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훈 칼럼] 우리가 만든 도시에 대한 반성, 뿌리 산업이 강해야 일류도시가 된다

자신을 우대하지 않는 대전 사람들
타월, 금형, 안경, 인쇄, 한약… 지역의 뿌리, 전통 산업은 보배

강대훈 대표 승인 2024.03.07 15:26 의견 0

대전 대표 유령건물, 성남동 현대그랜드 오피스텔

고층 건물 한 동이 지구를 유령도시처럼 만들어버렸다. 대전 동구 성남동에서 1992년 완공한 현대그랜드 오피스텔은 지난 2011년 전기요금과 수도료 체납 등으로 파산했다. 그리고 13년 동안 방치하여 유령건물이 되었다. 밤에 가면 으스스하기가 영화 ‘곡성’ 저리가라다. 동구 청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헐든지, 밀든지, 재개발하든지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성남동 현대그랜드 오피스텔

한국 타월 산업의 본산지, 대전

지금은 이렇게 버려진 곳이지만, 어린 시절 겨울이면 성남동 현대 오피스텔 천변에서 손발이 트고 동상이 걸리도록 얼음을 지치면서 놀았다. 놀다가 걸어서 날망으로 돌아올 때, 길가에서 줄을 걸고, 천변 바위까지도 타월을 널어 염색 처리를 하던 타월 공장들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근 가양동에도 타월 공장이 많았으며, 그 전통 산업이 대화공단으로 들어가서 대전 타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전국 102개 타월 업체 중 대덕구 평촌동을 중심으로 대전권에 54개 업체가 가동 중이다. 타월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타월 염색공장도 전국 7곳 중 3곳이 대전에 있다. 염색직기도 1478대(54.9%)를 보유하고 있다. 타월 산업의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1200억 원 정도고 이 중 대전권은 600억 원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미타올을 비롯해 한신, 문광, 삼심, 무한타올 등이다. (출처, 매일경제, 2008.12.26.)

이마바리타올박물관: 일본 최대 타월 산지 에히메현 이마바리시(愛媛県今治市) 인구 18만의 도시에 300개 이상의 타월 공장이 있다. 중국산 타월의 저가 공세에 밀려 고전하던 중, 엄격한 타월 품질 인증 기준을 만들고, 지역과 상품을 통합하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지금은 중국 타월의 저가 공세에 맞서 명품 타월을 생상하고 있다. 이마바리시는 타월 산업을 ‘타월 문화’로 진화시켜 지역과 산업을 지킨다.
대전 타월도 디자인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선물아카데미상, 최우수상을 받는 케이크 모양의 타월. 펼치면 수건이 된다.
이마바리타월박물관 노동자들이 타월 생산을 하고 있다. 나는 수출 마케터로 일할 당시, 산업자원부가 운영하는 수건의 지역혁신특성화(RIS)사업에 참여했다. 한국은 사업 총괄을 주관기관인 대학의 교수들이 하지만, 일본은 지역사업에 업계 전문가를 초빙하여 지휘를 맡긴다. 그동안 내가 산·학·연 활동을 통해 얻은 결론은, 공무원은 공무원식으로, 교수는 교수식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 정책은 기업인 출신이 쥐어야 한다.

지원이 집중되는 대덕특구, 쪼그라든 지역 산업

그 밖에도 박스 공장, 인쇄 골목, 쇠를 깎던 금형집들이 있었던 삼성동, 오정동과 원동의 공장들은 대덕특구가 커지는 동안에도 정책적 배려를 받지 못하고 쪼그라들었다. 간명한 신청서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도 복잡하게 만들어, 서류작업에 능한 집단이 예산을 가져간 것은 아닌가?

​지역 창조형 지원=지역 산업+지역 대학+지역 문화+글로벌 융합

대전시에 “전통산업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시는 제조업 기반의 전통산업 육성을 위해 기술개발, 기술사업화, 공정개선, 제품경쟁력 강화 등에 지원사업을 한다. 전통산업 첨단화를 위해 디자인 개선, 해외인증, 시장조사도 지원한다. 그러나 기술개발 분야에 8천만 원 선, 기술사업화, 공정개선 분야는 4천만 원, 제품경쟁력 강화에 2천만 원 정도를 지원하는 20억 원 내외의 사업을, 일 년에 8.3조 원의 R&D 예산(출연연 5.4조 원, 기업 1.8조 원, 2020년)을 투입 받는 대덕특구와비교할 수 없다.

기술개발에 돈을 넣는 것은 장기적이 투자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이미 상용화하고 있는 것에 투자를 하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직접적이고 빠르다. 또한 내가 말하는 지역전통산업육성이라는 것은, 지역과 산업과 대학과 문화를 융합하는 지원을 말한다.

전통의 오토바이 특화 지구, 대전시 중구 대흥동 1.7km에서도 우리는 왜? 중장년 마초성을 자극하는 할리데이비슨과 트렌드 카페를 안치하지 못했고, 멋진 바이크 거리도 만들지 못했는가? 전국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인근 산내에 바이크 시험장이나, 레이스 경기장을 만들지 못했는가? 쇠락한 그 거리는 대실 손님도 드문 스산한 모텔촌이 되었다.

문화지구로 승화하지 못한 대전시 동구 인쇄골목

서울, 대구와 함께 3대 인쇄거리로 손꼽히는 대전 삼성동, 정동, 중동의 인쇄골목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이곳의 ‘유신당인쇄(주)’는 1910년 문을 연 기업이다. 60년 전통의 족보 전문기업 ‘회상사’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대전역에서 목척교를 따라 조성된 이 인쇄거리는 작은 도서관, 크고 작은 책방, 족보 박물관, 카페, 갤러리가 있는 문화상권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그동안 서울 성수동은 기가 막힌 도시재생지구로 변모하여 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데 말이다. 문화를 이식하지 못한 거리는 여관, 콜라텍, 카바레, 칼국수집, 중국식당이 드문드문 장사하는 스산한 동네로 변했다. 인쇄 골목을 도시재생을 위한 문화·관광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대전 인쇄거리를 대전천과 이음길을 연결해 생태·문화단지로 재생했다면 서울 인사동과 파주출판도시 이상의 경쟁력을 가졌을 것이다.

서울, 대구와 함께 3대 인쇄거리로 손꼽히는 대전 인쇄골목 들입. 대전 삼성동, 정동, 중동 일원의 인쇄골목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그러나 대전역에서 목척교를 따라 조성된 이 인쇄거리는 문화상권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도시 행정에는 전통 산업을 문화와 관광 자산으로 보고 재생하는 안목과 솜씨가 필요하다.

일류도시는 자신의 뿌리 산업을 명품으로 만들어야!

대전의 안경 렌즈와 안경 산업도 한때 한국을 선도할 정도가 되었다. 의과대학, 안과, 안경학과, 안경박물관, 안경패션쇼, 안경의 거리, 안경의 날 선포까지 육성하지 못했다. 지역 정치와 행정이 자신의 전통과 가치를 소홀히 한 것이다.

소상공인, 골목상권은 거대 산업 정책의 한 편으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방위, 우주, 항공, 생명, 바이오 같은 거대 산업 담론은 중요하지만, 지역 전통 산업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지역경제, 작은 경제, 다양한 경제는 도시 존립의 바탕이다. 타이완, 이탈리아, 일본, 독일이 강한 것은 중소기업이 튼튼해서이다. 삶을 지키는 복지는 경제에서 온다. 거대 자본에 대응하는 것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지역경제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칼국수와 경제, 대전 중구 ‘칼국수의 날’ 제정하자

대전 중구는 ‘칼국수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칼국수가 대전의 문화라면, 구도심에 문을 닫는 칼국수집 하나를 매입해서 칼국수 박물관으로 만들자. 인천에는 짜장면 박물관이 있지 않은가?

설날에 떡국을 먹듯이, 하루 한 날에 대전시 경제인구 811,000명(2021년 기준)에게 칼국수 80만 그릇을 팔아보자! 칼국수가 규모의 경제를 만난다면 파스타 같은 산업이 된다. 참고로 이탈리아 국수 파스타의 시장 가치는 2030년 100조 원이 넘는다(Fortune business insight 참고). 중구가 칼국수 축제를 개최하는 주관 도시라면 중구청 직원들은 매주 솔선해서 청사 밖에서 칼국수를 먹자! 대전에 ‘성심당’같이 두세 시간 줄을 서는 매출 1000억을 넘기는 칼국수집이 탄생해야 한다. 매출 100억 칼국수 집도 10개는 넘었으면 좋겠다.

전통산업은 지역문화가 되어야 지속가능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위해서도 지속가능한 도시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시와 구청의 행정은 이런 것을 돕는 것이다. 외형 수십 조 은행이 합병되고 경기가 흔들려도,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거뜬하게 상권을 이끌어간다면, 도시 회복력과 지역 경제는 튼튼해진다.

대전에는 몇 십 년 전통의 칼국수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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