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무의 쌈지경영] 아는 체 말고 모른 척 하라

조병무 편집위원 승인 2023.04.05 14:35 의견 0

도회(韜晦)라는 말은 자기의 재능을 숨기고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도(韜)는‘화살을 넣는 부대’에서 ‘챙기다’라는 뜻으로 변했고, 회(晦)는 ‘어둡다’, ‘현혹하다’라는 뜻이다. 이 도회술(韜晦術)을 잘 활용하여 뜻을 이룬 우리나라 사람은 상갓집 개로 불렸던 흥선대원군이다. 중국에서는 유비가 조조의 감시를 도회술로 피할 수 있었다.

어떤 나라에서 임금과 대신이 바둑을 두고 있을 때, 국경 부근에서 적의 횃불이 오르고 적군이 내습해 왔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임금은 당황하여 바둑돌을 내던지고 중신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신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임금을 저지하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그 횃불은 이웃 나라 임금이 사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바둑두기를 재촉했다.

임금도 할 수 없이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으나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한참 후에야 전령(傳令)이 달려와서 적의 기습은 오보(誤報)이며, 실은 이웃 나라 임금이 사냥하는 것을 잘못 보고했다고 알려왔다.

임금은 그제야 놀라는 표정으로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는고?” 하고 묻자, 대신은 넌지시 ”나는 이웃 나라에도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도 임금이 사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후부터 임금은 그 대신을 경외(敬畏)하고, 정치에서도 그를 경원(敬遠)해 버렸다고 한다. 이 사례는 <史記> 魏公子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나는 대신이 자기의 도회술을 지켜 적국의 정보를 구태여 말할 필요 없이 우연의 일치처럼 꾸몄으면 어리석은 임금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과 다음은 능소능대(能小能大)한 대신을 잘 다룰 능력 없는 무능한 임금이 유능한 신하를 잃었다는 점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다소 바보같이 보인다고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소 모자란 듯이 남을 대하면 그들의 적개심과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아주 똑똑한 사람보다 다소 부족한 듯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의심 많은 권력자의 눈에는 멍청하고 아둔한 사람이 오히려 편하고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으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모르는 척 연막(煙幕)을 피는 것이 오히려 똑똑한 것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재능을 믿고 남을 깔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공을 내세워 앞에 나서는 것도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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