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대전중앙청과(주) 과일부중도매인조합장

‘성공’ 앞에서 당당한, 새벽을 여는 거상(巨商)

김경희 작가 승인 2024.03.06 15:52 의견 0

대전중앙청과(주)중도매인 180호 이진영 조합장, 상도(上道)의 주인공 조선의 거상(巨商) 임상옥을 떠올렸다 한들 과한 평가가 아니다. 장사꾼이 아닌 상즉인(商卽人)을 실천하는 진정한 상인이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상도(上道)는 시대와 무관한 진리다.

3박자를 골고루 갖춘 이진영 조합장. 그에게 3박자는 30년, 365일, 3시 30분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연대를 이룬다. 30년간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출근한다. 명절에도 어김없이 새벽을 연다. 그가 성공이라는 이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던 365일이 모여 30년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작은 성공의 시각화, 언덕위의 하얀 집

비빌 언덕이 없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이진영 조합장)가 성공이라는 이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청년시절에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청사진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50살이 되면 언덕위의 하얀 집을 아내에게 선물하는 청사진. 실제 아파트 숲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하얀 집을 지었다. 함께 고생했던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자 이 조합장 스스로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언덕위의 하얀 집은 인생의 숙제를 끝낸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청사진에서 실제 현실로 이룬 그의 지난 시간이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에게 작은 동력이 되었다. 군대에 일찍 다녀와서 직장을 갖고 방송통신대 공부를 시작했다. 대전 충남에서 경영학과 120명이 입학 후, 동기 10여 명이 스터디를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방통대의 학습관리 시스템이 혼자 공부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방법을 찾아서 결과를 만들었다.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중촌동 수정주산학원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월, 수, 금 주 3회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으로 졸업을 했다. 졸업 후 한남대 야간 중소기업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총동문회 회장을 맡아서 다양한 사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신협의 사나이, 친화력이 최고의 경쟁력이 되다

그는 언제나 영업의 귀재이자 달인이었다. 단순히 상품만 팔아서 얻은 이름이 아니다. 신협에 재직했을 때도 미원에 근무할 때도 영업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다. 새 상품출시와 함께 ‘전국 1등 영업소 달성’에는 반드시 그가 견인차 노릇을 했다.

특별한 영업 비결을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 그저 모범답안만 있을 뿐이다. 신협 지점장 재직 시 그저 책상에 앉아 서류만 보는 업무방식에서 탈피해 조합원들 속으로, 고객들 틈으로 찾아들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통했다는 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진심‘이다. 고객을 고객으로 대하기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대한다. 조합원들과 같이 가족처럼 부침개를 부쳐 먹고 근처 상가에서 상인들과 하루를 같이 보냈다. 그에게 목적으로 만나는 고객은 없으며 진심으로 호흡하는 가족만 있었다.

지금 청과의 직원들도 그에게 가족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잊지 않았던 것이 친화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덤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덕목이 있다면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3박자, ‘30년, 365일, 새벽 3시 30분’

신협 재직 시에도 친화력이 경쟁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영업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다. 우연한 기회에 이모님의 권유로 농수산물 유통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신협에서는 영업의 달인이었지만 농수산물시장의 청과중도매인은 일반인들이 범접하기에 넘어야 할 벽이 아주 높았다. 단순한 원리만 따져 물어도 새벽 4시 경매시장에 나서는 일은 새벽잠을 쫓아야 하는 생리적인 한계를 넘어야 한다. 수기 경매를 배우고 어설프게 시작한 중도매인일이 30년의 세월 속에 덧입혀졌다.

30년 세월의 무게 속에 청년이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무수한 세월 속에서 세상도 변했지만 그의 인생도 같이 변화의 물살을 타고 치열하고 성실하게 24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의 작은 성공담도 만들게 됐다.

경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과일을 먹어만 봤지 팔아본 적이 없던 그 시절에 능숙한 중도매인들의 활약을 보면서 의기소침하던 시절도 있었다. 시장 안에서 못 파는 수박을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서 당시 인기 상종가였던 ‘르망’에 수박을 꽉꽉 채우고 대전시내를 누비던 어설프고 어눌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차로에 누군가 내놓은 과일 장사용 트럭을 당일 구입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1000통의 수박을 팔러 나갔다. 결심하면 바로 실행하는 추진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트럭구입의 일화를 엿보면 이 조합장의 소신을 바로 들여다볼 수 있다. 당일 트럭이 필요했던 그는 트럭을 구매한 당일 곧바로 명의 이전을 요청했다. 트럭 주인이 예정된 일과가 있어 다음날로 연기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조합장은 트럭 주인의 안식구와 동행하며 명의이전을 마치고 바로 길거리 판매 현장에 진입했다. 그의 추진력이 도화선이 되어 지금의 그를 만드는 디딤돌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경험의 부재로 우연히 만난 과일 장사의 트럭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일을 배우고 헛수고 같은 시간들이 모여 그의 지금을 있게 했다. 매일 17시간 업무를 보고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한다. 고객과의 약속이며 그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결과는 나의 몫, 위기는 기회다

중앙청과 과일부중도매인조합은 1996년 8월 1일 오정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개장하여 영업하다 2001년 7월 1일 노은동농수산물시장이 개장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판자촌으로 대변되는 오정동 농수산물 시절, 거래처가 없으니 하루에 70만 원도 못 팔았다. 남들은 2천만 원을 상회하던 시절이다. 대학원 동기들에게 ‘이 박사’로 통했고 ‘똘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는데 농수산물시장 무대에 올라가보니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반문하며 트럭을 몰고 밖으로 나가면서 종횡무진 활약하기 시작했다. 도로가에 트럭을 세우고 호객행위를 하다가 순찰차가 오는 것은 예삿일이며 수박이 쭉 늘어선 슈퍼 앞에서 슈퍼의 반값으로 수박을 팔면서 상도덕에 어긋나는 장사꾼으로 몰리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 슈퍼까지도 그의 거래처로 만들었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던 그 장사의 길에서 30년간 성을 쌓고 이제 거상이 되어 그의 발걸음이 후배들에게 전설로 남게 됐다.

인생의 늘 반전의 연속이다. 늘 좋을 수 없으며 항상 불운만 다가오지도 않는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고 위기도 기회로 만들 수 있다. 3년 전 세상을 꽁꽁 묶어 버렸던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형매장이 인원제한으로 묶이면서 오히려 중소형 매장과 재래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위기 속의 기회를 마련했다.

과일은 신선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급 정품만 판매해야 된다면 그에게도 기회는 없다. 과일상의 거래처와 과일의 용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이다. 흠 있는 과일은 가격을 조정하고 거래처는 무수하다. 과일의 용도는 단순한 시식 외에 소스용부터 가공공장, 예식장, 장례식장 까지 상품은 수없이 많다. 과일의 수많은 용도가 바로 수많은 거래처가 있다는 반증이다.

대전중앙청과(주)중도매인 180호에 없는 말, “없습니다.”

이 조합장은 시장의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농부가 농사지은 농산물을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개의 역할에 충실한 상인이다.

고객들의 문의 주문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겨울에 봄 과일을 찾고 임산부가 한밤중에 과일을 찾기도 한다. 그에게 “안 됩니다.”,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방법을 찾고 해답을 구한다. 30년간 지켜온 상도덕과 상인으로서의 철학에 변함이 없었고 원칙을 고수했기에 거상이 되었다.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 세상의 파도와 맞서 사업의 길에 들어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성공에 관한 명쾌한 답변을 내려준다.

“남들과 같이 해서는 남들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

30년 전 1000통의 수박을 트럭을 싣고 넋 놓은 채 이 길을 가야할지, 다른 길로 선회할지 고민하던 청년은 한길을 걷기로 결심하면서 돌아갈 다리를 끊었다. 그리고 30년, 365일, 새벽 3시 30분을 고수하고 지켜냈다. 명절에도 대전중앙청과(주)중도매인 180호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문을 연다. 새벽 3시 10분에 기상하고 어김없이 3시 30분에 출근한다. 그리고 30년. 흔들리지 않는 노력의 결과로 성공은 당연한 열매다. 그가 말한 성공의 법칙은 꿈꾸어 온 청사진을 이룬 모습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형상이 아닌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자체로도 이미 성공에 다가서 있다.

최근에는 바쁜 와중에도 노은1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이웃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봉사를 통해 찾고 있다. 그가 보여줬던 ‘내가 아닌 우리’를 실천하는 거상의 면모는 스스로 만든 원칙을 고수하고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세였다. 덧붙이면 “우리 직원들은 가족입니다.”라는 그의 한마디로 그의 성공인자를 증명할 수 있다.

그간 우리 이웃에서 작은 모습으로 곁을 지킨 이진영 조합장. 오랜만에 만난 인간애와 상도(上道)를 떠올려준 거상(巨商)이었다.

대전중앙청과주 과일부조합장 이진영 이력사항

1993년 2월 27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6년 8월 30일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MBA석사 졸업
1992년 3월 31일~2021년 2월 오정신용협동조합(現 대전우리신용협동조합) 이사감사 역임(9대~14대)
1996년 8월 1일 대전중앙청과(주) 중도매인개업 운영중
1999년~2000년 대전중앙청과(주) 2대 과일부조합장
2012년~2013년 대전중앙청과(주) 9대 과일부조합장
2022년~2023년 대전중앙청과(주) 14대 과일부조합장
2024년~ 대전중앙청과(주) 15대 과일부조합장
2017년~ 제11대 한남대학교 MBA석사 총동문회장 취임
2014년~ 신탄진중앙중학교 제9회 동창회장
2019년~2022년 유성구 노은1동 주민자치위원장
2019년~2024년 유성구청소년수련관 시설운영위원
2020년~ 경주이씨 대전광역시화수회 부회장 겸 청년회장
2019년~2023년 대전광역시 시민옴부즈만 위원장
2023년~2025년 일류경제도시대전 기획자문위원
2022년~2024년 유성구의정비 심의위원

상훈

1988년 치안본부장표창
1996년 대덕구청장표창
1996년 한남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장표창
1999년 농림부장관표창
2000년 충청남도 지방경찰청장표창
2001년 대전중앙청과(주) 대표이사표창
2001년 새마을운동 대덕구지회장표창
2008년 대전광역시장표창
2009년 중소기업청장표창
2011년 대전광역시장표창
2012년 하빈농업협동조합 감사패
2014년 대전중앙청과 대표이사 감사패
2015년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장표창
2019년 유성구청장표창
2022년 대전우리신협협동조합 감사패
2024년 MG탄동새마을금고 이사장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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