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가짜뉴스(三人成虎/流言蜚語)

김형태 박사 승인 2024.03.07 15:45 의견 0

지혜로운 사람에겐 유언비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거철이 되면 각종 가짜뉴스와 정확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어 유권자들의 생각을 혼돈케 한다.

한비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시지무호야명의/연이삼인언이성호”(夫市之無虎也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한비자/내저설상<內儲說上>) 저잣(시장)거리에는 호랑이가 출몰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 사람이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정말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믿는 이들이 생긴다.”

이처럼 유언비어는 근거 없는 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이에 넘어간다. 옛날 위나라의 태자가 조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었다. 위왕은 大臣 방공(龐恭)에게 태자를 보필해 함께 가도록 명했다. 출발하기 전에 위왕이 방공에게 부탁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방공은 위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혹시 누가 자기를 비방하여 위왕의 신임을 잃을까 걱정이 되었기에 “臣은 다른 부탁은 없고 질문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염려 말고 말해보라고 하니까 ①왕은 누가 시장바닥에 범이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그야 물론 안 믿지! ②두 번째 사람이 시장에 범이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다. ③세 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면 믿으시겠습니까?-그렇다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 그러자 방공이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시내에는 호랑이가 출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생깁니다. 이번에 신(臣)이 태자를 모시고 감단으로 떠납니다. 그곳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누군가 신(臣)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폐하께서는 그런 말을 쉽게 믿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미소를 지으며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다녀오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방공이 조나라로 떠난 뒤 그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방공을 의심하게 됐고 뒤에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역사적으로 ‘유언비어’에 속거나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이 나오게 된 이유다. 가짜뉴스의 피해사례를 보자. 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는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관동대지진’이다. 일본의 도쿄도, 요코하마, 가나가와현 등 간토(関東)일대에서 약 10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그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도 약 340만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조선인을 향한 가짜뉴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관공서를 습격하고 곳곳에 불을 지르며 우물에 독을 넣어 일본인들을 해치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황당한 유언비어였지만 결과는 너무나 처참했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하여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열흘 동안 5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학살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관련 자료가 나와도 인정하지 않은 채 100년이 흘러오고 있다. ②14세기 중세 유럽엔 무서운 흑사병이 번졌다. 발병 하루 만에 죽게 되었다. 일단 병에 걸리면 고열에 시달리다 피를 토하고 호흡곤란이 오며 사망 직전엔 피부조직에 출혈이 생겨 검게 되기에 검은 죽음(黑死病)이라 불렀다. 당시엔 흑사병의 원인인 페스트균에 대해 몰랐고 치료법도 없어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다. 당시 경제적 실권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청결하게 살았기에(청결법 준수) 흑사병의 피해를 덜 받았다. 이를 보고 질병의 원인이 유대인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고 이것이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번졌다. 따라서 스페인의 아라곤왕국에선 유대인에 대한 폭동과 학살이 일어났다. ‘기독교가 아니면 모두 추방한다.’며 유대인들을 추방했다. 그 후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나치당도 인종 청소를 하겠다며 유럽의 유대인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 학살했다. 이처럼 인류가 겪는 재난과 전쟁 뒤에는 가짜뉴스가 쉽게 퍼져 일을 그르친 예가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시대에는 풍문만 듣고 관리를 처벌하는 ‘풍문탄핵(風聞彈劾)’ 제도가 있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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