아이의 기질 탓이기도 하겠지만, 동동이에게는 엄마의 부재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이는 아무래도 겉모습에서부터 드러나는 법이어서 또래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한 페이지 가득 이어지는 아빠의 잔소리는 엄마 없이 자라는 자식이 밖에 나가 괄시받고 무시당하지 말라는 아빠의 관심이다.

“숙제했냐? 장난감 다 치워라. 이게 치운 거냐?”로부터 주저리주저리 시작되어 “양치 다시 해라. 조끼 입고 자라. 춥다. 9시다. 얼른 자라.”로 끝나는 잔소리가 지겨워 복수하는 마음으로 푸르스름한 색깔에 검은 점이 박힌 알사탕을 먹었을 때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다. ㅅㄹㅅㄹ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더 또렷해지더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고 분명하게 들려온다.

그렇다. 동동이가 가게에서 산 사탕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기한 사탕이다. 이 사탕을 먹고 동동이는 소파의 소리도 듣게 되고, 함께 살고 있는 늙은 개의 속사정도 알게 되고, 아빠의 진심도 알게 된다.

백희나 작가는 사탕의 색과 무늬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추측해볼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분홍색 사탕은 동동이가 엄마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랐음을 암시한다. 사탕 속에는 풍선껌이 들어 있었는데, 풍선이 터지면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늘나라에 간 할머니는 그곳에서도 동동이 걱정이다. 할머니는 여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동동이 너도 친구들이랑 많이 많이 뛰어놀아라는 당부를 한다. 동동이는 친구도 없이 구슬치기 놀이를 하면서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위한다. 그만큼 친구와 함께 놀고 싶다는 간절한 표현이다.

이제 마지막 사탕이 남았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런데 투명한 사탕을 아무리 빨아도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서 동동이는 먼저 말해 버리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동동이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어떤 말인지 추측해내기 위해서는 늘 그렇듯이 그림책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동동이가 노랑과 주황이 섞인 알사탕을 먹었을 때,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가자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들이 안녕 안녕 해대던 숲속 저 멀리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있던 아이!

동동이는 이 아이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랑 같이 놀래?”

지금까지 수동적이었던 동동이는 이 투명한 사탕을 먹고 먼저 손을 내미는 능동적인 아이가 된다. 친구가 생긴 것이다. 함께 킥보드도 타고 구슬치기도 할 친구 말이다.

알사탕을 먹고 소파의 목소리를 들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동동이가 말을 건네기까지 사물에서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의미가 확장되면서 동동이는 능동적으로 변해 간다.

작가는 뒤표지에 동동이가 탄 킥보드와 새로 사귄 친구가 탄 스케이트보드를 현관 앞에 나란히 세워둔 그림을 통해 우정이 돈독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날아라, 에뮤!』

글 그림 : 브루스 와틀리

옮긴이 : 최용은

출판사 : 키즈엠

 

날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날지 못하는 새들이 있다. 펭귄이 그렇고 타조가 그렇다.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닭이나 오리들도 점차 퇴화하여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에뮤도 퇴화하여 더이상 날 수 없는 새다. 그런 에뮤가 날기에 도전한다.

루 할아버지는 날고 싶어 하는 에뮤를 위해 과학자 얼을 소개해준다. 과학자 얼은 밧줄, 구멍 뚫린 동그란 파이프, 넓은 판, 스케이트보드로 날기 도구를 만들어준다. 마침내 프로펠러가 달린 모자와 긴 목도리를 두르고 독수리 언덕에 선다.

“자! 이제 간다. 날아라, 에뮤!”

친구들은 에뮤를 힘껏 밀어준다. 과연 에뮤는 성공할까?

중국 장쑤성 쿤산 지역에서 7살 소년이 만화 속 주인공이 우산을 들고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날아오를 수 있다 생각하여 우산을 펼친 채 10층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그런 기억이 없지는 않다. 망토를 두르고 골목을 누비며 슈퍼맨처럼 멋지게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어른들은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의 무모한 장난으로 치부하고, 내 아이가 그러지 않은 것에 감사하겠지만 하늘을 날고 싶은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류의 오랜 소망이었고, 이런 소망을 버리지 않고 위험에 도전한 사람들에 의해 인류의 문명은 발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잘 아는 그리스 신화에도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인류의 꿈이 반영되어 있다.

크레타 섬의 왕인 미노스에게는 처치 곤란한 자식이 하나 있었다. 왕비인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간음하여 낳은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 말이다. 미노스 왕은 뛰어난 조각가이며 발명가이기도 한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를 만들게 한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 미노스 왕은 이웃 나라인 아테네에 해마다 7명의 소년 소녀를 제물로 바치게 했는데,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제물의 틈에 끼여 미궁 속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다.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라비린토스를 테세우스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테세우스를 연모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청하자, 실타래를 주면서 기둥에 실을 묶고 들어가 실패를 감으면서 나오면 된다고 탈출 방법을 알려준다. 나중에 이 일이 발각되어 미노스의 노여움을 산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만든 미궁 라비린토스에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히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지도 말고 너무 낮게도 날지도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젊은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는다.

지금도 세상 어디엔가는 하늘을 날고 싶어 우산을 들고 뛰어내린 중국의 소년이나 에뮤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은 어린이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소년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옥상에서 뛰어내린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곤 했다.

오늘날 눈부신 과학 발전에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 에뮤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슴에 꿈이 있으면 날 수 있으니까!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발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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