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순 시인의 시 세계를 탐닉하다

민순혜 기자 승인 2024.02.06 16:16 의견 0
나영순 시인

시는 다가가면 갈수록 음미하면 할수록 그 깊이와 폭과 넓이에 늘 주눅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오묘한 시상과 시정과 시풍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를 쓰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늘 앞섰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를 처음 접할 때는 우연이 깃든다. 마치 강을 건너면서 그 흐름의 도도함과 물살의 역동성을 느끼는 것처럼. 나영순 시인도 그랬다. 딱히 문학을, 그것도 시를 짓겠다는 생각보다는 시인 삶에 대한 주변을 느끼고 정리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詩作)을 하게 되었고 시인이 되었고 시집을 상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정말 숨이 막혔고 정신을 끝없이 괴롭혀야 하는 일과의 반복이었다.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 아침을 바라볼 때 느끼는 거짓 없는 청초함을 접하면서 뭐라고 읽어야 할지. 마음에서는 막 일어서는데 그것을 시로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서였다. 절망과 절필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겨울의 흙덩이를 밀어 올리며 봄을 틔우는 새싹처럼 겨우 시 한 편을 세상에 내놓으면 “어느새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끝없는 부끄러움과 자괴와 자책을 지고 온종일 이곳저곳을 방황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시인 시를 읽어주고 반겨주고 다독여주고 낭송도 해주는 독자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시작(詩作)의 힘이 되었다. 그때 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전율과 행복과 기대는 시작(詩作)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백교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늘 시인과 동행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시여서 더욱 벅차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연이어 대전문인협회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문학을 하면서 누군가가 같이 감상해 주고 이해해 주고 동행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를 새롭게 다잡는 기회도 되었다. 그러자 그것은 또 다른 두려움이자 부담이자 고뇌로 끼어들었다. 저곳에 끝이 있으려니 하고 다가가면 거기엔 너무나 낯설고 짙고 날카로운 또 다른 끝이 기다리는 것처럼.

그럴수록 더 힘이 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내리사랑인 아이들이 자라고 있어서일까. 손녀와의 교감은 시인 삶의 다른 면을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 그려낸 동시집은 저 너머에 언제나 시인을 기다리는 작은 꿈의 세계, 시인 어릴 적 동산이었다. 시에서 시를 꺼내와 아이와 함께 그려내는 동시가 이렇게 가슴 벅찬 것인 줄을 처음 느끼게 해주는 꿈의 시간이었다. 말할 수 없는 벅참이 눈물로 숨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을 더욱 부추겨 시에 전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문인협회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과 대전문인협회 대전문학상 수상은 그에 대한 사랑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나 시인은 말한다. “나는 이제 다섯 번째 강을 건넜다. 내 생에 몇 굽이의 강이 기다릴까.” 시인은 남편과 제주도에 갔을 때 더는 넓을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더는 높이 떨어질 수 없는 폭포와 바위를 보면서 느꼈던 그 무한한 숨김과 낮춤의 절제미를 뭐라 그려내야 할지 막막했던 그 길은 또 얼마나 멀까. 시인은 아직도 강과 길을 건너고 걸어야 하는 시간 위에 서 있다. 80세에 등단하는 노익장의 시인들을 보면서 시인은 아직도 이 강과 길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통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있는 한 자신은 묵묵히 강과 길을 건너고 나설 것이다. 그 끝이 무한하다는 것을 보면서.

나영순 시인 부부

나영순 프로필

2012 서라벌문예 등단, 2015 시낭송 전국대회 금상 수상, 2017 제8회 백교문학상 수상, 2017 대전문인협회 올해의 작가상 수상, 2018 호주문학상 수상, 2022 한국문인협회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 2023 대전문인협회 대전문학상 수상. 2019 대전광역시 금장

시집: 숨은 그림 찾기(2015), 꽃을 만진 뒤부터(2017), 하나의 소리에 둘이(2019), 그림자는 빗물에 젖지 않는다(2021), 꽃섬에 닿다(2023)

동시집: 소나기는 말썽쟁이(2020)

대전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여성문학회 회원, 덕향문학회 회장, 대전투데이 칼럼위원, 대전시낭송가협회 이사, 국제시사랑협회 이사, 한국낭송문학협회 이사,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자문위원, 자목련시낭송협회 이사, 시와소리문학 운영이사, 대전광역시 금장(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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