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계룡의 발치에서 국사를 논하다

향적산 국사봉

소천 정무영 승인 2024.03.08 15:19 의견 0

향적산(국사봉, 575m)은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와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계룡산에서 뻗어 나온 산릉(山稜)으로서 백악기의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을 암맥상으로 관입한 문상반암(文象斑岩, granophyre)과 각종 암맥류와 석영맥 등의 반심성암체로 이루어진 험준한 암석산지이다. 명칭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도를 깨우치기 위하여 용맹정진하는 사람들의 땀의 향기가 쌓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계룡산의 향기가 가장 짙게 배인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주봉우리인 해발 575m의 국사봉(國師峰)은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나라의 왕을 가르칠 스승이 이곳에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하 하기도 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 때 친히 올라가 국사를 논했다 하여 국사봉(國事峰)이라 하였다 하기도 한다.

십수 년 전 어느 해인가 동료 선후배들과 논산 상월에 있는 퍼블릭골프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멋진 산을 보고 반하게 되어 바로 다음날 찾아간 곳이 바로 이곳 향적산 국사봉이었다. 골프코스에서 바라다보이는 산그리메가 계룡산의 주능선과 어우러져 멋진 계룡의 완전체를 보는 듯했었다. 오늘은 새해를 맞아 해돋이를 보고자 이른 아침에 출발지인 무상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준비하고 산을 오른다. 국사봉은 높지는 않지만 짧은 오름은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계룡산 자락은 어디든 계룡산의 정기를 받아 기도를 드리는 암자들이 많은데 이곳 향적산 자락도 이곳 저곳 암자터가 남아 있고 암자를 이어주는 임도가 이어져있다. 지금도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향적산방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어 등로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임도들이 확장되고 포장되어 산림이 훼손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든다. 가슴 두근거리도록 크고 붉은 해를 기대했는데 구름이 있어서 기대했던 해맞이는 어려울듯하다 생각 했는데 향적산방을 지나 헬기장에 다다르니 나무 사이 구름 뒤로 홍시인 듯 나뭇가지에 해가 걸린다. 급한 마음에 데크길을 올라 쉼터 정자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송사 송신탑을 바라보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천지창운비와 오행비가 맞이해준다. 국사봉은 낮은 산이지만 조망은 사방이 맛집이다. 온 세상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나보다 빨리 해님이 구름위로 수줍은 듯 붉어진 얼굴을 내민다. 새해 햇살을 맞으며 계룡의 주능선을 바라본다.

국사봉에서 계룡산 천황봉을 바라보면서 왼쪽으로는 논산시 상월면과 금강대학교가 선명하고, 오른쪽으로는 군사시설과 계룡시가 손에 닿을 듯 내려다보인다. 논산평야 끝 쪽으로 더힐컨트리클럽도 내려다보인다. 멀리 돌아보면 대둔산, 식장산이 조망되며 왼쪽으로 계룡산 천황봉, 쌀개봉, 문필봉, 연천봉으로 산그리메가 오르는 듯 내리는 듯 이어진다. 여기서 앞으로 쭉 걸어가면 싸리재, 멘재, 서문다리, 머리봉, 천황봉으로 이어지고 천황봉 왼쪽으로 쌀개봉을 내려서면 관음봉에서 왼쪽으로 문필봉, 연천봉까지 다다르게 된다. 연천봉에서 뒤돌아와 관음봉을 거쳐 자연성릉을 타고 삼불봉에 오르고 금잔디고개, 남매탑을 지나 신선봉, 장군봉까지 가면 계룡산 종주가 완성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멘재에서 머리봉, 천황봉, 쌀개봉을 거쳐 관음봉 구간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출입이 금지되는 구간이다. 일부 마니아들은 몰래 종주를 단행하기도 하지만 나는 늘 여기서 등로를 상상해보며 등산이 허용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등산거리가 짧아 연산 쪽으로 좀 더 걸어보기로 하고 가까이 보이는 바위까지 내려가서 국사봉을 올려다보고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산길을 조심조심 다시 올라 국사봉을 지나 계룡산쪽으로 힐링길을 걷는다. 마음은 천황봉까지 가고 싶지만 멘재에서 천황봉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치유의숲 방향으로 내려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물탕 팽나무쉼터를 지나 치유의숲 입구를 만난다.

‘향적산 치유의숲’은 상상의숲, 동행의숲, 가치의 숲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치유숲길, 바람숲길, 동행누리길로 연결되어 돌아볼 수 있도록 치유의 숲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 기억으로는 한여름 발 담그고 더위를 식히기 좋은 곳으로 기억하며 한두 번 등산 목적이 아닌 이 작은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고자 찾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큰아들, 작은아들이 설을 맞아 집에 오는 날이라 치유의숲은 다음에 돌아보기로 하고 무상사로 내려간다. 무상사는 작지만 국제선원으로 유명하다. 대웅전에 들어 두 손 모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고 돌아간다.

천지창운비와 오행비

정상에 있는 두 비석의 이름은 큰 것은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이며 작은 것은 ‘오행비(五行碑)’라고 한다. 이 비석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어 세운 연대를 정확히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한배검(단군)을 시조로 받드는 대종교에서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천지창운비는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치, 오행비는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인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상징하는 비석이라고 한다. 두 비석에 새겨진 글자들은 얼핏 보아도 불교, 유교의 역학(易學), 동양의 천문학과 오행 등이 나열되어 있어서 좀처럼 해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천지창운비 지붕에는 사방으로 총 12개의 보석이 박혀 있던 흔적이 있고, 비의 동쪽 면에는 ‘천계황지(天鷄黃地)’, 서쪽 면에는 ‘불(佛)’, 남쪽 면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 북쪽 면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적힌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비석 아래에는 ‘심(心)’ 자가 네 개의 면에 모두 쓰여 있으며, 주위의 네 모퉁이 기둥 돌에도 동북에 ‘원(元)’, 동남에 ‘형(亨)’, 서남에 ‘이(利)’, 서북에 ‘정(貞)’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행비에는 서면에 ‘화(火)’, 남면에 ‘취(聚)’, 북면에 ‘일(一)’, 동면에 ‘오(五)’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계룡산이 세상의 중심(天鷄黃地)

두 비석 가운데 중심을 차지하는 비석의 이름이 ‘천지창운(天地創運)’인 것만 보아도 계룡산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천지의 운기(運氣)를 비석 사방에 기록해 두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천계황지(天鷄黃地)’는 바로 계룡산이 천제(天帝)이자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황지(黃地)’의 ‘황(黃)’이 오행 가운데 ‘토(土)’이자 ‘중(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지가 새롭게 창운한다.’는 천지창운비의 동쪽에 새겨진 ‘천계황지’라는 구절은 천계(天鷄=계룡산)를 품은 한국이 앞으로 세상의 중심 땅이 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이를 거듭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바로 옆에 세워진 오행비의 동쪽 면에 새겨진 ‘오(五)’라는 글자이다. 5는 중앙을 상징하는 ‘황극(皇極)’의 수이자 10과 함께 ‘토(土)’와 ‘중(中)’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지구는 서양인 태방(兌方)이 여러 방면에서 동양보다 먼저 발전해 왔다. 하지만 서쪽의 ‘불(佛)’인 아미타불은 과거불이다. 천지가 새롭게 창운(創運)하는 미래 세상에는 서쪽에서는 금(金)과 화(火)의 변화가 일어나고, 동쪽에서는 계룡산이세상의 핵심(五)이자 중심 터(黃地)가 된다는 의미로 풀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상사

무상사는 대선사 숭산 행원 스님(1927~2004)이 2000년도에 창건한 사찰이다. 숭산 스님은 ‘국제 관음선’의 아시아 지역 본사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약 30년간 불법과 참선수행을 널리 알리시던 스님은 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서울 화계사에 국제선원을 처음 개원하셨다. 그 후 입적하시기 약 10년 전부터 장래 국제관음선의 수행 요람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도량을 건립할 터를 찾기 시작하여 국내 여러 곳을 물색하시다가 계룡산 국사봉의 기운이 흘러내리는 현 위치에 무상사를 창건하였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산의 정기가 맑고 강하여 한국의 주요 명산들 중 하나로 여겨지며, 오랜 세월 많은 정신적 구도자들이 수행하기도 한 곳이다. 14세기 유명했던 무학대사는 계룡산 국사봉에서 800명의 훌륭한 스승이 배출되어 세상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무상사는 숭산 행원 대선사의 가르침과 ‘국제 관음선’의 방향에 따라 인종, 종교, 국적, 성별, 나이를 초월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방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열려 있다. 무상사에서의 참선수행을 통해 ‘참나’가 누구인지 밝히고, 이를 통한 ‘자비심’을 바탕으로 이웃과 사회, 나아가 온 세상을 돕는 보살도의 길로 향하는 수행처이다.


추천코스

■ 무상사 코스 (3.2km, 1시간 45분)
주차장 → 향적산방 → 헬기장 → 정자 → 국사봉정상 → 원점회귀

■ 향적산 치유의숲 코스 (4.5km, 2시간 30분)
주차장 → 치유의숲 → 물탕 → 싸리재 → 국사봉정상 → 향적산방 →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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