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태주, ‘손님 신발 신기 좋게 돌려놔 주듯’ 그렇게 시 쓴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 독자들이 원하는 시를 물어 쓰다

정여림 작가 승인 2023.04.13 13:34 의견 0
시인 나태주

최근 10년간 국내 최다 판매된 시집은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였다. 나 시인은 짧고, 쉽고 간단하면서도 뭉클한 시로 독자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줘왔는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로 시작하는 시 ‘풀꽃’은 국민 애송시가 된지 오래다. 새봄을 맞아, 본지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찾아 나 시인을 만나고 마이너리그였던 그가 메이저리그가 되기까지 버틴 시간을 취재했다.

1910년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손질해 개관한 ‘풀꽃문학관’ 내부는 손때 묻은 나 시인의 풍금과 책, 따뜻한 그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인터뷰는 나 시인 특유의 위트와 낙천성으로 내내 유쾌했는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풀어내는 그만의 혜안과 통찰은 또 다른 시인 듯 신선하고 빛났다. 그는 시집에 줄자를 대더니 대표작 ‘풀꽃’을 펜을 눌러 또박또박 써 필자에게 건네줬다.

시인 나태주

Q 최근 10여 년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 되셨는데요.

내 시, 이 시대 상황과 맞물리고 독자들의 필요로 의해 선택받는 것

나는 52년 동안 50여 권의 창작 시집을 출간했다. 초창기에는 정통 시를 썼고, 후기에는 내 나름의 시를 쓰고 있다. 최근의 시가 초창기 시보다 낫다고 할 수 없고, 후반 10년에만 좋은 시를 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초반에 좋은 시를 남겼을 수도 있는데, 지금 내 시에 반향이 큰 것은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렸고, 시대가 원하는 시로 독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선택받는다고 본다.

작가는 자기 글이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시, 유용한 시를 쓰고자 했다. 현대인들은 한정된 공간인 아파트에 살면서 쓸모없는 것은 쉽게 버리게 돼 있다. 그렇게 버려지는 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집이나 문학이 남기고 싶고 간직하고 싶게 치열하게 쓸모 있는 것이 돼야 한다.

공주 풀꽃문학관

Q 초창기에 비해 나 시인의 시가 짧고, 쉽고 간단하게 쓰는 것으로 변모됐는데…

시대상에 따르고 독자와 상호작용한 결과물

나는 중고등학교에 강연을 가면 ‘시를 어떻게 쓰면 좋겠나?’, ‘내 시가 너희들이 보기 어떠냐?’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여 합의하고 쓴 것이 지금의 시다. 시대상에 따르고 독자와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비유하자면 내 집을 방문한 예쁜 손님(독자)에게 내가 좋아서, 잘 대접하고 싶어서 툇마루의 손님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놔 준다(쉽고, 단순하게 쓴다).’는 개념으로 보라. 세상의 이치는 작용·반작용이 있는데, 사람들은 대개 한쪽의 ‘작용’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갑질이 된다.

Q 시인은 ‘감정 서비스맨’이라는 표현을 자주 해 오셨는데, 부연 설명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를 살리고, 너도 나 좀 살려주오.”가 돼야

시인은 감정의 ‘서비스맨’이 돼야 한다. 관공서에 가보면 세무서·경찰서·검찰도 ‘서비스’를 외치는데, 하물며 감정을 다루는 시인들이 서비스를 안 하면 되겠나. 내가 좀 괴롭고 힘들어도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 하는 인터뷰도 일종의 내 서비스라 볼 수 있다.

최근 지자체·노인단체·도서관·문학단체 등을 가리지 않고 강연을 한다. 학생들 강연을 하다보면 선생이 일방적으로 강의하면 아이들이 그 90분을 지루해 못 견뎌 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응…,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강연을 한다.

덕분에 강연에서 많은 답을 얻는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정보를 받고 에너지를 받아온다. 이 힘든 세상에 살아가려면 ‘내가 너를 살리고, 너도 나 좀 살려주오.’라며, 서로 상승작용을 해 줘야 한다.


선물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Q 나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통찰, 그 씨앗은 어디로부터 기인했을까요?

외할머니의 낙천성·생명사랑 사상·타인배려 성정 영향 받아

집안 사정으로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와 초등 6학년 때까지 살았다. 외할머니는 무학의 촌사람이었지만 낙천적이고 생명 사랑 사상, 타인 배려의 성정이 깊어 내가 그 부분을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부모님도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유년기와 초등 시절 스펀지 같을 때 외할머니와 같이 보냈기 때문에, 그런 성향이 내 몸에 밴 것 같다. 사람을 로맨티스트와 리얼리스트로 나누자면, 시인은 로맨티스트인데 친가 쪽은 리얼리스트에 가까워 시인이 날 가능성이 적었다고 본다.

독서는 하는 데까지 여러 가지 내가 필요한 걸 본다. (독서를 많이 하냐는 질문에)동화, 그림책, 종교, 철학책도 본다. 즐겨 그리던 그림은 요새 시간이 부족해 못 그리고 있다.

Q 여러 문학상을 제정해 문학상 마중물의 주인공이신데…

처음 웅진문학상을 만들었고 뒤이어 풀꽃문학상, 해외 풀꽃문학상, 공주문학상, 신석초문학상을 내가 주도해 만들었다. 지금은 관리와 지원을 떠나보낸 상도 있고 아닌 상도 있다. 이를테면 문학상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고달프고, 가난하고, 지치니 먼 길 함께 가는 길동무인 그들에게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 떠 주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덕 봤으니까, 인세 수익금으로 좋은 일 한다는 취지다.

공주에서 사람들 만나고 식사하면 찻값·밥값은 내가 낸다.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온다고, 다 내 돈이 아니라, 내가 쓴 돈, 그 돈이 바로 내 돈이라 생각한다.


청풍 독자들께 전하는 말 1, 2, 3, 4

1. 물가에 심은 미루나무는 태풍에 견디지 못해…상처 입고 모자람 있어야 진정한 메이저가 된다

달리기하면 트랙 중간에서 일등 했다고 상 주는 것 아니더라. 마지막 결승선까지 잘 들어와야 한다. 사실 나는 엄청난 마이너인데 그 마이너 시절을 많이 버티다 보니, 지금 책이 조금 잘나가는 시인이 됐다.

내가 마이너인 이유를 꼽자면, 첫째 시인이라는 것이다. 각광받는 시인이라도 유명 소설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시골 사는 사람이라 마이너고,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게, 차 없이 다니는 것도 마이너면 마이너라 할 수 있다.

매사에 끝까지 잘하자. 사는 게 불편하고, 모자라고 만족스럽지 못해, 뭐든 부정적인 것이 있다 해도 그걸 이기고 가다 보면 나중에는 달라진다. 마이너 없이 메이저가 될 수 없다. 제법 살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실패를 통해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넘어지면 주저앉아버린다. 실패하고 일어나본 사람은 다음에 오는 실패도 이길 수 있다.

물가에 심은 미루나무는 물에 대한 갈망 없이 풍족히 살지만, 태풍이 불면 취약하다. 인생은 좋은 것으로만 일관될 수 없고, 매사 행·불행이 반복된다. 상처와 모자람이 있어, 그것을 극복하고 설 때 진짜 메이저가 된다.

2. 안 좋은 것도 받아들이면, 인생이 커진다.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가 온다

과거 내 인생의 목표는 마이너인 내가 메이저가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그 버팀은 계속되고 있다. 독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길 바라면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다.

인생 자체가 좋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날씨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맑은 날만 내 날인가. 바람 불고 비 오고 눈보라 쳐도 다 내게 주어진 날이다. 벅차고 힘들고 고난이 다가와도 이기고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싫은 것은 자기 인생에서 없어져 버리길 원하는데, 비가 와서 옷이 젖고 신발 젖은 날도 내 인생이니 기꺼이 견뎌야 한다. 안 좋은 것도 기꺼이 품어 받아들이면 인생이 커진다. 늘 좋은 것만 찾고, 꼭 이득 있는 것만 취하지 말고, 자기한테 주어진 배역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3. 내가 가장 잘 대접해야 하는 건 ‘시간’, 내가 산(몰입한) 인생이 내 인생

내 강연은 ‘묻지마’ 강연이다. 강연주제, 강연대상, 이동거리, 강연료를 묻지 않는데 단 하나 묻는 것은 ‘시간이 언제냐?’다. 강연 주제나 강연료, 강연대상, 거리도 중요하긴 하지만 실질적이고 더 밑에 숨어있는 건 내게 시간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대접해야 하는 건 오늘 나한테 주어진 그 ‘시간’이다.

그래서 섭외가 들어오면 시간을 제일 고려한다. 시간의 지배를 안 받을 수 없으니 ‘시간이 되느냐? 넌 그 일을 할 시간이 되느냐?’고 늘 내게 묻는다. 인생에서 내가 몰입한 시간만큼이 진정 내 인생이다. 내가 본 풍경만이 내 풍경이고, 내가 사랑한 여인만이 내 여인이다. 많은 사람을 사랑할수록 좋다.


4. 외롭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만 생각하니까 외롭지.”네가 먼저 웃어라!

“물어봐요, 더 물어”

다음 스케줄 시간이 임박했다면서도 나 시인은 계속 필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며 ‘서비스’를 베풀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해요.”

답변이 바로 날아들었다.

“자기만 생각하니까 외롭지. 기본이 ‘나’니 중심은 내게 있다.”

그러면서 즉석에서 읊어주는 시구와 마무리 답변이 울림을 주어, 더 이상의 부연 질문이 필요 없었는데, 독자들도 마찬가지가 될 듯하다.

민들레꽃이 웃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면 네가 먼저 노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예뻐 보이니? 그러면 네 마음 속 세상이 예쁘다는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민들레꽃, 새의 노래, 예쁜 세상을 들여다보고, 찾고, 느낀다면 외롭지 않다. 제가 먼저 웃지 않고, 민들레 보고 ‘왜 찡그리냐?’고 말하니 외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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