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림의 인생 Rebooting] 오전은 엔지니어, 오후는 장구채 잡은 예능인 조석기 단장

‘둥둥’ 울리는 장구 장단이 가슴을 때려… 남들보다 열 배 노력했다
고고장구 통영 용남 지부 조석기 단장

정여림 작가 승인 2023.05.09 13:34 의견 0


“장구 칠 때는 우환은 다 잊고 웃으세요!”… 수강생들, 제2의 인생 산다

쿵~다다 궁 딱! 쿵다다다 궁~딱!

“집안에 우환이 있어도 장구 칠 때는 다~ 잊고, 웃으셔야 합니다!”

특유의 팔자 눈웃음에 곁들여 구수한 입담과 유머로 진행되는 조 단장의 장구수업 시간.

땀에 절어 장구를 두드리던 수강생들은 “하하… 호호…” 웃음 짓다가도 그의 멋들어진 춤사위와 현란한 장구 치기 시범에는 “단장님, 정말 멋지세요!”를 연발한다.

40대부터 70대 후반까지의 남녀. 조 단장의 수강생은 다채롭다. 노령인구가 많은 통영 지역 특성상 장구 수업의 인기는 더 높은데, 수업을 막 마친 수강생들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한목소리다.


“장구 치러 오면 아픈 게 다 도망가고 몸이 가뿐하다. 오늘도 정말 많이 웃었다.”

조 단장은 장구는 장단을 구음(口音)으로 외우고 양손을 이용해 치니, 기억력이 좋아지고, 좌우뇌가 골고루 발달해 치매 예방에 좋다. 또한 고고장구는 장단에 맞춰 경쾌한 율동도 곁들이니 훨씬 신명나게 즐기고 신체 단련효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내 자신이 장구에 미쳐서, 내 좋아 가르치니 지치는 줄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쁜가?”


공업사 23년 운영, 손재주 뛰어나고 치밀한 성향의 엔지니어… 기름때 묻은 손에 장구채 잡다

10대부터 타고난 재능과 성실성으로 엔지니어가 됐고, 환갑을 넘은 지금은 공업사를 23년째 운영 중이다.

“조선소 불황으로 통영의 공업사가 하나 둘 망해도 내 회사는 살아남았다. 물품 견적을 뽑아도 내가 조금 손해 보고, 상대방이 많이 남게 했다. 콩이 세 쪽이면 내가 한 쪽 먹고 두 쪽은 상대방을 준다는 마인드로 살았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때 기사를 11명까지 두고 새벽 여섯시까지 일하고 한 시간 반 자기도 했다. 기계 부품을 조이고, 두드리고, 만지는 일도 좋았다.”

현재 그는 공업사 일을 오전까지만 보고 오후 시간부터 밤까지는 오롯이 장구채를 잡고 수강생을 지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타고난 끼, 이제야 발산하는 듯… 장구채를 잡아야 하는 운명

한반도의 최남단, 경남 통영시에서도 바다와 접한 산양면 어촌의 ‘달아마을’ 출생이다. 그가 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아들들 뱃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뭍 안쪽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욕쟁이 할매였다. 실컷 욕해놓고 ‘이거 먹어라’고 하는 정이 넘치는 분. 신명이 있고 창을 잘해 마을 잔치에 가면 쌀도 타오셨는데 장구로는 동네 1인자였다. 동네 대소사에 어머니가 빠지면 잔치가 안 됐다.”

그는 명절이면 아흔둘 노모와 마주 앉아 함께 장구를 친다고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데, 어머니 끼를 아무리 물려받아도 내가 노력을 안 하면 안 된다. ‘아들 형제가 다섯인데, 누구 하나는 어머니의 장구를 물려받아야 하는데…….’라고 머뭇거리던 중, 우연히 각설이 품바 공연에서 장구 치고 북 치는 장면을 보게 됐다. ‘둥둥’ 하고 울리는 그 소리가 내 가슴을 때렸고 이 길에 들어섰다.”


장구채를 잡으려 결심하고 배울 곳 수소문, 1년 만에 마스터… “모든 것은 연습량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끼가 있어도 성공하지 못한다”

배울 곳을 수소문해 주경야독 피나는 노력을 했다. 장구를 시작하고 불과 1년여 만에 최고 지도자의 자격을 거머쥐었다.

“모든 것은 연습량이다. 노력 않으면 끼가 있어도 풀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10배로 노력했다. 공업사 사무실에 장구를 갖다 두고 일을 마치면 밤마다 두드렸다. 운전하다가도 신호 받아 정지하면 핸들을 장고 삼아 두드렸고, 어디서든 앉으면 무릎을 두드리며 박자를 익혔다. 그때 내 안에 내재 돼 있던 장구의 끼가 폭발됐던 듯하다.”

그는 공업사 사무실 한 편의 6평 좁은 공간에서 장구를 가르치다 호응이 좋아 지금은 서른 평의 전수관으로 옮겨 4년째 장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뭔가를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파는 성격이고 그동안 수많은 취미를 가져왔다. 수석, 분재, 난, 바이크 까지. 6년 동안 수련한 국궁은 전국 2위의 성적을 내 35년 역사 이래 통영 열무정에 이름을 최초로 올렸다. ‘배움의 끝은 없다.’는 그는 현재 고전 무용과 꽹과리를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 처해 진 내 환경에서 인생을 즐겨왔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아왔다.”


영리 목적 없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무조건 남녀노소 받아준다… 수강생 맞춤식 수업

그의 전수관을 찾는 누구든, 배우고자 하면 그는 남녀노소 조건을 가리지 않고 수강생으로 다 받아준다.

“늘그막에 이것, 저것 재고 따지고 살지 않는다. 내 아는 만큼 욕심 없이 나눠주고 싶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정중하게 믿음으로 운영하니 내 전수관에 한 번 오면 그만두는 사람이 없다.”

정예부대로 꾸려진 그의 자체 공연단은 요양시설. 시민 위문공연. 어버이날 행사 등에서 활약한다. 노인들은 그의 장구 공연을 관람하다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한번은 100살 노인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추어 간호사들이 “어르신!” 하며 붙잡고 진정시키기도 했다.


캠핑카에 장구· 북 싣고, 전국 돌며 재능 기부 공연하는 꿈 가져

장구 사랑이 넘쳐나는 그가 하회탈 같은 눈웃음을 짓더니 남은 자신의 꿈을 소개했다.

“나중에는 캠핑카에 장구·북 싣고 다니며 전국을 일주할 것이다. 산촌·어촌·농촌 두루 돌며 나보다 더 연로한 노인들을 찾고 마을 회관, 정자나무 아래에서 장구를 칠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들이 구경하다 춤도 출 것이고, 좋아서 농사지은 무·배추 보리쌀도 내주지 않겠나(웃음). 그렇게 둥글둥글하게 어울려 살아갈 것이다…….”


그의 인생유전은 하루 사이에도 무척이나 대조적인 색을 띈다. 오전에는 작업복에 검은 기름때 묻히는 음지의 엔지니어. 오후에는 백구두에 흰 양복, 멋들어진 모자를 눌러 쓴 양지의 예능인이자 문하생을 지휘하는 조 단장으로.

신들린 듯 자유로이 장구를 두드리는 듯, 그는 인생길 또한 한판 자유로이 놀리고 두드리고 있었다. 신명으로 사는 진정한 ‘인생 선수’를 만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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