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파란 분수』 & 『구름공항』

이해완 시인 승인 2020.11.09 15:32 의견 0

이번호에는 ‘글자 없는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최경식 작가의 『파란 분수』와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공항』은 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보면 즐거움이 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파란 분수』

글·그림 : 최경식

출판사 : 사계절

 

‘글자 없는 그림책’은 아이들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볼 때는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그림을 보면서 유추해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상상력과 추리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글자 없는 그림책’은 21세기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그림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글자 없는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작가가 될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아이가 유추한 내용을 글 작가처럼 써보게 하면 된다. 주의할 것은 대화글을 넣어가며 쓰는 것이 생동감 있는 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쓰게 하면 더 좋은 글이 된다. 이 방법은 글쓰기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크다.

『파란 분수』는 아파트 한가운데 오랫동안 물을 뿜지 않는 분수를 보고 상상력을 펼쳐낸 작품이다. 분수라면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야 할 텐데 너무 오랫동안 물이 나오지 않아 비가 오면 바다 냄새가 날 것 같은 분수. 그래서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분수대에 아이 하나가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장을 넘기다가 분수대 주위 콘크리트가 조각조각 갈라지며 그 밑에서 거대한 고래의 눈이 드러났을 때, 문득 20년도 넘은 세월 저편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 우리 일행은 밀양의 만어사에 있었다. 송수권, 나태주, 정일근, 배한봉 시인 등 그 당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출신 시인들이 자주 만나 자리를 함께 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에게 만어사를 소개한 사람은 정일근 시인이었다. 정 시인은 우리를 거대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너덜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동자승처럼 해맑은 얼굴의 그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더니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바위에서 신기하게도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다른 바위 위로 자리를 옮겨 또다시 예의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대했던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수많은 바위들을 두드리는데, 어떤 바위는 맑은 소리가 나고 어떤 바위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맑은 종소리를 들려줬던 바위는 해탈한 바위이고 둔탁한 소리가 나는 바위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바위라고 했다. 바위에서 이렇게 종소리가 나는 데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했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이란 곳의 고승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스님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발길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멈춘 곳이 이곳 만어사라고 했다. 그때 용왕의 아들을 따르던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고 한다.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바위들마저 깨우침을 얻게 되면 영생의 몸이 되어 바다로 바다로 헤엄쳐 갈 것이다.

『파란 분수』에서는 아이의 상상력으로 고래와 함께 바다로 하늘로 자맥질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고래의 숨구멍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듯 오래된 분수에서 물줄기가 솟구치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상상력이 가득한 책이다.

 


『구름공항』

글·그림 : 데이비드 위즈너

출판사 : 시공주니어

 

5시, 알람이 울리자 피곤한 눈을 비비며 억지로 눈을 뜨고 대충 세수를 하고 과일과 견과류로 아침을 대신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자마자 짙은 안개가 길을 막는다. 전조등을 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간다. 가야 할 길은 강원도 인제군. 내가 사는 세종시에서 인제교육지원청까지는 무려 260km의 먼 여정이다.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조심조심 운전하지만, 1시간 이상을 달려도 짙은 안개 속이다. 더구나 충북을 지나는 도로는 미호천이 옆으로 나란히 평형을 그리듯 함께 하기에 안개가 쉽사리 걷히지는 않으리라 짐작하며 조심스럽게 운전해 간다. 충북 진천, 음성을 지나 여주에 이르기까지 안개는 걷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막휴게소에 이르러서야 걷히나 싶어 안심했는데, 그것도 잠시 또다시 짙은 안개가 시작된다.

그렇기는 해도, 안개의 사촌쯤 되는 구름 위를 걷는다면 상황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푹신푹신한 구름 위를 방방 뛰어다닌다면, 더구나 세상사 근심 없는 아이라면 그 즐거움은 그지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공항』은 1999년에 출간되어, 2000년에 칼데콧 아너 상을 받은 상상력이 기발한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한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체험 학습을 간다. 102층 초고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86층 전망대에서 자신의 빨간 모자와 머플러로 짓궂은 장난을 거는 꼬마구름을 만난다.

소년은 꼬마구름이 안내한 구름 발송 센터에서 이제까지의 획일적인 구름 모양들을 천차만별 다양한 모양들로 탈바꿈시킨다. 구름 발송 센터에는 대혼란이 일어나지만, 소년이 디자인한 다양한 물고기 구름들을 보고 사람들과 동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늘을 바다 삼아 둥둥 떠가는 각양각색의 물고기 모양 구름을 본다면 놀라 자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데이비드 위즈너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책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이런 멋진 책을 애써 외면하는 학부모들을 만날 때가 있다. 흔히 서점에서 목격하곤 하는 일이다. 아이가 데이비드 위즈너의 환상적인 그림책을 들고 “엄마, 이 책 사줘!” 하고 말하면 글은 없고 그림뿐인 책을 휘리릭 넘겨보고는 “야, 글자도 없는데 얼른 여기서 보고 딴 책 사!” 하고 다른 책을 권한다. 그 책을 가만 보면 글밥이 많고 아이의 나이에는 버거울 듯싶은 책이다. 그러니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예전의 학습 방식대로 지식을 주워 삼키기만 해서는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정보는 다 외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르는 것들은 스마트폰으로 그때그때 찾아보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다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지식 위주의 책보다는 상상력을 길러줄 수 있는 책을 권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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