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끝지』 & 『백만 마리 고양이』

글·그림 : 완다 가그
옮김 : 강무환
출판사 : 시공주니어

이해완 시인 승인 2021.08.11 13:26 의견 0

여름밤, 할머니 무릎 아래서 듣던 옛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 두 권을 준비했습니다. 『끝지』는 구미호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고, 『백만 마리 고양이』는 보헤미아 민화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글·그림: 이형진
출판사 : 느림보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이 시작되는 날이면 가족들은 모두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았다. 가장들은 방송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가를 서둘렀다. 특히 납량특집으로 귀신 이야기가 방영된 날 밤은 화장실 가기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화장실이 다들 집 안에 있지만, 그 당시는 방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형이나 언니를 동반해야 했다. 착한 언니나 형은 변소 앞에서 동생이 일을 다 볼 때까지 동요를 불러주며 안심시켜주었지만, 짓궂은 치들은 빨간 손으로 닦아줄까 파란 손으로 닦아줄까 하고 오히려 무섬증을 부추겼다.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구미호’였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가 외양간에 들어가 소의 간을 꺼내 먹고 홀딱홀딱 재주를 넘어 다시 예쁜 딸로 돌아오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그림책 시장에서도 ‘구미호’ 이야기는 여전히 인기가 좋다.

구미호 이야기는 ‘여우 누이’란 제목으로 많은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내용은 다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딸을 간절히 바라던 부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이 한 마리씩 죽어나간다.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누구의 짓인지 알아보게 했는데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잠이 들어 보지 못하고 셋째만 목격하게 된다. 셋째가 자신이 본 것을 말하자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시샘하여 거짓말을 꾸며 댄다고 쫓아낸다. 셋째는 어찌어찌해서 하얀 구슬, 파란 구슬, 빨간 구슬을 얻어 구미호를 물리친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 이형진은 이 이야기를 『끝지』라는 작품 속에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여우 누이가 왜 가족들에게 해코지를 하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우 누이가 가축은 물론이고 키워준 부모형제에게까지 몹쓸 짓을 하는지 독자는 궁금했을 것이다. 뭐 많은 옛이야기가 그렇기는 하지만.

그나마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낸(이성민 글·그림) ‘여우 누이’이다. 아버지가 딸만 이뻐해서 ‘아들 같은 건 없어져도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서 그런 재앙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 이형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형제를 죽인 원수이면서 누이로서의 삶을 살았던 여우 누이가 실은 아버지가 잡아 온 여우의 새끼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보다 설득력을 갖게 한다.

또한 여우 누이에게는 ‘끝지’라는 이름을 셋째에게는 ‘순돌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누이로서 함께했던 시간과 부모형제를 해친 원수로서의 애증을 담아내고 있다.

순돌이가 집에 돌아와 앞섶에 숨겨둔 구슬을 꺼냈을 때 자신에게 줄 선물인 줄 알고 잽싸게 낚아채서 부엌으로 달아나는 끝지를 보고 “끝지야, 가져가지 마. 주머니에서 구슬 나오면 너 죽어. 내가 너 잡으러 온 거야.” 하는 순돌의 마음속 외침은 독자에게 찡한 울림을 준다. 작가는 이런 감동을 흑백의 선만으로 여백을 주어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산이 7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는 야생 동물이 참 많았다. 호랑이, 곰, 늑대, 여우, 사슴에서 토끼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물원에나 가야 그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형진 작가는 우리 곁에 더 이상 볼 수 없는 야생 동물에 대한 미안함이 계기가 되어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글·그림: 완다 가그
옮김: 강무환
출판사: 시공주니어

백만 마리 고양이의 작가인 완다 가그의 좌우명은 ‘살기 위해 그리고, 그리기 위해 산다.’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놓기는 싫고,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모르긴 해도 죽기 살기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생활이 넉넉한 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호사스러운 취미가 될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계에 위협을 받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완다 가그가 그렇게 열심히 그림에 매달려야 했던 것은 14세가 되던 해에 부모를 잃고 졸지에 여섯 동생을 돌봐야 할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완다 가그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놓기는 싫고 입에 풀칠을 해야 해서 하루 종일 초가집에 틀어 앉아 그림을 그려야 했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조선시대 영조·정조시대의 화가 최북의 경우는 호부터 스스로 호생관이라 칭한 걸 보니 완다 가그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생관이란 붓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란 뜻이니 말이다.

완다 가그는 카드 삽화, 잡지 삽화 등 닥치는 대로 그리다가 그녀의 막냇동생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업 예술을 접고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조선시대, 미술 시장이라고 해봐야 고작 물물 교환 수준을 갓 넘은 상태라 최북은 오막살이집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리고 용돈이 궁해지면 멀리 평양과 동래에까지 가서 그림을 내다 팔았다.

살림살이라곤 오막살이에 네 벽은 텅 비었는데, 문을 걸어 닫고 종일토록 산수화를 그려서 아침에 한 폭 팔아 아침밥을 얻어먹고, 저녁에 한 폭 팔아 저녁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켰던 최북.

그의 자는 칠칠이다. 최북의 본래 이름은 식(埴)인데, 스스로 개명하여 북(北)이라고 하고 북녘 북(北)자를 둘로 쪼개 칠칠(七七)을 자로 삼아 스스로 그렇게 불렀으니, 이는 세상을 향한 울분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날, 양반이 찾아와 그림을 요구하자 최북이 거절을 했다. 그러자 양반은 최북을 협박했다. 최북은 화가 치밀어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라며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버렸다. 이에 놀라 양반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때부터 애꾸가 되어, 늙어서는 한쪽에만 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던 최북. 그래서 우리에게는 조선의 빈센트 반 고흐라 불리는 사람.

한 번은 양반 집 자제들이 “우린 도무지 그림은 모르겠어.” 하고 말하니까 최북이 발끈하면서 “그럼 다른 것은 안다는 말이냐?” 하고 쏘아붙였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최북이 그리 그림으로는 표훈사도, 한강조어도, 추경산수도, 조어도, 풍설야귀도, 공산무인도, 누각산수도 등이 남아 있다.

완다 가그가 『백만 마리 고양이』를 발간한 1928년 무렵은 세계 그림책의 역사가 미국 중심으로 크게 변할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은 글을 보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백만 마리 고양이』부터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그림책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외딴 마을에서 둘만 적적하게 살던 노부부가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먼 길을 가서, 마침내 고양이로 가득 찬 언덕에 다다른다. 그곳은 수백만 마리, 수억 마리 고양이들 천지였다. 처음엔 하얀 고양이를 데려오려고 했는데 다른 고양이들도 다 예뻤다. 할아버지는 엉겁결에 언덕에 있는 모든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 만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장 못난 고양이와 행복하게 산다.

그 많던 수천, 수만, 수억 마리의 고양이들은 왜 다 없어지고 가장 못난 고양이만 남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을까? 다소 으스스하고 잔인한 듯한 비밀은 여러분이 읽고 풀어보기 바란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동화창작 강의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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