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지리산 피아골

산도 물도 그대도 단풍이어라

소천 정무영 승인 2022.12.12 14:28 의견 0

오늘은 삼홍으로 빛나는 오색단풍을 찾아 지리산 피아골를 찾아간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바뀐다고 하여 지리산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흔히 말한다. 효자든 불효자든 자식이면 모두 내 품 안에 따뜻하게 품어 안는 어머니 같은 산 말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치열한 이데올로기 공방을 벌였던 빨치산과 토벌대를 모두 품 안에 안은 것도 지리산이다. 성삼재 휴게소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성삼재 휴게소에서 넓은 길을 따라 오르면 1시간 정도면 노고단대피소를 거쳐 노고단고개에 다다른다. 잠시 쉬고 오른쪽 계단 길을 10여 분 오르면 일출산행의 명소이고 운해가 멋진 감동을 선사하는 노고단이다. 노고단에서는 가까이 반야봉부터 멀리 천왕봉까지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발아래로는 섬진강도 내려다보인다. 신라 시대에는 화랑들의 심신수련장이기도 했다 하며 옛날에는 지리산 신령인 산신 할머니를 모시던 곳이라고도 한다.

노고단(1507m)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의 3대 봉이며 지리산국립공원의 남서부의 주봉이다. 늘 지리산 종주를 하다 보면 노고단은 깜깜한 새벽에 오르는데 오늘은 여유 있는 단풍산행이라 맑은 날 짝궁딩이 반야봉도 멀리 구름을 이고 우뚝 서 있는 천왕봉도 눈이 부시도록 선명하게 보인다.

노고단에서 피아골삼거리로 가는 오솔길은 정말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가을 산길의 정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돼지평전을 지나고 다시 한 봉우리를 넘어가면 왼쪽으로는 반야봉 천왕봉으로 가는 지리산의 주능선길이고 오른쪽으로는 피아골로 내려서는 피아골삼거리에 이른다. 오늘의 계획은 여기서 피아골로 내려가야 하는데 자꾸 눈길이 반야봉으로 향한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이 손짓하는 듯 왼쪽 길로 접어든다. 한 고개를 넘어서니 물맛 좋기로 유명한 임걸령이다. 등산로에서 임걸령 표지판 아래로 내려서면 사시사철 언제라도 수량이 풍부한 샘물이 산객을 맞이한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다시 한 고개를 넘어, 지리산 오는 버스 안에서 약속 없이 우연히 옆자리에서 만난 산 친구가 뱀사골을 올라 삼도봉을 거쳐 반야봉에 오를 것 같은 느낌에 발걸음이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으로 향한다.

늘 천왕봉 가는 길에 스치듯 올랐던 반야봉 오늘은 좀 여유를 부린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노고단을 바라보고 앞뒤로 펼쳐진 지리능선이 장관이다. 얼른 반야봉 정상석을 찍어서 산 친구에게 보내고 여기서 만나자고 할 요량으로 사진을 찍는 순간 “소천님~.” 앗, 그분이다. 어찌 내 맘을 알고 빨리도 달려왔다. 버스에서 내린 지 3시간 만에 상봉 30년 만에 만나는 듯 반갑다. 눈이 부신 하늘을 배경 삼아 멋진 포즈로 한 컷 남기고 삶은 달걀 하나씩을 나눠 갖고 부지런히 피아골로 향한다.

‘피아골’이란 지명의 유래는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행하여 식량이 부족했던 시설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의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마을을 기장 직(稷), 밭 전(田)을 써서 ‘직전마을’이라 부른다. 한국전쟁 중에 빨치산 전라남북도 총본부가 이곳에 있어 소탕작전 시 동족상잔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곳으로 피의 계곡으로 연상되는 피아골로도 알려져 있다.

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 상의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로 동으로는 불무장등 능선, 서로는 왕시루봉 능선 사이에 깊이 파여 있다. 자연미가 뛰어난 경관과 단풍으로 잘 알려진 골짜기로 등산인뿐 아니라 일반 탐방객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핏빛보다 붉다고 하는 지리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직전단풍은 피아골 입구 직전마을 일대의 단풍절경을 일컫는다. 피아골은 이러한 단풍 절경 때문에 단풍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잠룡소, 삼홍소, 통일소, 연주담, 남매폭 등 자연미 뛰어난 소와 담, 폭포가 연이어 있어 여름 계곡 산행으로도 인기가 있다.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들어서서 8부 능선쯤 내려가자, 드디어 단풍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피아골 단풍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은 그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피아골대피소 아래로 내려가자 계곡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계곡물이 모이는 작은 연못이 있고, 주위의 오색찬란한 단풍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기 색깔을 물 위에 비추고 있었다. 성질 급한 어떤 단풍잎들은 함박눈처럼 하늘하늘 휘날리면서 작은 연못에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피아골 단풍은 지리산 10경에 들 만큼 가을 지리산의 으뜸으로 꼽힌다. 피아골의 단풍은 온 산이 붉게 타서 ‘산홍(山紅)’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서 ‘수홍(水紅)’이며 그 품에 안긴 사람도 붉게 물들어 보이니 ‘인홍(人紅)’이라고 하여 산과 물, 사람까지 모두 붉게 물든다는 의미의 ‘삼홍(三紅)’으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 대학자 남명 조식(1501~1572)은 유명한 삼홍소 시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봄꽃보다 고와라 청공이 나를 향해 묏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역사적으로 비극적 현장이었던 피아골과 피아골단풍의 아름다움을 연관 지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피아골의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 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피아골 단풍을 찾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파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피아골 단풍은 연곡사로부터 지리 주능선으로 40여 리에 이어지지만 그 가운데 직전부락에서 연주담, 통일소, 삼홍소 까지 1시간 거리 구간이 특히 빼어나다. 피아골 단풍 절정 시기는 기온에 따라 1주일 이상 차이가 나 단풍 시기를 잘 알고 떠나야 한다. 피아골계곡의 상단부인 피아골산장 아랫부분은 10월 중순, 단풍이 가장 빼어난 직전 부락에서 삼홍소까지는 10월 말경이다. 11월 첫째 주에도 일부는 낙엽이 지겠지만 괜찮을 듯하다. 피아골 단풍산행은 비교적 오르기 쉬운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 지리 주능선을 걸어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면 편안한 단풍산행을 즐길 수 있다. 따사로운 가을날 지리산 피아골 단풍을 즐기면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시기 바란다.

지리산 연곡사(智異山 鷰谷寺)

연곡사는 백제 성왕(544년)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 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 스님이 중찰불사를 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53호), 북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 151호),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동승탑비(보물 153호), 소요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피아골 단풍산행 코스

○ 노고단 피아골 코스(5~6시간)
성삼재 → 노고단 → 돼지평전 → 임걸령 → 피아골 → 직전마을 → 연곡사

○ 피아골 뱀사골 코스(6~7시간)
직전마을 → 피아골 → 임걸령 → 삼도봉 → 뱀사골 → 와운마을 → 반선

○ 피아골 트래킹 코스(3~4시간)
직전마을 → 표고막터 → 삼홍소 → 구계포교 → 피아골대피소 → 직전마을 → 연곡사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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