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공간에 품격을 더하는 공동체의 리더, 문화디렉터 前 (주)로스트앤스위트 박선화 대표

김경희 작가 승인 2024.02.06 14:31 의견 0

‘아름다운 도시 리에또 피렌체에서 만난 착한 빛’, 박선화 대표의 명함에 새겨진 한 줄의 변(辯)이다. 일상과 공간에 품격을 더하는 선한 공동체의 리더인 박 대표에게 걸맞다. 그녀는 가정공동체, 식문화공동체, 학교공동체, 의료공동체의 리더로 자리매김 해왔다. 더불어 공동체의 격을 높이며 문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스스로를 수입 국수 파는 밥집 사장이라며 유머가 담긴 소개를 스스럼없이 한다. 풍미 가득한 음식과 여가, 공간의 품격을 더하는 문화디렉터였던 그녀의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배가시키는 촉매제로 충분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된 도시, 르네상스의 본고장 피렌체.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렌체’ 또한 차용한 이름이지만 품격이 부족하지 않다.

‘문화디렉터’, 박 대표의 공식 명함은 아니지만 그녀의 행보는 이미 그 역할에 충실했다. 문화의 프레임이 우리 일상의 전반적인 행동 양식이라고 들여다보면 그녀가 구축한 문화의 영역은 깊고 인상적이다. 우리의 미각, 시각의 수준을 끌어올리며 희망의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 내적 힘을 들여다보자면 바로 도전, 실행 그리고 진심을 다하는 노력의 시간이 축적되었다.

박수 칠 때 떠나는 자의 뒷모습

2024년은 박 대표에게 안식년처럼 다가왔다. 만 4년간 가열한 페달을 잠시 멈추고 여행을 준비한다. 열정 쏟았던 공간, 미슐랭의 품격을 갖춘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에또피렌체와 아름다운 이별을 앞두고 있다. 명함을 내려놓고 휴식이라는 이름 앞에 섰다. 레스토랑 ‘피렌체’의 뷰는 아름답지만 일터가 되어 창밖만 바라보던 시간이 더 많았던 때를 추억하면서 여행을 준비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 그리고 다시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미지의 여행. 박 대표의 안식년 또한 양수겸장의 기회로 다가왔다. 이제 안식년 다시 그녀를 찾아올 명함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분명 ‘좋은 이웃’으로 다시 컴백할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같은 존재다. 한 사람의 신변잡기 안에도 가르침과 경험이 쏟아진다. 박 대표의 지난 시간을 대변하는 명함들, 교사, 교수, 치과부원장, 레스토랑 대표 등 명함이 교차하는 동안 그녀를 스쳐갔던 일상들이 삶의 노하우로 남고 혹자에게는 청사진으로 보이기도 한다. 안식년을 맞이하는 피렌체 박선화 대표는 4년간 그녀의 공간을 미슐랭에 올려놓고 박수 칠 때 떠나듯이 포물선의 꼭짓점에서 내려놓았다.

대전에 연고가 전혀 없던 박 대표, 서울에서 4년 전 코로나19 창궐 시기에 맞춰 피렌체를 인수하고 가동을 시작했다. 우연이라기엔 시작점에서 짊어질 심리적 부담이 너무 컸다. 2020년 2월 1일 오픈, 곧이어 지역에 코로나 환자 발생, 수치상 그래프를 보면서 사업의 전망은 암울했지만 피렌체는 심각한 그 시기에 매출의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혼란스런 시절과 역주행하는 손익 결산표를 만들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는 가운데도 상승하는 매출표는 박 대표의 노력이 배가된 결과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외식사업을 문화 코드의 품격으로

4년 전 코로나19 시기에 연고가 전혀 없는 대전행은 가히 모험에 가까웠다. 규모와 품격으로 인정받은 레스토랑, 진입장벽이 높은 레스토랑은 오히려 그녀의 구미를 당겼다. 코로나 시기에도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그녀만의 전략이 관통했다. 안되는 이유보다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박 대표의 철학이 사업에서도 주요했다.

위생과 맛, 서비스가 승부를 가른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유명 셰프를 모셔와서 손님의 입맛부터 피렌체에 고정했다. 국내에 9명뿐인 국제명인 요리사 중 한 분인 정동우 셰프는 방문객들의 수준을 높였다. 셰프의 위상을 알리고 셰프가 인도하는 미식의 세계를 손님들에게 서비스했다. 만족도가 높아서 SNS상에서도 자발적인 홍보대사들이 줄을 이었다. 박 대표는 맛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도 미슐랭이었던 피렌체를 맛으로 승부를 띄운 요식문화디렉터였다. 피렌체는 국제마스터셰프협회가 인정하는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면서 품격을 높여갔다.

그간 대전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의 리셉션 장소로 피렌체는 각광받았다. 전 세계 시장들의 행사에 식사를 대접하는 대전의 대표 미슐랭이었다. 각종 대회의 리셉션 장소로 우선 섭외되는 바탕에는 문화디렉터인 박 대표의 안목이 한몫했다. 맛으로 기억되고 식사하는 공간이 추억의 장소가 되는 피렌체를 독보적인 공간으로 격상시켰다.

2022년 UCLG 대전 총회, 세계 최대의 지방정부 간 국제회의인 제7회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 후 리셉션 장소로 섭외되어 피렌체의 위상이 돋보였다. 맛과 공간의 품격이 세계적인 수준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 대표가 돋보이는 미식 공간의 적임자였기에 일궈낸 결과였다.

그녀가 디자인한 가정

그녀의 세 번째 직업, 레스토랑의 대표까지 스무 살이 넘어 37년 동안 그녀에게 따라붙었던 수식어는 다섯 손가락이 넘는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고 경중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에게 가장 매력적인 호칭은 ‘대표’다. 수동적인 명함들과 달리 ‘대표’는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접목하는 역할로, 새로운 구상을 하고 결과를 내기 위한 가동이 멈추지 않는다. 바로 ‘대표’가 할 일이다. 그래서 삶의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박 대표는 ‘대표’라는 말에 애정이 깊다.

공격적인 ‘대표’의 기질도 갖고 있지만 그녀의 이면에는 내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스무 살에 만나 7년 연애하고 결혼한 치과의사인 남편은 그녀에게 치의학 공부를 권했다. 결혼 전 중학교 가정교사였던 그녀는 길이 다른 치의학 공부를 하게 된다. 전혀 다른 길 앞에서 두려움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해냈다.

아이를 키우고 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섰다. 스무 살 학생들에게 교수님으로 불리었고 치과병원의 부원장이 이기도 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남편의 권유에 순응하고 그녀는 내적성숙을 이루는 기회를 마련했다.

박 대표의 자녀 소통법은 아주 특별하다. 남편과 같은 전공 분야를 공부하면서 학회에 같이 참석할 때마다 아이들과 동행했다. 부모가 공부하고 일하는 현장을 아이들이 보고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는 기회가 되었다. 산교육을 통해서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호흡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 많은 화제로 대화의 깊이를 더하면서 서른 살이 된 자녀가 있지만 아이들과 아직 한 번도 얼굴 붉히고 감정의 불협화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긴밀하게 소통했던 결과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 속에서 신뢰가 더 깊어졌다.

딸들과는 특별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소통한다. 박 대표의 이름 ‘선화’, ‘개미’ 등으로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 늘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본 딸이 ‘개미’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엄마를 칭하고 있다. 딸이 불러주는 ‘선화’라는 이름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건 엄마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전혀 희석되지 않았고 친구 같은 엄마에 대한 애정이 응축된 호칭이다. 딸이 불러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고 애칭으로 받아들여져 소통 또한 자유롭다.

이제 결혼을 앞둔 딸과 새벽까지 수다를 나누는 친구 같은 엄마. 엄마를 존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자녀들이 박 대표 삶에 열매가 되었다. 큰딸은 ETRI(에트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직장 동료와 2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4년 전 연고 없던 대전에 와서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된 것이 대전에서 새 가족을 맞을 운명이었다고 방점을 찍는다. 딸의 결혼과 피렌체와의 이별이 운명이듯이 시점이 맞아떨어졌다.

‘여기’에서 ‘지금’ 행복하면 성공한 삶

여성스러운 외모와 상충하는 박 대표의 모험가적 기질을 그녀의 행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프리카 학회 여행 때 식용 애벌레 체험이 있었다. 영양소 섭취가 풍족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단백질 대용으로 사용되는 애벌레 시식 이벤트였다. 다수의 학회 교수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주최 측은 ‘애벌레 드실 분’을 찾았다. 시식은커녕 다들 눈살부터 찌푸리는 이유는 하나다. 꿈틀거리는 애벌레의 움직임만으로도 이미 시식 의욕은 사라진다. 쉽게 말해 징그러운 저 벌레를 어떻게 먹느냐는 간단한 이치다. 하지만 박 대표는 시식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직접 시식에 나섰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향이라 도전하고 본다.

번데기 먹듯이 한 입 베어 물면 톡 터지는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듣기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 시식 후일담이다. 거리낌 없이 시식한 박 대표의 호기심은 4년 전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피렌체를 인수했던 용기와 맥을 같이 한다.

몽골의 유목민 텐트에서도 살아보고 싶고 아프리카에서도 생활의 체험을 하고 싶다는 박 대표, 호주의 극강 공포 롤러코스터도 유쾌하게 즐기고 왔다는 그녀의 모험심이 사업의 현장에서도 여실히 반영됐다. 그녀의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은 비교적 순탄한 항해였지만 그녀에게 내재된 롤러코스터의 기질이 삶의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피렌체의 인수부터 식문화공간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

사업가로서의 이면 또한 마찬가지다. 사업은 성공해야만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성공 지향, 목표 지향적인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다. 사업을 둘러싼 인간관계, 대가 지불의 상관관계를 놓고 보면 충실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간단한 이론이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정답이 없다.

“성공이요? 지금 행복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성공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린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고 첨언한다. 주어진 인생 숙제에 충실했고 교육가로, 사업가로, 가정의 안주인으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아왔다.

매 순간 망설이지 않고 결정이 되면 실행에 옮겼던 것이 비교적 후회 없는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가족, 일,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은 행운의 시간이었다. 수동적인 자세보다 적극적으로 주어진 삶의 무대에서 성실하고 역량 있는 주인공이 되었다. 공간마다 적임자가 있다. 피렌체의 주인으로 ‘베스트’였던 박 대표. 그 경험이 묻히지 않고 어느 곳에서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갈 다른 명함을 갖고 나타난다면 많이 반가울 것이다.

문화디렉터인 박 대표가 어떤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할지 짐작은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를 단 한 순간이라도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확신을 포석으로 깔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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