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림의 인생 Rebooting] 기우는 한복의 명맥에 ‘숨’을 불어넣겠다

한복 장인의 아들 한복조합 만들어 시너지 내다
한복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성덕중 이사장

정여림 작가 승인 2023.11.08 16:47 의견 0

우리의 전통 의상인 한복의 명맥이 위태로운 시기다. 전통적으로 가정의 혼례나 대소사가 있으면 한복을 지어 입었는데, 근래에는 대소사가 있어도 한복을 입지 않거나 한복대여점에서 빌려 입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한복 장인들의 생업에 위기가 닥친 것은 물론, 이 시장에 인력 유입도 끊겨 우리의 전통 한복 제작방식의 맥이 위협받고 있다. 이에 성덕중 이사장이 손을 걷어붙였는데, 60여 년 한복 짓기로 외길을 걸어오며 그 솜씨 또한 높이 인정받은 어머니의 영향이다.

자유로운 성향으로 아홉 번 직업을 바꿔 살던 어느 날 60년 외길 인생으로 살아온 한복 장인 어머니를 재조명… “어머니의 한복제작 기능을 자산으로 널리 전승해야 한다!”

“어머니 한복 짓는 솜씨가 묻히는 게 너무 아깝다. 기울어가는 한복의 명맥도 그렇고 아들인 당신이 좀 어떻게 해봐라!”

사십 대 후반인 그는 자의적, 타의적으로 직업을 여러 번 바꿔왔다. 환경공학을 전공했지만 교육사업을 하다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고, 여행·무역업계까지 몸담아 왔다. 9번째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무렵 그의 어머니 한복점에 들렀는데 그를 본 어머니 단골손님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든세 살인 그의 어머니는 대전 중앙시장 한복 거리에서 63년째 한복점을 운영했다.

“주변 분들이 어머니의 솜씨에 대해 칭송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동안 좀 무심했다. 그날 이후 어머니 가게에서 6개월여 머물며 어머니가 쌓아오신 거탑의 실체를 더 잘 알게 됐다. 한복 복식의 가짓수가 수십 가지인데, 그 모든 종류를 다 만들 수 있는 분은 대전 일대에서 저희 어머니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의 어머니 오명순 여사는 11살 때부터 한복 짓기를 배웠고 20살 때부터 한복점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사 받은 한복 점주들도 다수다. 30년 한복 짓기를 한 장인이라도 전체 한복 가짓수를 다 짓지 못하고 개별 전문 분야를 정해 제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정도로 한복제작은 까다롭고 난해하다. 그런 현실을 파악한 그는 어머니의 능력을 국가기능으로 인정받을 길을 찾아 뛰어다녔지만 벽에 부딪혔다. 객관적으로 검증되는 학위나 논문이 없는 무형의 기능을 증빙할 방법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어머니를 돕고 있는 큰누님은 한복 짓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안다. 자신은 어머니처럼 안 살고 싶다면서도 현재 의류패션학을 전공하며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한복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다. 늦었지만 저도 어머니 솜씨를 전승받아 보고자 미싱부터 배우며 6개월 정도 배워봤는데 한복 짓기는 중노동이었다. 손길이 많이 가는 한복바느질은 허리 목 어깨 등이 성할 날이 없고 한 벌을 완성하려면 몸과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 쏟아야 한다.”

그는 이후 한복 제조 기술을 전수하는 걸 넘어서서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침내 2020년에 12월 한복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고 올 6월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정식 인증을 받았다. 대전 서구 갈마로 194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현재 13명으로 대전 중앙시장 내 한복 장인들과 염색전문가, 패션디자인 전공자 등으로 채워졌다.

교복, 특수복, 유니폼, 호텔 실내복, IT기술 활용한 의류 등 한복디자인을 활용한 특수복 개발 의욕 있다

“한복의 장점을 도입한 교복, 유니폼, 단체복 등의 특수복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전통문화예술 쪽으로 특화돼있는 직업인 한의사, 문화예술사, 안마사, 전통음식점 종사원 등이 그 대상자들이다. 한복스러운 복장으로 더욱 각광 받을 수 있는 직업군의 범위는 광범위하다고 본다.”

현재 한복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조합)은 직업 특성에 맞게 한복디자인을 가미한 유니폼을 개발 단계에 있으며 연관 연구기관의 컨설팅과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 실내복 고안이라는 멘토링을 받아 시장조사에 나설 예정이기도 하다.

“출장 짐을 꾸릴 때 의외로 고민되는 것이 숙소에 체류하며 입을 옷이다.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바지가 아닌, 외출이 되지 않은 호텔 내 배스가운이 아닌, 보다 새롭고 편한 숙소 실내복이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접해왔다. 외국 관광객에게 우리 전통 한복을 입어보게 할 기회도 된다.”

또 그는 IT 기술과 결합한 기능성 한복디자인도 개발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이 산적한 재원상 기술상 난점이 많아 갈 길이 멀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는 그다.

“한복은 전통복식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옷이라는 기능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변화하는 의류시장을 한복이 사실 쫓아가지 못했다. 생활한복이라도 입고 다니다 보면 일면에서는 고루하고 격식 없게 보는 시선도 있는 것을 안다.”

국내 조합 장인의 손길로 손수 지은 질 높은 한복으로 지방자치단체 행사의 대여 사업에 진출… “우아하고 아름답다.” 호평 쏟아져

도시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대여점의 한복은 대다수가 국내에서 제조한 한복이 아니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낮은 비용으로 제작해오는 것이 많다. 그런 외국산 한복에 비해 전통의 방식에 장인의 손길로 정성껏 지어진 한복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의 한복은 입은 모습에서 그 완성도나 미감이 확실히 차별화된다고 한다.

“행사장에 나가보면 질 낮은 원단이나 요란한 금박 등, 화려하게만 만들고 마무리 손질이 덜 된 외국생산 제품에 비해, 저희 조합 한복은 정교한 바느질로 한복의 선이 잘 드러나 굉장히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평이 이어진다.”

조합은 충남 금산의 인삼 축제를 시작으로 세계지방정부총회, 대전 유성 온천축제 등의 행사에 수차례 자체 제작한 한복을 납품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한복 시장에 새로운 인력이 수급이 안 돼… 대학 패션 관련 학과 어디에도 한복 커리큘럼 없어 안타깝다

서울의 광장시장, 대구 서문시장, 대전의 중앙시장 등 큰 도시의 시장에는 한복 거리가 그 명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한복업계는 이미 쇠락해지고 있다며 그는 한복의 위기론을 펼치며 걱정스러워 했다.

“한복제작 종사자가 30여 년 전에는 대전 시내에 1,000여 명 정도 있었는데, 그들이 이제 고령화돼 업계에서 손을 놓아 이제 그 인원이 채 30명이 안 된다. 하지만 시장에 새로운 인력 수급이 안 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 패션 관련 학과가 한두 개씩은 다 있는데 한복제작은 그런 학과의 커리큘럼에 거의 없는 줄 안다.”

‘한복 제조’는 문화예술 관련업에 분류되지 않고, 하나의 산업군으로만 분류돼 있어, 조합이 여러 문화예술 관련 국가 지원사업에도 배제돼 조합의 또 다른 난맥상이 되고 있다.

“현재 한복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평균 연령 65세로 대부분 취약 계층이다. 저희는 조합 설립 당시 우리 전통복식의 전승과 한복의 대중화, 장인들의 자립’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밤낮없이 일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일조한다고 자긍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 현안이 이런 사회적기업의 진정성이 폄하되거나 오해를 받아 힘이 빠지고 고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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