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환의 복지이야기] 캐디가 만든 “이글” 턱

육동환 편집위원 승인 2023.10.13 14:08 의견 0

오래전 이야기로 인근 골프장 1번 홀은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 쪽으로 내리막 경사진 서비스 미들홀로 좌측그린은 그린 앞 50m 지점에 소나무 숲이 있는 블라인드 홀로 요즘처럼 안개 낀 날은 핀이 잘 보이지 않지만, 장타를 치는 사람은 드라이버로 티샷한 볼이 소나무를 넘겨 온 그린 되면 그린에서 퍼팅하던 앞 팀과 시빗거리가 생기곤 하는데 경기 규칙을 안 지켜 위험이 따를 때도 있다.

경기보조원인 박 양과 김 양은 경기보조원 앞뒤 순번으로 박 양이 앞 팀 캐디로 근무를 나갔다. 이들은 강원도 같은 고향 친한 친구 사이로 기름값을 아낀다고 자동차도 같이 타고 다니는 또순이들로 혼기를 놓쳐가며 꼬박꼬박 적금 부어 모아둔 돈을 투자하여 개발지에 사논 땅값이 오르는 바람에 지금은 십억의 알부자 캐디가 되었다.

그날 단체팀으로 원정팀에 배정된 첫 팀에 박 양이 그린에서 볼을 닦아 라이에 놓고 있는 중 뒤 팀에서 친 볼이 박 양 발밑까지 굴러왔다. 골퍼 일행은 퍼팅라인 살피느라 뒤 팀에서 친불이 그린까지 굴러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볼만 집중하자 박 양은 굴러온 공을 얼른 주머니에 넣고 일행이 퍼팅을 끝내고 다음 홀로 그린을 벗어나기 직전 주머니 속에서 굴러왔던 공을 원 퍼터 거리에 놓고 다음 홀로 이동했다. 마음속으로 ‘그래 이글 하면 미영이가 저녁 사겠지.’ 다음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귀는 뒤 팀에게 가 있었고 마지막 김 사장이 티샷하는 순간 전 홀 그린에서 “야 이글이다, 이글이야.”라는 큰 소리가 들리자 박 양은 빙긋이 미소 짓고 ‘그래, 그러면 그렇지. 미영이가 이글 팁 받으면 저녁 사겠지?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때워볼까? 저녁 할 걱정 없겠네.’ 경기보조 하면서도 즐거웠다.

완벽한 이글이었다. 더구나 대구에서 원정경기 온 단체팀으로 발각될 일도 없고 미영이 그년은 눈웃음이 죽여주는 애라 평소에도 버디 값이다, 택시비다, 남들보다 이삼만 원은 더 벌어 족히 십만 원은 더 받아 올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도 양심 가책은커녕 미영이 오버팁 받는 것만 생각하니 어느새 18홀이 끝났다.

뒤 팀 캐디 미영이와 같은 차로 퇴근하기 위해 가로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주차장 한쪽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하루 종일 참아왔던 담뱃불을 붙여 깊이 빨아 삼키니 아침 출근 때 피고 온종일 못 피웠던 담배 한 모금에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게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미영이가 옆자리에 탔다. “야 오늘은 네가 저녁이나 사라.”라고 박양이 말하자 미영이는 “왜 내가 저녁 사니?” 하면서 그 지독한 자린고비 근성이 나타났다.

“야 오늘 너희 손님 이글 하여 팀 많이 받았잖아.”

“우리 손님 이글 한 거와 저녁 사는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거 내가 만들어준 이글이야.”

“무슨 소리야 우리 손님이 드라이버 잘 치고 원 퍼터로 넣었으니 이글 했지!”

“야, 이년아. 그건 내가 홀컵 근처 원 퍼터 거리에 옮겨놔서 이글 한 거야.”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서 두 사람은 이글 턱을 가지고 말다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동료 캐디끼리 회사에서 싸우다 발각되면 퇴사 조치하는 때였는데 마침 퇴근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가던 이사에게 발각되었다.

현장을 목격한 이사도 난감하였다. 차라리 못 보았으면 좋으련만 평소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칭찬하고 있는 사람들로 골프 스코어를 조작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 삼아 퇴사시킬까 생각하다 이들과 공범이 되기로 하고 “야, 저녁은 내가 살 테니 같이 가자.” 삼겹살에 소주 한잔 먹으면서 둘 사이를 화해시키고 “이 일은 가슴속에 묻어 달라.” 당부하였다.

이일은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로 경기보조원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 일부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일이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그들은 지금은 결혼하여 다복하고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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